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3월 13일 민주노총 김모 성폭력 사건 2차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기자회견. 진상규명 특위는 외부 전문가들이 참가해 진상조사를 벌였다. 전교조는 이 기자회견이 민주노총 중앙집행위 전에 열리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었다. 그리고 이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를 전면 부정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출처: 자료사진] |
2008년 12월 5일 수배 도피 중이던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됐다. 그리고 다음날 그를 집안에 숨겨줬던 전교조 선생님은 이석행 전 위원장을 수행하던 민주노총 조직강화 위원장 김 모에 성폭력을 당한다. 그 후로 그녀의 모든 시간은 정지했다. 세월은 그새 22개월이 지났다. 근 2년, 그러나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사건 해결이 없는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여전히 아픈 기억에 몸서리치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9일 저녁 7시께 민주노총 주변의 한 카페에서 피해자를 만났다. 이날 피해자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고 온 길이었다.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5일 대의원 대회에서 성폭력 사건 평가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성폭력 사건 보고서 작성의 길목에서 만난 피해자는 혼자 세상을 견디고 있었다. 가족들도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어 피해자에겐 힘이 되지 못했다.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한밤중에도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동아일보 기자 때문에 살던 아파트 경비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아야 했다. 결국, 집을 옮겼다. 기자들이 교무실까지 찾아왔다. 기자들은 피하면 됐지만,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현장에선 더 힘든 나날이 찾아왔다. 전교조 지회장까지 맡으며 활발한 현장 활동을 했던 전력 때문인지 관리자나 동료 교사 일부의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다. 교사였던 피해자는 한동안 아이들 앞에서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지조차 스스로에 물어보며 괴로워했다.
피해자는 20여 년 간 한 지역에서 교사를 했던 터라 다른 학교의 교감·교장도 자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싫어하던 이웃 학교의 한 교감은 부장교사 회식에서 '걔가 누군가 하면'이라며 피해자를 설명하고 가십 거리로 삼았다. 피해자의 신분은 완전히 노출됐고 더 많은 교사들이 피해자가 누군지 알게 됐다.
모든 사람을 만나기 싫었다. 집에 가도 혼자였고 학교에서도 혼자였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내버려뒀으면' 했다. 그렇게 22개월을 버텼다. 피해자는 지금도 자기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아직 웃으면서 만나지 못한다.
"전교조를 피해자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에 미치도록 화가 난다"
그런 피해자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토론하는 토론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민주노총 평가팀 회의에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도 참관했다. 피해자는 고통과 괴로움의 늪에서 생존자로 살아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여전히 먼 길이었다. 이는 민주노총이 대의원 대회에서 채택한 2차 진상규명 특위 진상조사 보고서를 부정하고, 이 보고서가 지적한 조직적 은폐를 반박하는 전교조 현 집행부의 발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길이다.
피해자는 2차 가해자들에게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보지 못한 걸 후회한 적도 있다. 언젠가는 벌을 받을 거라고도 했다. 피해자가 견뎌온 시간은 배신의 시간이었다. 한때 믿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신뢰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물어뜯었다. 피해자는 "전교조 집행부가 자꾸 전교조를 피해자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에 미치도록 화가 난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는 피해자가 전교조 내 좌파계열(교찾사) 조합원들에게 이용당한다는 식으로 썼다. 피해자는 딱히 정파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정책적으로 현 집행부인 참실련이 자기 지회와 좀 더 맞았다고 했다. 또 자신이 속한 지회는 현 전교조 집행부(참실련)가 선거에 나섰을 때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현 전교조 집행부가 자신의 성폭력 문제를 조직보위 문제로 단순히 설득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피해자는 단호했다. 다가올 전교조 선거에서 어떤 정파도, 누구도 성폭력 사건을 정파적으로 이용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피해자는 전교조가 쟁점으로 부여잡고 있는 조직적 은폐와 2차 가해 논란을 두고 “그들이 조직적 은폐를 하지 않았고,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던 마음이 더 컸었다”고 처음의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조직적 은폐냐 은폐조장이냐는 전교조의 제기엔 ‘그거나 그거나 저한테는 같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차 가해자들이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 조직적 은폐가 아니라는 건 우습다는 것이다.
