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한사람이 앞서서 선동해서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몸으로 겪고 그 체험을 통해 느껴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흔들리지 않아요.’
매암 부두에서 만났을 때 보다 훨씬 밝아진 표정들을 보고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무의 몸을 동그랗게 감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있던 예인선 노동자들은 이 투쟁이 재미있고 신이 난다고 했다. 부두가 아니라 시청 앞으로 오니 시민들을 많이 만나 선전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곳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신이 난다고 했다. 올 해 스물 네 살인 젊은 노동자는 끼니때마다 식사가 지원되니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제일 좋단다. 어느 새 긴 수염과 엉클어졌던 머리까지 단정하게 자른 한 노동자는 부두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계속 환하게 웃고만 있다. 매암부두에서의 고립된 투쟁에 비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예인선 노동자들의 삶을 알릴 수 있는 시청 앞 노숙 투쟁이 확실히 노동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 선 듯 하다.
▲ 파업 투쟁을 담은 영상을 보고 있는 예인선 노동자들 |
이틀이면 법정 노동시간을 넘기고 한 달에 길게는 사백 시간까지 일한다는 예인선 노동자들,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아이가 태어나던 날까지도 배위에 있었다는 이 사람들이 한 달 가까이 뭍에 머물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안정된 육지위의 삶, 육지에는 가족이 있고 그리운 벗들이 있으며 희망이 있었다. 예인선을 탄 이유도 육지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만지고 따뜻한 밥상에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는 육지. 그러나 예인선을 타며 산 날들은 몸과 영혼이 부서져 나가는 날들이었다. 쫓기듯이 집으로 잠깐 들어와 새벽 다섯 시면 다시 예인선 배위에 있어야 했던 수 십 년의 삶, 그마저도 대체 근무나 야간에 걸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날들이 많다 보니 육지위의 삶은 늘 갈망이었다, 그리움이었다, 아니 닿으려 안간 힘을 써도 그에게서 멀어지는 뜨거운 한이었다. 그들이 지금 한달을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육지, 그것도 울산의 한복판인 시청 앞 이다. 돌아오기 위해, 희망이 있는 육지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들이 바다를 떠났다. 다시 육지로 돌아오기 위해 지금 오래오래 육지 위에 머무르고 있다.
▲ 시청 남문 도로가에 내걸린 현수막들 |
따뜻한 커피를 끓여 주기도 하고, 한잔 하고 가라며 자리까지 내주는 예인선 노동자들의 모습은 파업초기의 부두에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파업 한 달,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달라졌다. 회사와 협상은 전혀 되질 않고 있지만 그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웃고 더 수다스럽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 밖으로 넘쳐 난다. 예인선을 타는 시간 동안 이런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뚫고 솟아난 이 웃음이, 이 눈물이, 이 많은 이야기들이 그래서 눈물겹다. 파업 한 달, 예인선 노동자들은 이미 이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