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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 공격, 이스라엘판 ‘북풍’

[분석] 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공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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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하늘을 뒤덮던 전투기 굉음과 포성이 다시금 잦아들었다.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던 구급차 사이렌이 사라진 거리에는 야채와 과일을 파는 노점상의 호객 소리가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가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14일부터 21일까지 여드레 동안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에 갇힌 160만 가자 주민의 생명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했던 이스라엘군의 ‘방어 기둥 작전(Operation Pillar of Defense)’이 하마스와 휴전 합의로 그나마 일단락된 것이다. 이미 33명의 아이와 13명의 여성을 포함해 모두 156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와 천 명이 넘는 부상자(‘팔레스타인 인권센터, Palestinian Center for Human Rights’가 22일까지 집계한 통계 기준), 그리고 2명의 군인을 비롯해 이스라엘인 6명의 희생을 치르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일주일간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과 침공 반대를 외쳤던 시민들은 시위를 위해 만들어놓았던 피켓과 펼침막을 어떻게 처분할지 아직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예전에 미국의 진보석학인 노암 촘스키 교수는 몇 년 뒤에 잡힌 강연 제목을 미리 정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면 항상 “중동의 현재위기”라는 제목을 알려준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미래에도 중동은 언제나 위기상황일 게 틀림없기 때문이란 게 그 이유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점령이 계속되는 한 이스라엘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 이번과 유사한 ‘집단적 처벌’을 계속 되풀이할 거라는 게 거의 확실하다. 아주 잔인하고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휴전이 이뤄진 지금에 와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이 왜 일어났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다시 천천히 따져보는 것은, 지나간 9시 뉴스를 재방송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행위가 절대 아니다.

[출처: http://www.aljazeera.com 화면캡처]

하마스는 이스라엘 안보에 위협이 되는가?

일단 이번에도 이스라엘이 포화상태의 좁은 가자 지구를 상대로 하늘과 바다, 육지에서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으면서 내걸었던 명분은 (23일 만에 무려 1,484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를 냈던 2008년 침공 때와 마찬가지로)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으로부터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권리”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학자와 언론인들, 심지어는 오바마 미 대통령까지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듯이 “자국민들 머리 위에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파괴에만 집착하는 팔레스타인 정치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안보에 심각하고 커다란 위협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는 터무니없는 과장이자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해마다 약 35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 경제 원조를 토대로 세계 4위의 막강 군사력을 구축한, 게다가 최소 250기에서 4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까지 보유한 인구 750만 명의 이스라엘이, 최근에야 수도 텔아비브에 간신히 도달하는 파즈르 로켓 몇 발과 유도장치조차 없어서 대부분 사막에 처박히고 마는 구식 카삼 로켓이 고작인 하마스 때문에 “존재의 위협”을 느낀다니. 과연 그걸 진짜로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하마스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스라엘의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무장투쟁에만 집착하는 조직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강령에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해체”를 위해 투쟁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강령은 20년도 더 지난 1988년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현 지도자인 칼레드 메샬조차도 “(그것은) 역사적 기록에 불과하고, 더 이상은 적절치 않다. 다만 내부적인 문제 때문에 바꾸지 않을 뿐”이라고 할 정도로 이제는 그 의미가 퇴색된, 단순한 선언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자 봉쇄를 해제하고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모든 군사점령을 중단하면 언제든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거듭 밝혀왔다. 전면 공습의 신호탄으로 이스라엘이 이번에 표적 살해한 하마스의 군사조직 지도자 아흐메드 알-자바리 역시도 최근까지 이스라엘과 물밑 대화를 위해 동분서주해왔던 인물이었다.