전교조가 2차 가해 논란을 제기하는 것을 두고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말 모르겠냐는 것”이라며 “처음엔 몰라서 그러는 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라고 자꾸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2개월의 고통의 시간은 피해자를 독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는 “나쁘게 말하면 그들(2차 가해자들)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자신이 아픈 만큼 그들도 아픔을 느꼈으면 좋겠고 가끔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의 가슴엔 아끼던 지회 후배였던 2차 가해자 손ㅇㅇ와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에 받은 상처가 특히 크게 남아 있었다. 2차 가해자들에게 느낀 상처는 동지적 배신감이었고, 또 하나는 인간에 대한 상처였다. 그렇게 남은 고통과 상처를 2차 가해자들은 보듬어 주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게 하는 괴로움의 원천이었다. 피해자는 그 괴로움으로 때론 2차 가해자들에 대한 강한 미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 미움을 견디고 자신이 살아 돌아오기 위해 조직의 해결방식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참세상이 지지모임을 통해 피해자 인터뷰를 처음 요청한 것은 지난해 가을께 였다.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의 편지가 전교조 내부 게시판에 공개되고 피해자가 반박문을 공개했을 때 피해자가 다시 살기 위해 고통을 떨치고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년이 흐른 후 피해자는 직접 또 다른 2차 가해가 나올 수도 있는 토론회 현장에 매번 가슴을 졸이며 나타났다. 평가 팀 회의에도 참석했다. 처음 전교조 토론회 때는 전교조 건물을 봐도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가 인터뷰 요청 1년 만에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했다. 조금 머뭇거리며 때론 멍하니 하늘을 보다, 가슴을 쓸어내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게 자신의 아픔을 들어만 달라고 했다. 그러면 그들이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
다음은 피해자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순간 순간 까무러칠 때가 많았다”
참세상: 그 동안 육체적으로 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드셨을 텐데 최근 근황이나 건강은.
피해자: 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그걸 제일 많이 궁금해 하는 것 같아요, 잘 지내고 있는지. 건강은 잘 모르겠어요. 순간순간 까무러칠 때가 많아요. 한 번도 얘기 안했는데 숨이 멎을 것 같아요. 앞이 안 보이고. 그러면 누워서 따뜻한 물 조금 먹고 침대에 한 시간 가까이 누워 있어야 다시 시야가 트이는 그런 증상이 많아졌어요. 사건해결이 안 돼서 긴장감이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반복되고 머리가 많이 아픈 상태고 여기저기 조금씩, 위에서 증상이 나타나고. 최근에는 가슴이 뛰면서 못 견딜 때도 있고.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걱정이 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게 불안하고 힘들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 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고. 잠은 초기에 비해서 잘 자는 편이에요. 가끔 이런 것들 때문에 화가 나고 이러면 며칠 못 자기는 하는데...학교에 출근하는 것은 조금 얘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해요. 왜냐하면 제가 집중이 분산 될 때가 많으니까. 나름 최선을 다하는데도 전과 같이 저도 즐거우면서 아이들도 즐겁고 해야 하는데...
교사들과도 잘 어울리고 조합원들과도 얘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안 되니까. 사람들 앞에선 그런 티를 못 내잖아요. 아직도 시선들이 곱지 않을 때가 있고...그래도 처음 보다는 많이 살 것 같아요.
참세상: 처음에는 좀 어떠셨나요. 정신적으로.
피해자: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구요. 그냥 나한테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정말 믿었던 조합원, ‘동지’라고 해야 되나... 정말 믿고 예뻐했고 그랬던 사람들한테 내가 너무 노리갯감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들면서 그런 현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제일 괴로웠던 것 같아요.
처음 주변 사람들 중 ‘게네들이 다 계획적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런 것조차 제가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실체로 다가오니까 감당이 안 됐고.
거기에 계속 검찰 조사를 받으러 다녀야 하고, 학교로 집으로 기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전교조 간부들도 연락오고, 그런 상황들이 저를 생각하고 그럴게 없게 만든 것 같아요. 눈 뜨면 시작이고 눈감으면 끝이고, 집에 들어 갈 때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학교 갈 때면 ‘아무도 안 찾아 왔으면 좋겠다’. 저 자신을 느끼고 그렇게 산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요. 잠 못 자고, 못 먹고 서너 달은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나도 아프다는 것만 사람들이 알면 더 많이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말하고 싶었다”
참세상: 그런 과정에서 사실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얘기를 다시 하는 게 괴로우실 텐데도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번 토론회에 오셨다는 얘길 들었고 그전 토론회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데요. 그런 과정에서 인터뷰를 응하기로 하신 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 결심의 의미는 어떤 건가요.
피해자: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말하고 싶다는 게 컸던 것 같아요. 지지모임이 많이 힘이 됐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저 혼자 힘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저를 이해해 주시고 이런 지지 모임 분들만이 아닌 일반인들, 그리고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조합원들이나 그냥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전에는 이런 사건이 언론에 나오면 순간적으로 분노했지 내 문제로 생각을 안 했고, 이게 정말 힘들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구나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몰랐어요. 근데 제 문제가 돼 보니까 조용히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얘기해야 하겠다. 내가 알려져도 얘기는 해야 되겠다. 최근 읽은 책에 ‘왜 피해자는 늘 앞으로 이런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자기 사명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 아프다고만 말해도 되는데’라는 글을 읽었는데 많이 공감했어요. 나도 그렇게 아프다는 것만 사람들이 알면 더 많이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처: 자료사진] |
참세상: 교육공무원으로 수배자 은닉행위가 발각됐을 때 타격이 클 수도 있고, 힘든 결정인데 결과는 최악이 됐고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그 일련의 과정과 느낌, 그 사건 발생 후 자신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 이석행 전 위원장 도피 부탁을 받은 시기는 제 신분상 불이익을 생각해볼 상황은 아니었어요. 저희 지회 행사를 준비하는 회의였고 제가 지회장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손ㅇㅇ(편의상 ‘손이’로 표현한다. 손ㅇㅇ는 피해자의 지회 후배였던 2차 가해자로 피해자는 손ㅇㅇ의 이름을 자연스레 불렀다.)이 늦게 왔고, 그동안 봐 왔던 '손이' 모습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왔거든요. 와서는 계속 불안해하고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고, 뭔가 궁금하게 만드는 ‘손이’의 모습이었어요. 물어보니까 울면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 도움을 요청했어요.
