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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선 노동자들, 뭍에 오르다

[기고] 육지 위의 삶이 늘 갈망이던 예인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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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청 앞에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흘러나오고 있다. 벚꽃나무 가로수 아래에 꽃잎처럼 소복이 내려앉아서 웃거나, 때로는 슬쩍슬쩍 눈물을 훔치며 영상 속 화면에 담긴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노동자들. 애잔한 음률을 타고 흐르는 영상에는 지난 팔월 한 달 간의 파업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삼일이면 다 끝날 줄 알았다는 파업이 달을 넘겼다. 9월이 시작되는 첫날, 예인선 노동자들은 울산 시청 앞으로 모였다. 삼일간의 노숙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항만청도 노동부도 예인선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지난 한달, 울산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하고 마침내 예인선 노동자들이 시청 앞으로 몰려 왔다. 보도블록이 덮여있는 인도위에 스티로폼 한 장 깔고 시작한 노숙이다. 길 위의 삶. 다행히 가로수로 심겨져 있는 벚꽃 나무가 줄기를 뻗고 푸른 잎들을 많이 뿜어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잎들이 지붕처럼 예인선 노동자들을 가리고 있다. 이정도면 한낮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 수 있겠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흐르는 밤, 예인선 노동자들의 비상구는 어느 끝쯤에 자리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느 한사람이 앞서서 선동해서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몸으로 겪고 그 체험을 통해 느껴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흔들리지 않아요.’

매암 부두에서 만났을 때 보다 훨씬 밝아진 표정들을 보고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무의 몸을 동그랗게 감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있던 예인선 노동자들은 이 투쟁이 재미있고 신이 난다고 했다. 부두가 아니라 시청 앞으로 오니 시민들을 많이 만나 선전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곳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신이 난다고 했다. 올 해 스물 네 살인 젊은 노동자는 끼니때마다 식사가 지원되니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제일 좋단다. 어느 새 긴 수염과 엉클어졌던 머리까지 단정하게 자른 한 노동자는 부두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계속 환하게 웃고만 있다. 매암부두에서의 고립된 투쟁에 비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예인선 노동자들의 삶을 알릴 수 있는 시청 앞 노숙 투쟁이 확실히 노동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 선 듯 하다.

  파업 투쟁을 담은 영상을 보고 있는 예인선 노동자들

이틀이면 법정 노동시간을 넘기고 한 달에 길게는 사백 시간까지 일한다는 예인선 노동자들,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아이가 태어나던 날까지도 배위에 있었다는 이 사람들이 한 달 가까이 뭍에 머물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안정된 육지위의 삶, 육지에는 가족이 있고 그리운 벗들이 있으며 희망이 있었다. 예인선을 탄 이유도 육지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만지고 따뜻한 밥상에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는 육지. 그러나 예인선을 타며 산 날들은 몸과 영혼이 부서져 나가는 날들이었다. 쫓기듯이 집으로 잠깐 들어와 새벽 다섯 시면 다시 예인선 배위에 있어야 했던 수 십 년의 삶, 그마저도 대체 근무나 야간에 걸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날들이 많다 보니 육지위의 삶은 늘 갈망이었다, 그리움이었다, 아니 닿으려 안간 힘을 써도 그에게서 멀어지는 뜨거운 한이었다. 그들이 지금 한달을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육지, 그것도 울산의 한복판인 시청 앞 이다. 돌아오기 위해, 희망이 있는 육지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들이 바다를 떠났다. 다시 육지로 돌아오기 위해 지금 오래오래 육지 위에 머무르고 있다.

  시청 남문 도로가에 내걸린 현수막들

따뜻한 커피를 끓여 주기도 하고, 한잔 하고 가라며 자리까지 내주는 예인선 노동자들의 모습은 파업초기의 부두에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파업 한 달,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달라졌다. 회사와 협상은 전혀 되질 않고 있지만 그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웃고 더 수다스럽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 밖으로 넘쳐 난다. 예인선을 타는 시간 동안 이런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뚫고 솟아난 이 웃음이, 이 눈물이, 이 많은 이야기들이 그래서 눈물겹다. 파업 한 달, 예인선 노동자들은 이미 이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