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나는 벌레였다
비굴했다
작은 굴이나 틈 혹은
고치 속에 숨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았다
비바람을 탓하고 눈을 원망했다
추위가 두려웠다
봄이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참고 견디기 싫었다
허리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었다
번데기로 굳어 외면하며
감히 맞서지 못하고
눈치나 보며 살았다
꿈꾸지 않으니 희망이 없고
저항하고 싸우지 않으니
강해 질 수가 없다
모든 성과는 투쟁의 결과
봄이 와도 새로운 날개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대로 굳어갈밖에
그리고 여름, 굳어가는 번데기에서
하얀 버섯 하나 솟았다
푸른 각성이 포자가 되었다
내가 죽고 썩어야 버섯 하나 자란다
* 최근 몇 달 사이, 많은 큰 분들이 돌아가셨다. 기꺼이 썩어서 다음 시대의 먹이가 돼 주는 분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