한국금융연구원이‘파산제도의 경제적 역할 및 제도개선 방향’보고서를 통해 "국내의 경우 개인파산 제도가 남용되고 있다"며 ‘도덕적 해이’등을 막기 위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인 파산 신청 건수가 증가한 이유에 대해 정부와 채권 기관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진단과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채무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파산'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지난 5일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파산제도의 경제적 역할 및 제도개선 방향’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파산제도가 남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2005년에 비해 216% 급증한 12만2608건을 기록했다. 이를 인구 1000명당 파산 건수로 환산해 계산하면 2.6명으로, 미국(5명)과 프랑스(3명)에 비해서는 낮지만 독일, 영국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순호 연구위원은 '올바른 파산제도는 회생 가능한 채무자의 자력갱생을 도와 여러 가지 사회복지비용을 줄이고 노동력의 재활용을 가능하게 한다'며 '그러나 파산제도의 남용은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채무를 갚으려는 개인워크아웃 이용자는 줄어드는 반면 개인파산 등으로 손쉽게 채무를 면제받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진단하며, '파산을 쉽게 허용하면 채권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채권자가 불법추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등 금융 질서가 문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호 연구위원은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파산 이전에 소비자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최대한 유도하고 파산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더 문제
그러나 '파산 제도'를 악용하거나, '파산제도가 남용되고 있다'는 진단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보증채무로 얽혀 있는 현실" 과 "정부의 고리대 허용과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채권기관의 무분별한 대출 때문에, 불과 10년도 안 되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1.9%, 1000명당 119명이 신용불량 상태에 빠진 것"이라는 '정부 책임'을 묻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혜경 금융채무의사회적책임을위한연석회의 활동가는 "얼마 전 TV 드라마를 통해 대부업의 66%라는 고금리, 평균 이자율이 작년 223%에 이르는 사금융의 살인적인 고금리로 인해 채무자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드라마의 인기로 정부는 대부업 이자율을 49%로 낮추는 시행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혜경 활동가는 "대부업 R사의 불법추심 횡포로 인해 채무자들의 인권침해가 문제가 됐었다. 이런 살인적인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채무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민중들의 현실"임을 강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자로 매도하는 것은 현재 빈곤으로 허덕이는 금융채무자들을 타살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이자제한법이 유지되고 신용카드 남발현상이 없던 1998년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0건이었다"고 전제하며 "정부의 고리대 허용과 카드경기 활성화 정책, 채권기관의 길거리 신용카드 발급과‘묻지 마’대출이 활개를 치면서 이른바‘신용대란’사회가 닥쳤고, 개인파산 신청건수도 급증한 것"이라며 "개인 파산 신청 건수의 증가는 정부와 채권기관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이선근 본부장은 "대부분의 개인파산 신청자는 현재의 소득과 재산으로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고,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제도는 최저 생계비로 8년간 생활해야 하는 등 채무자에게 가혹한 변제조건을 강요할 뿐 아니라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도 재산은닉, 허위진술, 낭비·사치로 인한 채무 증가 등의 경우 엄격히 개인파산을 제한하기 때문에, 개인파산 신청남용에 대한 논란은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강조하며, 대안으로 "개인파산자의 무료법률구조를 확대하고, 파산자의 재기를 돕기 위한 대출제도가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