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나는 훈련소 퇴소식 날에 본 장면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퇴소식이랍시고 시작해 쓸데 없는 제식훈련을 마치고 사단장의 지겨운 연설을 들은 뒤 나를 비롯한 훈련병들은 모두 단상 위로 올라갔다. 조교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5주 동안 도둑놈 본 개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조교들은 놀랍게도 갑자기 서글서글하고 상냥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울타리에 박힌 말뚝처럼 한 줄로 뻣뻣이 서 있는 조교들과 악수를 하라는 명령이 훈련병들에게 떨어졌다. 놀랍게도 눈물을 글썽이는 조교들도 있었다. 나는 건성건성 악수를 하며 차례차례 조교들을 지나쳐 갔다. 조교들은 한 마디씩 했다. “건강해!” “군생활 잘 하고!” 나는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5주 동안 훈련병들을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갖고 놀던 조교들이 마치 그동안 ‘훈련병들을 위해’ 일부러 가혹하게 굴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번호표 붙은 짐승으로만 대하던 조교들이 갑자기 이런 게 전우애라는 듯 헤어지게 돼서 섭섭해 죽겠다는 얼굴로 훈련병들을 대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무서웠다. 공포였다.
전부 다 연기였단 말인가? 내무실 안에서 폭군처럼 굴던 모습이 연기일까, 아니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악수를 하는 모습이 연기일까? 도대체 어떤 질서를 믿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짐승으로 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마지막이라도 그렇지, 멋대로 쥐어 박고 욕설을 퍼붓고 조롱하고 모욕을 주던 훈련병들에게 어찌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건강하라고 덕담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공포였다. 나는 군생활 내내 퇴소식 날에 보았던 조교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 공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 자리를 옮겨 세워진 천막농성장에 병원 측이 전기를 끊어 버린 날이 바로 로비 농성장에 병원 직원들을 몰고 와 미친놈 칼춤 추듯 발광을 한 11월 4일, 천막농성 49일째 되는 날. |
이야기가 길었지만, 강남성모병원에서 11월 4일 화요일 저녁에 열린 비정규직 철폐 촛불 문화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훈련병 시절을 돌이켜 보고는 그때 느꼈던 공포가 스멀스멀 되살아 오는 것을 느꼈다.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는 웃으며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이 구는 병원 직원들, 저마다 집에 들어가면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일 병원 직원들,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 아빠일 병원 직원들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함부로 밀쳐 대며 로비 농성장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탁자를 집어 던지고 선전물들을 찢어 버리며, 병원 직원들은 마치 자기 집 안에 들어온 날강도를 쫓아내듯 당당하게 행동했다. 마음 놓고 조합원들에게 막말을 하며 삿대질을 했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11월 4일 아침 일곱 시 반쯤에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로비 농성장에 또 다시 병원 직원들이 쳐들어와 농성장을 깡그리 뜯어 갔다. 농성 물품이고 선전물이고 피켓이고 뭐고 죄다 가져가 버렸다. 나는 오후 늦게야 그 소식을 들었다. 9월에 처음 용역 깡패들을 불러와 천막농성장을 짓밟아 버렸던 이후로 병원 측이 조합원들의 농성장을 침탈한 게 도대체 몇 번인지 이제는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병원 측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용역 깡패나 병원 직원들을 데리고 와 무조건 부수고 쓰러뜨리고 던져 버리고 망가뜨렸다.
▲ 촛불 문화제 중간에 발언하러 나온 박정화 조합원 |
망가진 것은 농성 천막이나 선전물뿐만이 아니었다. 병원 측은 조합원들의 마음속에까지 침탈해 들어가 미움과 증오와 분노 같은 독한 것들을 뿌려 놓고, 조합원들이 원래 지니고 있었을 좋은 마음들을 허물어 짓부수어 버렸다. 촛불 문화제 중간에 발언하러 나온 박정화 조합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오늘 아침 농성장이 침탈 당하고 있었을 때 아이들 학교 보내려고 밥을 하고 있었습니다. 늘 아침만 되면 농성장에서 어떤 문자가 올지 가슴이 내려 앉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농성장이 침탈 당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발언을 시작할 때부터 울먹이던 박정화 조합원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한 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요새 저는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을 일기처럼 조금씩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쓴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이런 끔찍한 일을 겪고야 말았습니다.....성모병원 병원장은 의사 출신입니다. 환자를 치료해 아픔을 낫게 해 주는 의사였습니다. 인사팀장은 간호사 출신입니다. 환자를 정성껏 돌보고 보살펴 주는 간호사였습니다. 병원 신부님?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바로 신부님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런 출신인 사람들이 어떻게 저희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성모 마리아를 사랑한다고, 환자들에게 잘해 준다고 아무 흠 없이 좋은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사람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지’ 이렇게 무덤덤하게 넘겨 버리기에는 이미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도저히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상황을 이미 너무 많이 겪어 버렸다.