‘상부의 부탁으로 이석행 전 위원장이 집에 있는데 경찰이 자기를 따라오는 것 같다.’ 이러면서 빼내는 것을 도와달라는 거예요. '손이'가 너무 다급하면서도 불안하게 도움을 요청해서 일단 ‘손이’가 움직이란 대로 움직였어요. 그때는 제가 대상이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손이’ 집 주변에서 망을 보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너무 힘들어 제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해결하도록 해라’ 그러고 와서 그들이 결정한 거였거든요. 제가 싱글이라 제 집이 안전하겠다라고 '손이'와 민노총 김모와 박모가 판단하고 결정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저한테 부탁 한 것이었어요. 그때는 빼내는 게 급했고 오래 있을 거라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정신없이 밤중에 이뤄져서 제 신분 이런 거는 생각을 못했어요. 워낙 다급해서.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석행 위원장이나 ’손이‘ 모두 숨어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행동이 아닌 모습이 너무 보였어요. 이석행 위원장은 여기저기 돌아다녔거든요. 슈퍼도, 제과점도 갔다 오고. 제 차키를 달라고 해서 제 차를 가지고도 막 다니고. ‘손이’는 맥주를 사가지고 집에 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불안해서 언제 갈 거냐고 물었더니 ‘조만간 갈 거다. 대책회의를 할 거다.지방으로 갈 준비 중이다’ 이런 상황으로 갔어요. 전 내심 부담이 됐고 일찍 집에 가는 것도 부담돼서 거의 집에 늦게 들어가고...이석행위원장과 '손이'에게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불안한 얘길 했더니 ‘지방에 있을 때 막 돌아다녔는데 괜찮다. 안전하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될 건가' 불안감이 굉장히 커졌기 때문에 ‘손이’에게 얘기했는데 ‘안 잡힐 거다. 걱정 말아라’고만 했고... 그러다 체포가 된 거죠.
체포가 되고나선 저에겐 책임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아이처럼 숨겨 줬다고만 생각을 했던 거고. 민주노총이나 ‘손이’가 대책을 잘 세워 줄 거로 생각했죠.
대책회의엔 처음부터 저를 오라고 한 게 아니고 ‘손이’가 먼저 대책회의를 하고 난 다음에 저를 부른 거였거든요. 그런 식으로 저와 김ㅇㅇ(성폭력 가해자, 전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에게 (위원장 은닉) 책임을 지우게 하면서 자꾸 그들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제가 제일 그들을 믿을 수 없는 건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거였어요. ‘손이’가 처음 대책회의에 갔을 때 거의 울고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처음 봤는데 대책회의가 끝나고 나서 저한테 책임을 지우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손이’는 계속 웃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김ㅇㅇ이나 박모(당시 민주노총 사무총국 소속 2차 가해자)는 말로는 걱정하지만 걱정하는 눈빛이 없었고 그러면서 이 사람들을 믿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 굉장히 많은 말들을 들었어요. 저한테 내 놓고 ‘당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손이’가 더 걱정이다. 당신에게도 미안하지만 ‘손이’에게 더 미안하다.’.. 그 당시 이모 사무총장은 ‘저 여선생 제대로 할 수 있을래나. 저거...되게 걱정되네’ 라고 하기도...
참세상: 왜 그들은 ‘손이’만 걱정했나요.
피해자: 그때는 잘 몰랐어요. ‘손이’가 주도적으로 해 와서 ‘손이’가 들통나면 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간다. ‘손이’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는데 ‘손이’는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고, ‘그냥 언니한테 다 뒤집어씌운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은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 이후로 걔는 내내 즐거웠어요. 한 번도 걱정을 한다거나 그런 게 없고 늘 만나자고 불러내서 나가면 술 먹자고 하는 게 다였고. 대책을 의논하자고 부르면 조퇴하고 나가도 그냥 낮부터 술을 먹자는 게 다였으니까요. 김ㅇㅇ도 박모도 그렇고요. 모두 집요하게 저 혼자 있는 시간을 안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싫은 내색을 많이 했는데 그 사람들은 아니라고 얘길 하니까 모르겠더라고요. 왜 그러는지. 더군다나 ‘손이’는 그 일(성폭력 사건)이 있었을 때 계속 있었던 사람이고 김ㅇㅇ도 알고 있고, 김ㅇㅇ을 통해 박모도 얘기를 들었다고 하고, 그런데도 모두 전혀 내색하지 않고 늘 즐거웠던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이해가 잘 안돼요.
‘손이’, "이 사건이 알려지거나 이러면 자기는 정치생명이 끝이다"했다.
참세상: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만났을 때도 사람들 태도가 그랬다는 거죠.
