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부터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다른 연체 채무자와 통합 관리되게 됩니다. 재정경제부는 관련해 '신용정보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 시행을 밝히며 용어 삭제와 '3개월 이상 30만 원 이상 연체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거래 중단과 대출을 완전 차단 하지는 않겠다'고 밝혔고 '종합적 상환 능력을 따져 대출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핏 보면 대출도 받을 수 있고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도 사라지니 좋은 방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살펴보면 급속히 증가하는 신용불량자의 숫자와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벌 때 정부의 눈가리기 대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 바뀐다 해도 신용불량자의 채무적 책임은 계속 남기 때문에 달라지는 조건은 없습니다. 연체 상황 능력이 있다면 대출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누가 연체 상환 능력도 있으면서 복리에 30%에 육박하는 연체료를 내고 주민등록증까지 말소되 가면서 신용불량자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았겠습니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또 있습니다. 정부는 '3개월 이상 30만 원 이상 연체자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은행연합회가 이들 정보를 받아 다른 금융기관이 공유할 수 있도록 신용정보관리규약 개정 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은행연합회는 신용불량자의 통계를 발표하지 않을 뿐 금융기관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신용정보, 연체 정보는 은행을 넘어 필요하다면 다른 금융기관이 공유할 수 있도록 유통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만 사라질 뿐 개인 채무에 대한 낙인은 은행연합회를 타고 다른 기관으로 흘러 흘러 개인의 쫓는 족쇄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런 배경에 근거해 3월 내 마지막 신용불량자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 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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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 속 고유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는 불과 3년 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카드 발급이 남발되던 시기의 경고에 이어, 2003년 4월 말 신용불량자가 380만 명에 이르고 2004년 9월 366만 명에 달했다는 경고성 기사들이 줄을 잇기 시작하면서 '신용불량자'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생계형 자살과 가족 집단 자살이 급증했지만 정부의 대책은 '도덕적 해이' 라는 개인 책임을 부과하는 방법을 뛰어 넘지 못했습니다.
과도한 내수 경기 활성화 정책과 왜곡된 고용구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해 무참히 나락으로 떨어진 금융피해자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안 됩니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개인이 가정파탄과 가족 해체와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며 평생을 빚에 허덕여야 하는 빈곤의 삶이 어떻게 개인만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미디어참세상은 지난해 6회 에 걸쳐 '사회적 빈곤에 철퇴를'이라는 '빈곤'을 의제로 한 기획을 연재했었습니다. 연재를 통해 사회구조적으로 양산되는 빈곤 문제를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빈곤 관련 활동단위들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 빈곤의 유형, 제도적인 분석과 사회화되고 있는 빈곤화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들을 부각시켜, 빈곤 의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집권 3년차, 정부는 '경제 정책 올인'을 선언하고, 이어지는 카드 이용액의 증가, 백화점 매출의 증가, 주식시장 활성화, 신용불량자 숫자의 감소 등 여타의 현상 속에서 자신감을 내비치며 신용불량자 대책을 공개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곤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혁 없이 명칭의 변동과 기간의 연장을 통한 신용불량자 대책이라는 것은 결국 금융피해자들에게는 달라질 것 없는 고통스런 현실의 연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현실 논의를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특히 올해는 금융피해자들에 대한 파산선언을 독려하는 활동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 신용불량자와 파산에 초점을 둔 연재기획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파산'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방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을 갖고 비판적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