용역 깡패와 구사대들이 농성장에 우르르 쳐들어온 게 이번까지 벌써 일곱 차례. 그동안 모르쇠로 외면해 오던 병원장이 겨우겨우 면담 신청에 응해준 게 얼마 전 10월 말. (물론 병원장은 면담 자리에서 비정규직을 복직시킬 계획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난데없이 굴착기로 천막농성장 부근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 역시 10월 말. 자리를 옮겨 세워진 천막농성장에 병원 측이 전기를 끊어 버린 날이 바로 로비 농성장에 병원 직원들을 몰고 와 미친놈 칼춤 추듯 발광을 한 11월 4일, 천막농성 49일째 되는 날. 병원 직원들이 로비 농성장 때려 부수며 훔쳐간 농성 물품들을 되찾기 위해 조합원들이 총무팀을 찾아갔지만 조합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직원들의 손찌검과 삿대질 뿐.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의사인 척, 간호사인 척, 신부님인 척 할 수는 없는 거였다. 박정화 조합원의 발언을 들으며 나는 그 옛날 훈련병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아름답고 좋은 모습이 공포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문화제 중간에 우리의 김성만 씨가 노래를 부르러 앞에 나왔다. 노래하기 전에 김성만 씨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여기 강남 성모병원 신부님이 구사대들을 풀어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병원 밖으로 다 쫓아내고 나니 양심에 찔려 견딜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고해성사를 하러 성모마리아 상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대요. ‘아, 저는 폭력을 썼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자 성모 마리아가 이렇게 얘기했대요. ‘야, 이 씨밸놈아! 차라리 날 깨부숴!’ 신부님이 시키는 대로 조합원들을 쫓아낸 병원 수간호사들도 우르르 몰려가 성모마리아 상 앞에 꿇어 앉아 기도를 했대요. ‘저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성모마리아가 이랬대요. ‘이것들아! 가서 똥이나 싸고 와! 냄새 난다!’”
▲ 고해성사를 하러 성모마리아 상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대요. ‘아, 저는 폭력을 썼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자 성모 마리아가 이렇게 얘기했대요. ‘야, 이 씨밸놈아! 차라리 날 깨부숴!’ |
▲ 이경옥 부위원장이 부른 노래는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개사한 ‘정규직화 위하여’였다. |
이랜드 일반노조 이경옥 부위원장은 발언 대신 노래로 대신하겠다고 하며, 가사를 바꾼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지난 토요일 파업 500일 문화제 때 보여준 활화산 같은 노래 솜씨가 벌써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이제는 연대 발언이 아니라 노래 공연으로 집회 섭외가 들어온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경옥 부위원장이 부른 노래는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개사한 ‘정규직화 위하여’였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도 나와서 발언을 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황일 텐데도 김소연 분회장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짱짱했다. 언제부터인지 김소연 분회장만 보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게 되었다.
“요새는 자본가들이 노조랑 교섭할 때 이런 얘기를 한대요. ‘어디 한 번 너네들 맘대로 해 봐라. 기륭전자를 봐라. 그렇게 싸웠는데도 아직도 안 되지 않았느냐.’ 그러면 노동자들은 또 이렇게 말한대요. ‘그럼 우리도 기륭전자처럼 싸우겠다. 3년 넘게 끝까지 투쟁하겠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니냐.’”
무대 앞에 커다란 흰 천을 세워 놓고, 아침에 있었던 침탈 영상을 보여주었다. 병원 직원들은 영상 속에서 두 가지 일 밖에는 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의 몸을 붙잡고 끌고 가거나,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려 애를 쓰거나. 구둣발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는 영상 속에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 분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아요?” “강남 성모병원은 이렇게 폭력 써가며 돈 버는 병원이었습니까?”