피해자: 네. 그리고 계속 저한테 주입만 시키는 거예요. ‘김ㅇㅇ(성폭력 가해자)과 당신하고 친하면 되는 거다’라는 식으로. 둘이서 친하면 되는 거다. 박모와 김ㅇㅇ은 저를 위해 휴가를 받았다고 하면서 저를 따라붙었던 거였고 ‘손이’는 저한테 계속 연락하면서 저를 불러내는 역할을 했던 거 같아요.
그냥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어요. 저를 걱정해주는 모습을. 근데 그런 모습은 안 보이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후엔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인권연대에 도움을 청하고 언론에 보도 되기 전까지는 그들하고 관계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손이’도 만나자고 하는데 제가 계속 안 만났고요. ‘손이’는 자꾸 만나자고 하고 집에도 찾아오고 쪽지도 남기고 가고...쪽지를 남기고 가도 걔는 늘 미안하다는 말이 다였거든요. ‘이석행 위원장 면회를 갔다왔는데 언니를 걱정하더라. 위원장님 살이 너무 빠졌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그런 거지 저를 걱정해 하는 말은 없어요. 늘. 제가 너무 몰랐어요. 그때 상황을. ‘손이’가 봄부터 도피 은닉에 개입되었고 그렇게 깊게 관련 되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몰랐거든요. 만약에 그걸 알았다면 숨겨주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진화 전 위원장이 개입돼서 봄부터 같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안 했을 것 같아요. 저는 미혼이고 혼자살고...그들의 모습에서 많이 힘들었어요.
‘손이’가 그랬거든요. '제가 용서만 해주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 앞으로 편하게 살아갈 것 같다. 이 사건이 제대로 알려지거나 이러면 자기는 정치생명이 끝이다. 자기는 정치적으로 사망'이라는 말을 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참세상: 그런 말을 한 건 언제 쯤. 언론에 공개되기 전인가요.
피해자: 공개되기 전에.. 민주노총 1차 진상조사위가 진행되고 자기도 조사 받으러 다니고 이러면서...
참세상: 1차 진상조사위가 얘기 될 때쯤에 그런 것이면 전형적인 2차 가해일 수 있는데 ‘손이’는 그런 것도 몰랐던 건가요.
피해자: 자기는 그게 2차 가해가 아니고 나를 얘기하는 게 2차 가해라 생각해서 함구하고 있었다고 하고, 자기가 나를 만나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 자체가 잘못했단 것을 전혀 못 깨닫고 있는 아이였으니까요.
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제 마음을 아이들 마음 달래듯 내(‘손이’) 편으로 만들어 저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던 같아요. 지금 판단해 보면.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참세상: ‘손이’와는 그 전엔 매우 친했던 것 같군요. 어느 정도 였나요.
피해자: 지회에서 오랜 동안 같이 활동하다보니 ‘손이’가 저를 많이 따랐어요. 걔 성격이 사람 가림도 없고, 사람에게 애교를 많이 하는 성격이거든요. 제가 지회에서 오래 활동을 했고 저를 많이 따라서 같이 여행도 다니고, 그전에는 걔가 그런 사람이 아닌 정말 학생 때부터 자기가 운동했다고 얘기하고 늘 마당발이긴 했어요. 여기저기 안다니는 곳이 없더라고요. 찾아다니면서 빠른 소식을 가지고 저희에게 얘기해 주고 이러다 보니까 집행부들은 얘가 굉장히 소식통이고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이미지 였어요. ‘손이’가
참세상: 그랬는데 일종의 배신을 당한 건데. 그 이후 사람에 대한 믿음, 이런 것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네요. 같이 활동한 사람, 친했던 사람, 혹은 자기와 타인과 관계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피해자: 일단 사람 만나는 것이 싫구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언제가 글에서 제가 대인기피증이란 표현을 썼는데 일단 참 사람이 싫어지긴 했어요. 지금도 지지모임 분들하고, 제 일을 아는 사람 열 명 정도만 봐요. 이 사람들 관계가 다에요. 그 외 사람 말은 잘 귀담아 지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제가 자꾸 딴생각을 하고 있고 그 자리가 30분만 지나도 싫어지더 라구요.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지금도 저의 지회 집행부 후배들은 가끔 저를 불러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하는데 만나러 나가는게 힘들어요.
일을 풀어 나가면서 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고 그러니까 저한테 상처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많이 말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설명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많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전처럼 회복시키려면.. 많이 외로운데도 혼자인 상태에 많이 길들여지는 그런거... 그전에는 영화도 같이 보고 산도 같이 가고 그랬는데 사건 이후에는 어디를 가도 혼자 다녀요. 가족들 아니면 거의 혼자 다녀요. 가족들은 모르니까.
“1차 진상조사 보고서 받아보고 상처가 많이 받아"
참세상: 2009년 4월 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낭독을 했는데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그 때 제게 겹쳐진 이미지가 전교조 지회장까지 하신분이 이렇게 사건을 공개하고 자기와 친했던 사람에 대해서 혹은 조직에 대해서 공개적인 언론에 조직이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사건이 공개 되고 대리인들의 성명서가 나갔을 때 그 때의 마음은 좀 어땠는지.
