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지난 17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 조직적 과제를 도출하기'라는 토론회를 22일 보도하며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민노총과 전교조는 사건 평가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김씨로부터 사건을 처음 접수했던 당시 전교조 지도부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두고 전교조 지도부와 피해자 김씨측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은 “이 같은 대립이 2년 가까이 이어지는 것은 위원장 선거를 앞둔 조직 내부 싸움이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 연말에 치러질 전교조 위원장 선거를 두고, 전교조 내 우파계열인 현 지도부와 이에 도전하는 좌파 계열(피해자 김씨측과 협력)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마치 성폭력 피해자가 선거승리를 위해 좌파계열과 협력해 2년 동안 일부러 현 전교조 지도부를 문제 삼는 것처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노동계 관계자라는 익명의 취재원의 말을 빌어 "만약 (전교조) 지도부측이 조직적 은폐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면 연말 위원장 선거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때문에 양측이 기를 쓰고 대립하고 있다"고 분석도 곁들였다.
평소 왜곡편파라던 조선일보를 진보진영은 믿지 않겠지만
우선 조선일보는 기사에 신뢰성을 더하기 위해 피해자를 어는 정도 아는 양 피해자가 ‘김씨’라고 했지만 피해자의 성은 ‘김씨’가 아니다. 기본 팩트 조차 틀렸다. 평소 전형적인 왜곡과 편파라며 조선일보 기사를 신뢰하지 않는 민주노총, 전교조 등의 진보세력들이야 이 같은 분석을 그닥 믿지 않겠지만, 노동운동을 잘 모르는 시민들은 또 다른 왜곡으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조선이 보도한 성폭력 사건은 2008년 12월 5일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수배도피 과정에서 이 전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피해자에게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성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그 후 전교조의 몇몇 지도부들이 피해자를 만나 ‘조직’을 거론하며 피해자를 위축시켜 ‘조직적 은폐, 은폐조장’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민주노총은 당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신속하게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성폭력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진상을 조사했다.
진상조사 특위는 조직이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직접 회의를 하는 등의 행위는 확인 하지 못했지만 조직의 고위 간부들이 조직을 거론하며 피해자를 압박했다며 조직적 은폐조장 행위가 있었다며 관련 2차가해자들을 징계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2009년 4월 1일 대의원 대회에서 이 보고서를 공식 채택했다. 그러나 전교조는 1차 징계위원회에서 2차가해자들을 제명했지만 2차 징계재심위원회에서 이들을 경고로 조치하고 조직적 은폐조장행위가 없었다고 특위 보고서를 뒤집어 버렸다. 이 사건이 2년을 끌어온 것은 전교조 재심위 결과를 피해자가 계속 문제제기했으나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의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건의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데도 진보진영 성폭력 사건 해결의 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 보다는 전교조가 제기하는 몇 가지 논점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보고서를 두고 조선일보가 전교조 내 좌파우파계열 대립으로 바라보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이 문제를 좌파계열의 주도권 싸움인 것처럼 보이도록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장혜옥 전 전교조 위원장을 강경좌파 주도세력으로 분류한 표도 제시했다. 그러나 장 전 위원장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교조의 토론문을 강력하게 비판한 한 여성은 자신을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전교조의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은 10여년의 여성운동사에서 격한 논란을 일으킬 만큼 다양한 논란이 일었기 때문에 여성 문제에 관심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목했다.
또 토론회에서 강하게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피해자 지지모임에 속해 있었다. 피해자 지지모임은 다양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함께하고 있다. 지지모임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힘이 못돼 가슴 아파하던 전교조 소속 조합원 들이 나서서 카페를 만들고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올바른 사건해결과 피해자 치유를 요구하면서 생겨났다. 지지모임에는 이전 성폭력을 경험했던 피해 여성들이나 자신이 한때 성폭력 2차 가해자였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해 참가한 남성도 있다. 성폭력 상담소에 소속된 여성활동가도 있다.
▲ 조선일보가 만든 성폭력 은폐사건에 대한 전교조 좌우파 분류표 |
이런데도 조선은 피해자와 지지모임이 전교조 좌파와 선거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듯이 썼다. 굳이 지지모임의 파를 정하라고 한다면 여성(주의)파 또는 피해자 파다. 이들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사건 해결의 주요 열쇠로 두고 고민한다. 피해자의 아픔과 피해자의 치유복귀, 올바른 사건의 해결과 민주노총, 전교조의 성찰과 실질적 조치를 동반한 반성을 요구한다. 지지모임 카페엔 280여명 개인들이 가입해 있고, 전교조 내 좌파성향의 조합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도 있다. 이를 근거로 지지모임 활동을 하는 전교조 조합원들이 차기 전교조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피해자를 이용하고, 피해자도 전교조 좌파에 협력한다는 식의 보도는 성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피해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차기 전교조 선거 승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자신을 처참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조직과 2차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반성과 사과, 그들에 대한 합당한 조치다. 그래야 피해자가 암울하고 힘들었던 2년을 이기고 건강하게 살아돌아와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