팔레스타인 희생자 271명 vs 이스라엘 희생자 0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할 것 없이 상당수 언론은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최근 가자지구 무장요원들의 잦아지는 로켓 공격으로 인해 촉발됐다”(한겨레, 11월 16일 자)고 보도해왔고, 평소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사람들조차도 그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하기 사흘 전에 이스라엘 군용차량이 로켓 포탄에 맞아 4명의 군인이 다친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더 크게는 올 들어 750발이 넘는 로켓탄이 가자에서 이스라엘로 날아든 걸 가리켜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달력이 유독 2012년 11월 11일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라면, 그건 정직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됐거나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주장에 현혹됐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가자 주민들의 80퍼센트가 원래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서 살다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전후로 해서 맨몸으로 쫓겨난 난민들과 그 후손들이라는 사실,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로 이스라엘이 가자와 서안 지구를 불법 점령하다가 2005년에 군대와 유대 정착민들을 가자에서 완전히 철수시킨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속적인 봉쇄와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사실까지는 굳이 거슬러 따져 묻지 않겠다.

다만 달력을 아주 조금만 되돌려서, 이스라엘 군용차량이 공격당하기 사흘 전인 8일에 군인들이 가자 영토로 넘어와 들판을 “청소하던”(즉, 팔레스타인 농민의 농지를 파괴하던) 도중 근처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13살짜리 소년을 쏴 죽인 사건을 우리는 그냥 잊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맺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르면 해안으로부터 20킬로미터까지는 팔레스타인 어민들의 조업권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육지에서 불과 대여섯 발자국 떨어진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22살짜리 청년을 군인들이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은 또 어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자위권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가지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는 미 국무부 대변인처럼, 미국과 유럽 등의 국제사회는 ‘스스로 방어할 이스라엘의 권리’에는 그다지도 관대하면서도 왜 유독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응과 저항에 대해서만 항상 콕 집어서 유혈사태를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일까.

“이스라엘 국민들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진” 750여 발의 로켓탄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벳첼렘((B'Tselem)’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무인기를 이용한 표적 공격과 공습, 총격 등으로 살해된 팔레스타인 희생자의 숫자는 271명에 달하는 데 반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로켓탄으로 사망한 이스라엘 국민은 (이번 사태 이전까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11월 첫 주에 펴낸 보고서에서도 작년과 올해 이스라엘군이 살해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수가 가자 지구 179명, 서안 지구 15명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유혈참사를 촉발시킨 주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테러조직” 하마스인가, 아니면 “무력의 순결함(토하르 하네셰크)”을 그토록 자랑해온 이스라엘군인가.

이즈음에서 잠시 종합해보면, 하마스의 로켓탄이나 자위권 따위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한 실제 이유가 아니다. 최근 들어 조직적 역량이 많이 성장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이끄는 한 축일 뿐, 사태를 한껏 증폭시켰다 잠재웠다 할 수 있는 칼자루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이 쥐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결국 핵심적인 질문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스라엘은 왜 이 시점에 가자를 공격했는가. 그리고 왜 지상전을 포기하고 휴전에 임했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들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인정, 이스라엘에 손해 없어

우선,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비회원국 옵저버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국가로서의 실체를 인정해주는 의미를 담은 11월 29일 유엔 총회 결의안 표결이 이스라엘을 자극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독립국가 건설 시도를 분쇄하기 위해서 가자를 공격했다는 의미일 텐데, 하지만 실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정당인 파타와 하마스가 2007년도에 유혈 충돌까지 빚었을 정도로 갈등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일단 논외로 치자. 즉, 독립국가 인정을 위해 유엔으로 달려갔던 건 서안지구를 기반으로 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인데, 막상 공격을 가한 대상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라는 게 이치에 맞느냐는 반론은 생략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지금 현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거나 손해 볼 게 없다는 점이다. 그건 당장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도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면 결국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으로 이뤄진 나라일 텐데, 이 세 지역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사이에 두고 외딴 섬처럼 서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서안과 동예루살렘은 지속적인 유대인 불법 점령촌과 도로, 고립장벽 건설로 인해 또다시 각각 잘게 쪼개져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허락 없이는 마흐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조차도 세 지역을 오가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생겨난 국가가 과연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야기되는 수준 정도의 국가라면 ‘우리도 이제 국가가 생겼다’는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측면 말고는 실질적인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유엔에서 어떤 결정이 나든 실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태연히 말할 수 있는 것도, 90%가 가자 침공을 지지하고 유대인과 아랍인을 차별하는 정책에 대해 3분의 2가 찬성하던 이스라엘 국민들이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에 대해서만큼은 69%가 지지하는 여론을 보인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다음으로는, 미래에 일어날 지도 모를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한 연습의 성격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익명의 이스라엘과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한 11월 22일 자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와, 그와 같은 맥락의 어느 유대교 랍비의 주장이 사회자의 실수로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전파를 탔던 BBC 라디오 등이 그 주된 근원지로 추정된다. 그러나 50만 명에 달하는 정규군을 갖춘 지역 열강 이란을 침공하기 위해 대공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하마스를 상대로 사전 예행연습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란의 최정예 이슬람혁명수비대와 하마스의 알-카삼 여단은 애초부터 비교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출처: Israel Refuses to Lift Blockade, by Carlos Latuff]