피해자: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제가 피해사실을 알렸고 1차 진상조사 위가 이뤄졌었잖아요. 사실 그때도 많이 망설였어요. 주변분들은 고소해야 한다고 많이 해 주셨지만 정진화 전 위원장이 저한테 그렇게 모질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아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많이 망설였어요.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전교조엔 얼마나 큰 타격이 될까. 그래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가 정진화 전 위원장에게 말을 했고요. 제가 말하는 순간은 조직에서 잘 해결해 주라는 거였거든요. 그 뜻을 대리인을 통해서 많이 전달했고.. 근데 아시는 것처럼 제대로 못했거든요.
1차 민주노총 진상조사위 보고서를 받아보고 나서 상처가 많이 컸어요. 이건 아닌데, 관련자인 ‘손이’나 박모나 김ㅇㅇ의 진술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에서 지도위원이란 사람들도 와서 얘기 했었고, ‘손이’도 만나보고, 정진후 위원장도 얘기 했었고 나름대로 저는 많이 원하는 바를 얘기 했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잖아요. 그리고 그걸 계속 그때도 대리인의 문제처럼 얘기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정신과 상담 중 격해지면서 조직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손이', 정진화 전위원장, 정진후 현위원장 등을 용서 못해"
참세상: 대리인의 문제라고 하는 건?
피해자: 그때도 계속 연락을 취해서 얘기했는데 정말 민주노총이 문장으로 자세하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써달라고 할 정도로 요구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저나 대리인은 그만큼 얘기 했으면 알아서 결론을 내와라. 거기에서 이런 부분은 수용을 못 하고 이건아니다라는 것을 하겠다. 그걸 안 주면서 연락 두절이다 얘기들이 돌았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실망을 한 거죠. 저는 한 달 이상 기간을 기다렸던 거잖아요. 해 놓은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그전에 그런 얘기는 있었어요. 제 얘기가 여러 곳에서 떠도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오 국장은 굉장히 불안해하던 상황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대책 세워야 하나 고심 중에 언론보도가 된 거였거든요. 어쨌든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언론에 보도 된 것은 잘 못한 거죠. 정말 저를 보호하고 저의 아픔을 생각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 거죠. 이게 다른 거와 다르게 수배보위와 연관 된 거기 때문에 제 신분이 그대로 노출이 된 거예요.
사실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조차도 제가 워낙 그 지역에 계속 20여년 근무하고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까 제가 학교 현장에서 많이 알려진 상태였거든요. 제가 (학교를) 이동하면 거부하고 막 이런 정도였기 때문에 전교조가 조중동에 먹잇감이 됐다는 것처럼 사실 저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어요. 그때는 내가 조직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화나고 못 견디겠더라구요. 제가 정신과 상담을 하면서도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상담가가지구 의사 선생님이 저와의 상담을 중지 시킬 정도로 그만 말하라고. 제가 격해지니까 더 이상 얘기하면 제가 쓰러질 것 같이 느끼니까. 그때부터 조직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이... 그때 오 국장(인권실천 시민연대 오창익 국장. 오 국장은 사건 초기 대리인이었다)이 기자회견문 작성 한 것을 저한테 보여 줬을 때 사실은 좀 과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왔어요. 근데 용서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계속 죽음을 당하고 죽어 가는데...
그러면서 기자들 이런 거에 시달리면서 더 용서 못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여전히 ‘손이’는 반성하지 않고, 정진화 전 위원장은 나타나지 않고,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사탕발림만 하고, 민주노총은 별로 나서지 않고... 오 국장이 말한 것처럼 제가 소모품 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언론보도 나오고 나서. 왜냐면 1차 진상조사 때는 방학기간이라 그나마 살 것 같았는데 개학하자마자 터지고 고스란히 겪어야 했고...수면제를 많이 먹었어요. 그땐. 잠이 안와서...지금도 '손이', 정진화 전위원장, 정진후 현위원장 등을 용서 못해요.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에 사건 말한 것 후회했다. 그리고 화가났다.”
참세상: 조금 얘기가 나왔는데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은.
피해자: 그냥 놀랐어요. 처음에 우리 학교 앞으로 12월 18일인가 찾아왔을 때 왜 이 사람이 지금 찾아왔을까 내가 우리 집에서 잡힌 걸 알면 벌써 왔을 텐데 왜 이제 왔을까. 와서는 별다른 얘기도 안 했고 ‘선생님이 궁금해서 왔다’ 그게 다였거든요. 뜬금없이 목도리를 사 와서 주길 래 받지 않았어요. 그다음에 23일 날 만나서 (성폭력 사건을) 얘기 했을 때 글쎄요. 그 사람은 원래 그 정도밖에 표현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다지 놀라지 않았어요. 제가 만일 위원장이었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당혹스러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정진화 위원장은 굉장히 차분했어요.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저한테 묻지도 않았거든요.
제가 말을 안 했다고 하는데. 제가 그 사실을(성폭력) 23일 얘기를 했는데 , 28일 날 만났을 때 자기가 집안일로 지방을 갔다 와서 26일이나 민주노총에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저는 그게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든요. 제가 그렇게 호소했는데 어떻게 집안일 때문에 3일이나 지방으로 볼일을 보고 와서 얘기를 할까...