‘볼모’라는 말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꼴을 죽어도 보기 싫어하는 재벌 신문들은 늘 파업을 이런 식으로 보도한다. ‘병원 노동자들, 환자들 볼모로 잡고 파업’, ‘지하철 노동자들, 승객들 볼모로 잡고 파업’, ‘홈에버 노동자들, 고객들 볼모로 잡고 파업’, ‘비정규직 노동자들, 경제를 볼모로 잡고 파업’,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진실을 왜곡하는 것도 문제지만 상상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으면서도 기자랍시고 붓을 놀리는 치들이 나는 정말 우습게 보인다.
사람이 사람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한다면 그건 파업이 아니라 인질극이다. 하지만 정말로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볼모로 생각하며 투쟁에 나서는 것일까? 노동자들이 도대체 왜 파업을 하는지 그 이유를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답이 간단히 나온다. 환자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병원 노동자들이 아니라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 받을 권리를 빼앗는 병원이다. 지하철 승객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지하철 노동자들이 아니라 승객들이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권리를 빼앗는 서울지하철공사다. 고객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홈에버 노동자들이 아니라 고객들이 싼 값에 좋은 물건을 살 권리를 빼앗는 사악한 이랜드 자본이다.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수많은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을 불안한 쪽으로 몰고 가는 비정규직법이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게 아니다. 그 뻔한 사실을 근엄한 얼굴로 사회가 어쩌네 이데올로기가 어쩌네 하는 치들은 모른다. 미국 대선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당장 내일 뭘 먹고 살지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늘날 이 세상은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온몸을 불사른 38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벌써 다음 주면 그의 38주기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왜 싸우고 있는가? 파견직을 써서는 안 되는 간호 보조 노동자들을 병원 측이 버젓이 파견직으로 고용해 왔기 때문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싫어서 2년 만에 쫓아내 버렸기 때문이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듣지 않고 깡패와 구사대만 거푸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에 익숙해진 간호 보조 노동자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병원 측이 달라는 대로 치료비만 내놓을 수 있을 뿐, 보다 더 정성스러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권리는 어느 틈에 병원 측에게 완전히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돈을 위해서라면 환자들의 건강은 아랑곳없이 파견직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고용하는 병원 측에게, 환자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지나지 않는다.
간단한 이야기다. 환자를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아니라 그 잘난 병원 직원들과 신부님, 수녀님들이다. 정말 조합원들의 말대로 환자들 보기에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언론에 자꾸 보도가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이제는 수간호사들이 아예 사복을 입은 채 조합원들에게 달려든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를 볼모로 잡든 말든, 조합원들을 쫓아내든 말든, 강남 성모병원은 늘 기독교 정신으로 환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병원이고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언제나 환자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독실한 신자들이다. 난 그것이 가장 무섭다. 공포다. 한쪽으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사랑과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깡패를 보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부수고 그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몬다. 그러고도 병원 직원들은 집에 가면 좋은 부모가 되고 좋은 아들딸들이 된다. 도대체 어떤 질서를 믿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짐승으로 대할 수 있을까? 손에 피를 묻히고 어떻게 그렇게 사람 좋게 웃을 수 있을까? 어떻게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 나는 아주 오래 전 훈련소에서 던졌던 물음을 강남성모병원 성모마리아 상을 보면서 다시금 던져 볼 수밖에 없었다.
문화제는 아홉 시 반을 넘어 조금 길어지는 분위기였다. 이랜드 일반노조 홈플러스 지부의 한 조합원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나는 일행 몇 명과 함께 이경옥 부위원장 차를 타고 빈소가 있다는 인천 검단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무엇과 맞서 싸워야 하나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본가들이라고, 신자유주의라고, 폭력이라고 말하기는 쉬웠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실체가 없는 말들이었다. 이제는 서서히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공포와 싸워야 했다. 항상 성장을 외치지만 결국 배부른 자들만 더욱 배부르게 하면서 노동자들을 기계 부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너그러운 미소에서 느껴지는 공포. 노동으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미소. 그 미소에서 느껴지는 공포.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포다. 나는 정말 무섭다. 공포와 싸워야 한다. 살인마의 손이 내 목을 점점 죄어 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글을 계속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허구한 날 머릿속을 헤집어 가며 고민하던 나는 이젠 글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내가 결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의무감도 사명감도 아닌 이름 모를 힘이 ‘너는 무조건 써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욕을 먹든 뭘 먹든 간에, 하여튼 써라. 안 그러면 너는 공포에 짓눌려 버리고 말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상처와 눈물을 보아 버렸다. 너무 많은 폭력과 거짓을 보아 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현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나를 글 쓰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이경옥 부위원장에게 차가 참 편하다고 말하고는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