가자 공격, 총선 앞둔 이스라엘 우파의 정치적 전략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딱 하나, 바로 나라 안팎으로 걸친 정치적 셈법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내년 1월 23일에 총선을 치른다. 현재 집권당인 우파 리쿠드당은 날로 치솟는 물가와 집값, 청년 실업률 등으로 인해 인기가 바닥이라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 안에서 민심이 점점 끓어오를 때 가장 손쉽게 그 온도를 낮춰주는 건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위협’이라는 냉각장치다. 예전에 한국에서 선거 때만 되면 불어오던 북풍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대놓고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를 밀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지지 기반인 보수 우파들과 정통파 유대교도들 내에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설마 미국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릴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예전처럼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이 항상 우리 편을 들어주던 시절도 끝나가는 거 아니야’하는 의구심이 바로 그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오바마 정부는 외교안보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겠다고 공언해온 터였다. 물론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부보좌관인 벤 로즈는 “미국은 걸으면서 동시에 껌도 씹을 수 있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말이다. 따라서 네타냐후 총리는 그런 지지자들의 불안감도 잠재우기 위해선 “자, 이번에도 오바마 정부가 확실하게 우리 편을 드는 거 봤지?”하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할 당시 아시아를 순방하는 와중에도 수도 없이 네타냐후와 전화 통화를 하고 황급히 힐러리 국무장관을 이스라엘로 급파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재차 강조하는 발언으로 그런 그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만약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은 것도 전혀 의외가 아니다. 지상전을 벌이려면 자국 군인들의 인명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꼭 달성해야 할 군사적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목표가 가자 지구 안에는 없기 때문이다. 하마스? 아예 가자 주민의 절반 정도를 살상하거나 내쫓을 작정을 하지 않는 한, 지상군 투입으로 하마스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보다 이스라엘 정부가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2008년 침공 때와는 달라진 지역의 정치 지형, 구체적으로는 2011년부터 불어 닥친 아랍의 민주화 물결도 전면적인 침공을 막는데 한몫을 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4년 전엔 이스라엘군이 가자 주민들을 학살하는 동안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가자와 맞닿아 있는 자국의 국경을 철통같이 닫아거는 것으로 학살을 거들었다. 그러나 무바라크가 민중항쟁으로 쫓겨난 자리에 새로이 들어선 모하메드 무르시 정부는 공격 기간 내내 라파 국경 검문소를 개방했다. 그리고 폭탄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집트와 튀니지, 카타르, 터키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과 민간대표단이 줄지어 가자 지구를 방문해 연대의 뜻을 전했다. 그 사이 요르단과 바레인 같은 지역 친미국가의 지배세력은 팔레스타인 형제들의 고통을 외면해온 자신들의 비겁함과 위선이 다시금 부각돼 민중의 체제변혁요구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렇듯, 잔인한 점령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고립되고 포위되어 가는 건 팔레스타인이나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