이미 나와 있는 것처럼 정 전 위원장은 조중동 얘기하고, 이석행하고 저하고 내연의 관계 얘기하고, 조직을 생각해 달라는 얘기 하고...그 당시에는 제가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은 그런 말을 자꾸하는 데 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후회했어요. 괜히 말했구나. 후회스럽고 화나고. 뭐라고 막 이렇게 감정 표현을...욕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정진화 위원장하고 마주보고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싫었어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다가 입을 닫게 된 거고요.
지금도 솔직히 후회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후회돼요. 그때 막 욕이라도 했으면... 그 이후 정진화 위원장을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욕이라도 했으면 그 사람이 자기가 얼마나 잘못 했다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근데 난 욕도 못하고 그냥 그런 모진말만 듣고 그 이후까지 계속...그랬기 때문에 막 욕하고 싶어요. ‘손이’도 불러다 놓고 욕하고 싶고요. 정진화도 그렇고, 정진후도 그렇고, 박ㅇ훈(전교조 2차 가해자중 1인)다...근데 못하겠더라고요. 상담 선생님께서 ‘쟤네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제가 더 못 견딜거라구.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는 얘길 해주시더라구요. 근데 지금 가끔 욕해요. 혼자서. 그들은 내 앞에 없지만 자다가도 욕하고 가끔 꿈에서도 욕하고...정진화 위원장의 그 차분한 모습이 안 잊혀요. 저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혹시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 민주노총은 지난 9월 17일에오는 5일 대의원 대회에서 채택할 '2008년 12월 5일 발생한 김모 성폭력 사건의 평가보고서' 채택과 조직적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피해자는 이 토론회에도 참가했다. [출처: 자료사진] |
참세상: 최근에 평가 토론회도 나오시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 인가요.
피해자: 겨울인 것 같은데, 지지모임 회의에 오면서부터 제 문제에 관련한 장소에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많이 아픈데도 쓰러지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참세상: 저도 전교조 토론회도 가고 했는데 정말 괴로울 것 같습니다.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들은 피해자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반박할 것 다 반박하고, 그걸 보면서 또 분노와 고통을 느꼈을 것 같은데요. 토론회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고 민주노총 평가보고서(안)을 두고는 어떤 판단을 내리시는지.
피해자: 제가 그런 장소에 나가기 전에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았잖아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계속 저희 전교조 홈페이지 조합원마당에 저를 비난 하는 악성 글도 많이 오르고. 재심위 과정을 통해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얘네들은 또 이렇게 말하는 구나 그렇게 생리화 됐다는 게 적당한가.
그런 게 저한테 생겨난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실은 많이 아픈데도 내가 쓰러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게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거였고,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고...어쨌든 끝날 때까지는 나는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받아들이자’ 자꾸 저는 제 마음 다지기를 하는 거예요...근데 솔직히 힘들어요. 전교조 토론회에 갈 때도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했고, 그때도 사실 시작할 때 토론회 장소인 전교조에 미리 가 있지 못하고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고 간 거였거든요...얘기가 약간 빗나갔지만 그럴 때 제일 못 견디겠어요.
우리 지회 친한 후배가 상을 당했을 때도 달려가야 하는데 못 가니까. 가도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범인이 몰래 숨어가듯이 얼른 갔다 와야 하고, 그 오고 가는 순간 그때를 정말 못 견디겠어요. 어쨌든 토론회든 뭐든 마음을 잡고 간 거거든요. 난 가야 된다. 내가 잘 들어야지 내가 잘 싸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피하지 말아야 되겠다. 내가 많이 힘들고 지치고 쓰러질지라도 나는 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갔어요. 그리고 들었고...그러고 나면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잘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그러곤 한데 그래도 이겨야 하잖아요. 그들을 이겨야 할 것 같아요. 얘들처럼 이겨야 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거든요. 이겨내야 할 것 같아요. 100% 만족스럽지 않지만 ‘나 조금이라도 싸워서 이겼다’라고 해야 이후에 제가 좀 버티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하면서 가요.
평가팀을 참관할 때도 많이 힘들었는데 한 번 두 번 가면서 오히려 제가 다져지는 것 같기도 하고...평가팀 회의를 처음 참관했을 때는 비공개 자료에서 ‘손이’ 진술서를 보고 거의 제가 발작 수준이 됐거든요.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안 되더라구요. 거기 있던 평가 팀 평가위원이 다 놀랄 정도로요. 그런 과정이 저를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 민주노총 평가보고서를 큰 기대하지 않고 시작하긴 했어요. 저를 잘 아는 선배 후배 조차도 저한테 그런 말을 하거든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뭐 그렇게 쌓인 게 많냐고 그만 하라고...그런 말을 들으면서 왔기 때문에 제가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별 기대는 안하구요.
오늘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서 말씀을 드렸지만 50%라도 제가 이제까지 갖고 왔던 것들, 지지모임 분들이 함께해준 것들이 50%라도 반영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마음 비우고 그냥 저도 공부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면서 나중에 제가 안정되면 나도 지지모임 분들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 되고 싶고.
