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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혁명가들이 타흐리르로 돌아왔다”

[국제] 파라오의 시작과 끝에 선 타흐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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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babodool) 주]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후 휴전을 성공적으로 중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쓸모를 인정받은 무르시는 국내 정책에도 과감한 전환을 시작했다.

‘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새 헌법은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는 제헌의회와 상원(슈라위원회), 무르시 대통령에게 견제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2011년의 혁명적 열정이 충분히 식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한 반혁명 시도일 것이다.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여준 이집트 인민의 용기는 혁명이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물론 아직 어느 한쪽도 승리하진 못했다. 오랫동안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뿌리내려온 무슬림형제단은 설탕과 빵, 고기를 미끼로 빈민을 반혁명의 도구로 동원하고 있다. 군대의 움직임도 여전히 큰 변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표현한 이집트 혁명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나딤 페타이(Nadim Fetaih)가 RoarMag.org에 기고한 아래 글은 이집트 혁명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http://roarmag.org]

이집트의 혁명가들이 타흐리르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파라오를 무릎 꿇리고 진짜 민주주의 도입을 완성하고자 한다.

1970년 사다트가 권력을 잡았을 때 무슬림형제단은 자유 통치의 성장과 함께 불법 정치 단체에서 유일한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이슬람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킬 수 있었고, 정부의 간섭 없이 아이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주입할 수 있었으며, 이집트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풀뿌리 조직을 퍼뜨릴 수 있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났다. 따라서 한 세대 이상 폭력적인 체제에서 유일한 야당이었다는 것, 무바라크 타도를 계기로 대의민주주의를 시행하게 됐을 때 의회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진짜 정당이었음은 분명하다.

2011년 1월 25일 혁명이 시작된 초기에 무슬림형제단은 저항에 동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며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승리 없이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인민의 편에 섰다. 모스크의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시가전에 나선 남자와 여자들에 대해 말하며 기도를 마치기 시작했다. 어떤 흠결도 없는 아름다운 얘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도덕적인 어떤 것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었다. 2011년 2월 11일 무바라크의 퇴진은 이집트 사람들이 수 세대간 본 적 없는 빈 공간을 열어젖혔다. 무슬림형제단이 사태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2012년 여름 이집트에서 첫 번째 민주적 선거가 개최됐을 때 선택지는 서구의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이었다: 바로 차악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 구체제의 대리인인 아메드 샤피크와 무슬림형제단의 회원인 모하메드 무르시가 선택지였던 것이다. 구체제에 신물난 사람들은 무르시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그가 60년 만에 권력에 선출된 첫 대통령이 됐다.

이것이 이집트에서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믿음, 서구의 모든 이들이 듣고 있는 이야기다. “혁명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것이 민주주의고 이것이 이집트 인민들이 싸워서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혁명의 무대 뒷편에서는 진정한 선택권의 부족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선거를 거부한 많은 인민들이 계속되는 국가 탄압과 이슬람 정당이 요구하는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에 맞선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또한 이집트 혁명은 국제적 압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은 누가 권력을 잡든지 상관 없이 이집트의 경제 재건을 돕기 위한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하고, 긴급한 자금 지원에 대한 대가로 극적인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해마다 12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오바마의 약속과 짝을 이루며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 체제와 그의 전임자들이 해왔던 것과 같은 세계 열강을 위한 또 다른 애완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의 지정학, 크기, 다른 아랍 세계에 대한 문화적 중요성 때문에 서구와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와의 동맹은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은 이집트의 무르시를 그들의 동맹을 위한 영웅으로 추켜 세운다. 그들은 무르시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협상을 이끌어낸 사람이라고 찬양한다. 바로 그들이 사다트와 했던 것처럼 국제사회는 무르시가 독재자가 아닌 책임감 있는 실용주의자이자 믿을만한 대화 상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휴전을 발표한 며칠 후 바로 무르시는 이집트 인민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충격을 준 법령을 공표한다.

