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은 “즐겁다”
험한 꼴 다 보고 해고당하고, 길거리로 내몰려 세상 사람들이 욕하는 ‘투쟁’이라는 것을 하고 있으면서도 언니들은 “즐겁다”고 했다. 언니들은 농성을 하고 있는 국가인권위 건물이 “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때면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언니는 송파구청에서 5년 동안 일했지만 비정규법 시행 전 날 해고된 임정애 조합원이고, 성신여고 행정실에서 12년 동안 일했으나 비정규법 때문에 해고된 정수운 조합원이고, 언주초등학교에서 7년 동안 방과 후 학교에서 보육교사로 일했지만 하루 아침에 해고된 채성미 조합원이고, 보라매서울대병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2년을 1개월 남기고 해고된 김은희 조합원이다.
그녀들은 하는 일도 다르고, 사업장도 달라 서로를 알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노’자도 몰랐던 그녀들이 서로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정규법 때문에 해고가 되고 그녀들은 하나가 되었다. 세상에 혼자인 줄 알았던 그녀들이 서로에게 언니가 되어주고 동생이 되어주었다. “서로 만나게 됐으니, 비정규법이 좋은 일도 했네요”라는 기자의 너스레에 언니들은 “맞네~ 하하하”하며 맞장구를 친다.
▲ 언니들은 버스순회투쟁을 시작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정부가 해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언니들은 오늘(7일)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구경에 나섰다. 수 십 년 동안 서울에 살았을 텐데 언니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서울시청 앞에서 출발해 서울대병원으로, 서울시교육청으로, 송파구청으로 달렸다. 언니들이 일했던 곳이다. 매일 같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했을 그 곳에 이번에는 수 십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버스 순회 투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도착했다.
언니들은 버스를 타기 전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언니들은 “비정규법을 만든 정부가, 우리를 해고한 공공기관이 답할 차례”라며 한 목소리로 “투쟁”을 외쳤다.
▲ 언니들은 "비정규법을 만든 정부가 답해야 한다"라고 했다. |
그녀들은 모두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학교에서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구청에서 전화안내를 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 하겠다며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인 그녀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24개월 되기 한 달 전
보라매서울대병원에서 일한 김은희 조합원은 “23개월 만에 해고되었다”라고 말했다. 24개월이 되면 정부가 보호하겠다는 비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비정규법이 시행되기 직전 서울대병원 측은 그녀에게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일할 수 있는 6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라고 했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고 1주일이 안돼서 담당부서장은 그녀에서 계약서를 1개월짜리로 바꿀 것을 요구했고 그녀는 1개월이 된 7월 31일, 일한지 23개월 만에 해고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는 일을 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짜여 진 식단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인간에게 밥이 생명이듯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면 환자들은 너무나 고마워 했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그냥 차려진 밥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식사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전달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비정규직이었다. 정부는 “핵심, 비핵심 업무를 나눠 핵심 업무를 무기계약화하겠다”라고 한 바 있다. 정부가 보기에 그녀는 ‘비핵심’ 업무일지 모른다. 서울대병원 측에서 보면 그저 없어져도 그만인 비정규직 노동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내 업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에요. 그냥 밥을 나르는 게 아니고 환자의 상태를 잘 살펴가며 해야 하는 아주 전문적인 일이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에 필요 없는 일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 언니들은 버스에 올랐다. |
당당한 언니들의 브이
버스 안에서도 그녀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수운 조합원의 8살 된 아들이 한미FTA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이후 “미친 소는 먹으면 안 된다”고 학교에 가서 일장 연설을 했다는 얘기며, “고등학교 다니는 자식 영어 과외를 못시켜 마음이 아프다”는 김은희 조합원의 얘기... 결국 채성미 조합원이 “나는 더 불쌍하게 보이려고 임신한 배를 막 내밀어요”라는 슬픈 얘기가 버스를 박장대소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
언니들은 해고되었지만 누구 보다 당당한 노동자로 자신이 일하던 회사 앞에 서 있었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외부사람이 들어오면 안 된다”, “환자들 있는데 왜 병원 안에서 집회를 하냐” 등의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언니들은 “해고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을 것 아니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언니들을 사진에 담는다. “언니들! 사진 한 장 찍어야죠”라는 기자의 말에 언니들이 어깨동무를 한다. 하나, 둘, 셋. 언니들의 브이가 당당하다.
▲ 임정재 조합원, 김은희 조합원, 채성미 조합원, 정수운 조합원(왼쪽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