솔직히 겁은 나요. 이게 다음 주 대의원대회면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끝나니까 그 이후에 정말 내가 다시 홀로서기 하면서 다시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출발이다 생각은 하는데, 겁도 나기는 해요. 그래도 잘하고 싶어요. 전교조 성평등 특위나 민주노총 평가보고서나 이제까지 함께 해준 분들과의 과정에 의미를 두려는 마음으로 버티고 왔던 것 같고요.
참세상: 전교조 내에서 징계 대상자들이 글도 올렸고, 그 이후 구명운동 일어나고, 전교조 징계 재심위는 징계 양정을 경감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보시는지.
피해자: 그때 당시는 그냥 단순하게 해도 해도 너무하는 구나 화가 컸던 것 같아요. 좀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힘의 논리가 많이 느껴졌어요. 저는 조합원 활동을 오랫동안 했지만 내가 어떤 위치에서의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현장에서 현장을 바꿔나가는데 최선을 다하면 그게 나의 운동이고 그게 내가 제대로 사는거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많이 지회장을 하라고 했고 지부나 본부 단위에서 제안이 들어와도 받아들이지 않고 지회에서도 제가 거의 십여 년 만에 수락 해서 2년 동안 지회장을 했던 거였거든요.
근데 아닌가 봐요.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민주화 운동하고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어떤 위치나 권력이나 이런 것들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걸 느꼈고요. 지금 제가 어설프지만 한 여성 조합원의 삶은 중요한 게 아니구나. 그들한테는 너무나 그들이 보이는 겉모습과 그들의 내면에 가진 것은 너무나 다르구나!, 제가 그것을 풀기에는 너무 어렵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들이 저에 대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각을 가진다 할지라도 현실은 그쪽의 구도 안에서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었구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단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그 실체를 분명하게 말하기는 힘든데 제가 사고하는 범위 이상의 뭔가가 있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는 잘 몰랐어요. 그때는 그냥 막 화가 났어요. 이렇게 아픈 사람에 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최소한 그들을 그렇게 까지 악한 구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생각할 수 없었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이제는 조금 많이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싸워오는 게 이렇게 힘든 것 같아요. 내 앞에 보여 지는 그들은 흰색이었다면 그들이 나한테 등을 돌려서 보여주지 않는 검은색을 모르고 이제까지 왔나 그런 생각도 많이 해요.
참세상: 이 문제를 정파적으로 바라보고, 사실은 조선일보가 그렇게 몰아갔거든요. 제가 보기엔 참 정신분열적인데 전교조가 가장 싫어한다는 언론이 조선일보라 할 수 있는데 정파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조선일보 입장이 같은 거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이런 정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특히 이번에 조선일보 기자가 토론회를 보고 쓴 것도 차기 선거구도 이런 식으로 썼는데.
피해자: ...그거를...그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 해줘야 하나...
참세상: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피해자: 아니요. 어쨌든 저는 제가 정파적이지 않고 조직 내에서도 제가 정파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요. 박ㅇ훈(전교조 2차 가해자)의 진술을 보면 제가 어느 정파에 속하느냐는 질문에 아무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답변을 하고 있더라고요.
참세상: 그냥 ‘손이’와 친한 사람이었던?
피해자: 그럴 수도 있고, 그냥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 제가 5-6년 전에도 학내문제로 이전 학교에서 교실련인가 하는 보수 교육감이 만든 단체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고발하고 해서 법정싸움을 한 3-4년 했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우리 학교 앞에서 집회도 많이 하고 해서 그냥 열심히 하는 현장 활동가 정도 생각을 했겠죠. 근데 그런 거는 있었어요. 잘은 모르지만 저희 전교조 내에 대표적인 정파가 교찾사와 참실련이잖아요. 근데 저희 지회가 약간은 교찾사 쪽보다는 참실련 쪽의 정책 방향이나 이런 것들에 조금 더 공감을 하는 건 있었어요. 그렇다고 저희는 이쪽이나 저쪽을 분명하게 지지하는 지회도 아니었고. 그러다가 지금 정진후 위원장과 김현주 수석부위원장이 나올 때 하도 도움 요청을 많이 해서 잠깐 저희 지회가 분회 방문을 다니면서 그쪽 선거운동 비슷하게 해주긴 했죠. 아마 그 영향으로 정진후 위원장이나 참실련 쪽 지금 지도부들이 저를 자기네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저를 잘만 달래면 되겠다라는 생각을 더욱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문제를 가지고 이후 4대 선거도 있고 한데, 선거라든가 자기네 정파에게 유리한 쪽으로 제 사건을 이용한다고 해야 되나, 그러면 저는 절대로 용서 안할 거거든요. 그러면 가차없이 공개적으로 제 생각을 발표할 겁니다. 제가 정파적이면 이렇게까지 못해요.
참세상: 2년 넘도록 해결이 안 된 이유와 앞으로 해결과정을 어떻게 밟아야 합니까.