새 법령에 관한 진실(자료:알자지라)

-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정화를 목표로 한 법령을 공포한다.
- 새 법에 따라 4년 간 대통령은 검사를 임명할 수 있다.
- 무르시는 그가 원하는 어떠한 법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 무르시의 법령은 사실상 현직 검찰청장을 파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어떤 권한으로도 대통령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 무르시는 시위대 살해와 관련된 재판에 대한 재심을 명했다.
- 무르시의 법령은 새로운 의회 선거 때까지 효력을 가진다.
- 의회는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선출될 수 없다.
- 무르시는 또한 새로운 헌법 수립을 위한 추진일정을 늘렸다.
- 무르시는 그 자신이 혁명을 수호하는 절대 권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 법령은 무르시의 절대 권력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상원[슈라위원회]이 (새 헌법 제정을 담당한) 제헌의회와 마찬가지로 [사법부에 의해] 해산되지 않도록 보장한다. 무슬림형제단 대표단 다수는 [상원과 제헌의회] 둘 모두를 마찬가지로 조정한다. 두 집단에서 일부는 저항하지만 이 과정을 중단시키진 못할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새로운 법과 헌법의 일부가 여성 권리를 억압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이집트를 이슬람 국가로 변화시키면서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있다. 무르시의 이러한 후퇴 때문에 많은 혁명가들은 지난 몇 달간 가두시위를 벌이며 지금 인민의 혁명이 도둑맞았다는 의식이 확산되길 바라고 있다.

몇몇 자경단은 여성을 (언어와 육체적으로) 공격하는 폭력배를 찾기 위해 카이로 도심을 수색하고 있다. 이들의 태도는 여성이 안전해질 때까지 스스로를 폭력배와 여성 사이에 위치하며 평화적인 태도부터 보다 더 폭력적인 대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리에서 여성을 학대한 남성의 눈에 페인트를 뿌리는 한 자경단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무르시가 새 법률을 제출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다시 한 번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악명 높은 타흐리르 광장에 횃불을 밝혔다. 상황은 무르시 얼굴의 절반은 무바라크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무함마드 무르시 무바라크”. 그리고 바로 그 안에 무슬림형제단의 실수가 있다: 그들은 대중의 혁명 정신을 식힐 만큼 충분히 기다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확실히 틀렸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집트 사회의 정치적 자각 수준은 전례 없이 성장했다. 특히 무바라크 퇴진 투쟁의 맨 선두에서 싸웠고 봉기에서 친구와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 혁명가들 자신의 혁명적 정서는 특별히 강하다. 그래서 더욱 평범한 이집트 사람들이 무르시의 법률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자신의 투쟁이 소용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기보다 타흐리르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점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인민은 분열돼 있다. 무르시 지지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 거대한 규모의 - 단지 지금 나타나기 시작한 - 종파간 분열이 성장했다. 한쪽에는 자유주의자, 좌파, 판사, 청년, 지식인, 혁명가들이 있다. 다른 쪽에는 무슬림형제단 회원, 동조자들과 1kg의 설탕과 빵 또는 (드물게) 고기에 매수당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 18일간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 기간에 낙타 공격에 동원됐던 이들과 똑같은 사람들 - 이 있다.

거리는 다시 한 번 작은 전쟁터가 됐다. 경찰은 최루탄을 뿌리고, 무슬림형제단 민병대는 평화적인 반정부 인사들을 공격하고, 혁명가들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안절부절하며 군대의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에 일어났다. 바로 혁명의 시작과 같은 이 일은 어느 방향으로든 저울의 균형추를 움직일 것이다. 만약 군대가 반정부 인사들의 편에 선다면 무르시는 오랫동안 인민에 맞서지 못할 것이다. 그의 파라오법은 그것이 제기됐던 만큼이나 빠르게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군대가 무슬림형제단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2011년 11월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당시에, 이는 진실이었다: 군사최고위원회(SCAF)는 “과도정부”로서 권력을 잡았다. 이 기간 내내 시민에 대한 군사재판이 실시됐고 이집트 인민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체제에 맞서기 위해 순전히 투쟁한 것 같다. 체제 스스로는 무너지지 않았다. 단지 얼굴이 바뀌었을 뿐이다. 무바라크로부터 SCAF로, 다시 모하메드 무르시로.

현재 우리는 끝나지 않는 혁명 마지막 무대의 더디고 고통스러운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과정 내 뿌리깊은 내재적 오류에 대한 인식을 현장에 대한 현실성을 통해 강화된다면, 이집트 인민은 무언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봉기에 나서게 될까? 모든 곳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봉기를 전세계에 고무시킨지 거의 2년이 다된 이집트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로 되돌아와 그들 스스로 그와 같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이집트 군대의 [앞으로의] 결정을 포함한 이러한 질문들에는 단지 시간만이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답변이 무엇이든 이 혁명이 시작된지 거의 2년이 지난 지금 그 끝이 가까워졌다. 끝나지 않는 혁명은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들은 2011년처럼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원문]http://roarmag.org/2012/12/egypt-revolution-tahrir-morsi-muslim-brotherhood/
[원제]In Tahrir, the beginning and end of a Pharaoh
[게재일]2012년 12월 3일
[번역자]babodool(http://babodool.tistory.com/)
[]는 번역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