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발표한 ‘비정규법 시행에 따른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비정규직 갈등의 근본적 원인을 △비정규직 증가 배경 감안 않은 비정규법 제정 △정규직화를 강요하는 듯 한 사회적 분위기 △노동계의 비정규직 활용전략 등으로 꼽고 “노조와 상급 노동단체는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나 자신의 영향력 확대 기회로 활용해 노사갈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아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같은 보고서에서 전경련은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라며 통계청이 작년 8월 내놓은 조사결과를 근거로 “전체 비정규직의 51.5%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했다”라고 밝혀 비정규직 노동단체들의 강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비연, “통계로 장난치지 말자”
전경련이 인용한 통계청의 결과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로 “현재의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전비연)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통계로 장난치는 전경련은 그 입을 다물라”라고 비난했다.
전비연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자발적 비정규직’ 규모를 정확히 조사하려면 질문 내용은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있음에도 현재의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선택했는가’ 혹은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있다면 고용형태를 바꿀 의사가 있는가’라는 식이 되어야 한다”라며 “전경련의 주장은 통계청의 잘못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나온 조사결과를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없다?
또한 전경련은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대비 62.8%라고 인식되고 있으나 이는 근로시간과 근로자의 인적특성 직무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며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75%의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나 중소기업 정규직에 비해서는 32%나 높은 임금을 받고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가 고용형태보다 사업장 규모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밝히며,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적 임금격차는 없거나 미미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 월간 '비정규노동'에서 분석한 '연도별 정규직, 비정규직 및 전체 평균임금' 비교 표. 전경련의 분석과는 달리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가 더욱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
▲ 위의 표를 비율로 분석한 것. 임금 격차가 2000년에 비해서는 약간 줄어들었지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며, 오히려 2005년에 비해 2006년에는 임금차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에 대해 전비연은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잘못된 분석과 통계수치를 이용해 엄청나게 부풀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제조업 대공장의 사내하청을 비롯한 용역, 도급, 하청 등 간접고용, 그리고 대형 보험사의 보험모집인을 비롯한 특수고용은 정부 통계상 300인 이상 사업장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범주 자체에 포함되지 않는 상황이며, 포함되는 것은 오직 대기업과 직접고용 관계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뿐이다. 이 규모는 36만 여 명으로 정부 추산만으로 보더라도 545만 명의 비정규직 중 6.7%에 불과하다.
결국 전경련이 임금격차의 근거로 삼은 비정규직은 대기업 직접고용이라는 소수의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것에부터 문제를 갖는 것이다. 전비연은 “엄격하게 좁혀놓은 대기업 비정규직과 상당수 비정규직이 포함된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비교에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이랜드 사태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회사가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는 결국 근로자와 기업의 희생으로 귀결될 수 없다”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입장과는 정반대되는 의견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장해제 시키려 해”
전비연은 결국 이런 전경련의 주장이 “비정규직도 알고 보면 살만하며, 그나마 일자리라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해라”라는 논리를 퍼트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비연은 “전경련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통계수치를 왜곡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함”이라며 “오로지 통계조작과 아전인수식 해석을 통해서만 자신의 주장을 얘기할 수 있는 전경련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으로 차별과 억의 현실을 폭로, 고발하며 싸울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