피해자: 일단 다음 주(5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 해결이 안 된 이유는 그들이(전교조가) 놓지 않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의식이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쟁점인 조직은폐 이걸 못 놓고 있잖아요. 왜 못 놓는지는 자기들은 운동가고 활동가고 도덕적이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품고 그렇게 살아오고 그렇게 조직을 지켜 나갔고, 뭔가 정말 잃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상 같은 사회적인 권력, 이런 것의 노예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저도 그게 아니면 이해가 자꾸 안 돼요. 왜 못 받아들이는 지 모르겠어요.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가 싶어요. 내가 그 사람이면 나도 그랬을까 하면서 자꾸 반복해서 생각해요. 답이 잘 안 나오고 제가 얘기하면 제 앞에서 알아듣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얘기하는데 돌아서고 나면 그 자리에 있는 나도 매일 똑같은 싸움을 그들과 하고 있는데...
(피해자는 해결 과정을 얘기하면서 가슴을 많이 쓸어내렸다.)
그들도 저에 대해 조금은 아파할거라 생각해요. 저도 그들이 반성하지 않는 게 갑갑해요. 쿨 하게 잘못했다 그러면 다 잘 살 텐데...그건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더 많이 생각해보고 싶어요. 사건이 한 순간에 파도처럼 밀려와 제 내면에서 받아들여지는 여지가 어떤 것은 있고 반면 아직 안 되는 것이 많아요. 시간이 필요해요. 저도 좀 더 이런 것들을 공부를 해야 되나 싶어요. 그 안에 있으면 저도 시원하고 명확하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교조 집행부가 자꾸 전교조를 피해자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에 미치도록 화가 난다"
참세상: 전교조가 쟁점을 부여잡고 있는 조직적 은폐조장이나 2차가해라는 쟁점을 어떻게 보시는지.
피해자: 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이 조직적 은폐를 했고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던 마음이 더 커요. '손이‘가 둘이 만나자고 할 때 만나고 싶었는데, 걔를 만나서 ’너 아니지?‘ 묻고, 반성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주변에선 만나면 상처를 입을 거라고 했는데, 만나고 나면 상처만 남았어요. 조직적 은폐냐 은폐조장이냐는 말장난이에요. 그거나 그거나 저한테는 같거든요. 그 행위를 한 주체가 있어요. 개인적이라 조직적 은폐가 아니라는 건 우스워요. 2차 가해도 마찬가지에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말 모르겠냐는 거예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처음엔 몰라서 그러는 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다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라고 자꾸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끝까지 인정을 안는다면 자기네들이 한 일이 있기 때문에 앞일이 있으면 뒷일이 이어지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자기 나름의 일관성 있는 행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나쁘게 말하면 벌을 받을 거예요. 내가 아픈 만큼 그들도 아프면 좋겠어요. 가끔 벌 받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가해자인 김모 보다 민주노총보다 사건 발생 이후 저를 가장 힘들게 하고 상처주고 아프게 한 것은 전교조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지도부인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의 간부들이라고 해야 맞겠죠...학교 현장에서 정말 순수하게 학내 민주화를 위해 애쓰는 조합원들을 생각하면 전교조라고 말하는 게 너무 가슴 아프고 화가 나고 그들을 더욱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들이 자꾸 전교조를 피해자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에 미치도록 화가 나요. 피해자조직이면서 왜 이토록 저를 죽이는 것인지...
참세상: 일각에선 피해자 중심주의가 다냐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무조건 피해자 말을 다 들으라는 것이냐는.
피해자: 그럴게 생각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피해자가 말하는 것이 결코 무리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제 얘기 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이렇게 피해 입은 사람이 다 말하는 것이 고통인데 되묻고 싶어요. 다 얘기 하라고 했는가? 얘기 하라고 하고선 그런 말을 하면 자기들 행위에 합리화와 정당화만 해요. 피해자 말만 들어만 봐도 되는데, 피해자 얘기는 듣지도 않아요. 올곧게 듣기라도 하면 좋겠어요.
“단 하루만이라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참세상: 이 사건의 해결과정과 자신의 치유에 대해 마지막으로 얘기해 주신다면요.
피해자: 그동안 끊임없이 해결 과정을 얘기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그들을(민주노총 대의원들) 움직일 수 있을까 어려워요. 지난 토론회를 통해 김영훈 위원장이나 노우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실체를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이지만 이제 깨닫는 것 같아요. 지난 민주노총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 제가 전한 글에서 더 제 마음을 담고 전하고싶은게 아녔나 싶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조직에 더 많은 희망과 기대가 있던 상태였거든요. 지금은 해결과정을 말 하라고 하면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낼 것 같아요. 일단 대의원 대회를 지켜볼래요.
저의 치유 문제는 아직 생각을 못해 봤어요. 전교조는 저의 치유예산을 잡고 있다 하는데 그걸로 저를 치유하는 데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안 하고 싶고. 치유는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참세상: 5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 대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해자는 들고 있던 안경만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숙였다가 천정을 보다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리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피해자: 그냥 평범하게 단 하루라도 살고 싶어요. 일어나서 먹고 편히 자구 그런 삶이 제일 그리워요. 현재로는 아침에 눈을 뜨면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그냥 전처럼 눈을 뜨면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고 일분일초라도 편히 자고 싶고 이런 거 하고 싶어요.
답이 될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게 제일 하고 싶어요. 단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