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원 치료중인 병실에 이홍우 조합원의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이 창가에 붙어 있다. 왼쪽 그림을 보면 부러진 목을 움직일 수 없어 눈만 울고 있는 엄마를 향해 침대에 누워 있는 아빠의 모습을 그렸다. |
나 하나로 해결될 줄 알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와 동료들이 관리자의 감시와 억압으로 힘들어 하는 곳이 아닌 그저 내 집처럼 편안한 현장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2000년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해 2005년부터 현장조직 '현장의소리' 활동을 시작했지만 회사의 탄압에 맞선 현장활동이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11월14일 로프를 챙겨 5현사 4층으로 올라갔다. 감시와 통제로 숨쉴 틈 없는 현장 안에서 출근 길 조합원들을 향한 현장탄압 중단 외침은 그야말로 회사에 대한 반란이었고 로프를 목에 두른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모습으로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나를 강제진압하러 올라온 하이랜드카를 발견했고 그 순식간에 스친 생각이 '내가 살아서 내려가면 현장이 바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살아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나날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고통이었다. 하루 3시간 겨우 잠들고 21시간 깨어 있는데 내가 왜 살아 있는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까지 의사도 얘기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 뿐만 아니라 병실을 찾아와준 참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또 내가 모르는 지역의 활동가들도 나 하나 살리겠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을 때면 고마움이란 어떤 건지 사람 사는 게 어떤 건지, 조합원들도 느껴서 미포가 달라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만 커졌다.
또 한 사람, 중환자실 박지혜 간호사의 도움도 컸다.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보살폈다. 일반병실로 옮겨지고 얼마전 박 간호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찾아갔었는데 누워서만 봤던 박 간호사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그야말로 천사의 얼굴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바뀔 줄 알았던 현장은 그대로다
너무 아프다. 순진이랑 영도 수석 생각하면 죽을만큼 힘들다. 처음에 두 사람이 굴뚝 올라갔다는 소리를 듣고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두 동지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수도 없이 생각한다. 면회 오는 조합원과 팀 사람들도 홍우 니가 두 사람을 내려오게 해야 한다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솔직히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답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회사와 내가 요구하는 안이 어느 정도 일치돼야 두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가족과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안 나올 정도로 고통을 준 것 같다.
아이들이 크면 지금의 일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지옥을 오갔을 아내에게도 평생 갚으며 살아야 할 숙제가 놓여졌다.
한번씩 아내가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그러면 이렇게 얘기한다. 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갓 태어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침묵하지만 나 역시도 가족과 많은 동지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으며 살아야 할 지 마음이 무겁다.(임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