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미셸 이주노조 위원장의 한국에서의 삶을 바꿔 버렸다. 아니 한국에서의 삶이 그의 모든 것을 바꿨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한국은 필리핀에 있을 땐 전혀 관심도 없었던 노동운동을 접하게 했다. 모든 노동운동가가 그렇듯이 미셀 위원장도 노동운동을 접하면서 변했다.
미셸 위원장은 2006년 1월 한국에 들어와 울산의 범퍼업체를 거쳐 경기도 용인의 램 조립공장을 다니다 옆 동료 문제 때문에 이주노조를 알게 됐다. 미셀 위원장에게 이주노조는 이주노동자의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단체였다. 그래서 그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에 기대지 않았다. 이주노조는 문제가 있으면 직접 행동했고 조합원들이 악덕 사장님과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교육을 했다. 미셸 위원장도 열심히 교육을 받고 조직화에도 열심이었다.
그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합법적인 비자를 가지고 있다. 미셸 위원장은 한국에 온지 4년 5개월이 됐고 위원장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한국에 4년 5개월 있으면서 그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제도적 인종주의와 학대를 몸소 겼었다. 많은 이주노조 위원장들과 활동가들이 표적 단속으로 추방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 위원장직을 제안 받았을 땐 주저도 했다. 그러나 이주노조가 지금 투쟁하지 않는다면 이주노동자들은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 속수무책으로 단속추방당하는 현실을 바꿔내지 못하기 때문에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돌입 18일, 단식농성은 30일로 6일째다.
그에게 이번 농성은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가 여전히 활동하고 투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이주노동자 스스로에게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미셸 위원장은 한국사회엔 제도화된 인종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장이 되어서 출입국 소장을 만나면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무식한 존재로 안다는 것이다. 또 회사를 바꾸기 위해 고용지원센터에 갈 때마다 직원은 반말과 짜증으로 대한다.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이주노동자바 받는 차별을 사업주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처리한단다. 그런게 제도화된 인종차별이라는 것이다.
미셸 위원장은 또 한국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다문화 정책은 한국문화 주입정책이라고 일침을 놨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이주 여성에게 한국의 문화만 주입시키고 그 가족이 함께 문화를 공존하도록 하는 정책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미셸 위원장은 “우리는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한국인과 같이 살기 위해 일하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 일 뿐”이라며 “우리는 똑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같은 인간으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국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
참세상은 지난 29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향림교회 이주노조 농성장에서 미셸위원장을 만났다. 미셸 위원장은 이주노조를 얘기할 땐 더없이 진지하면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웃음을 지었다. 미셸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영어 통역으로 진행됐지만 간간히 ‘사장님’이라는 단어만큼은 자연스레 한국말로 나왔다. 한국인 ‘사장님’은 이주노동자에게 ‘인종차별과 악덕’의 의미를 내포한 대명사가 돼 있었다.
어려울 때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장을 맡게 된 과정은...
"2009년 7월에 위원장이 됐다. 2009년 2월 고용허가제로 필리핀에 다시 갔다 재입국 했다. 그 무렵 이주노조가 장기간 지도부 공백이 있었다. 위원장직 제안이 들어왔다."
이전 이주노조 위원장들은 대부분 표적단속으로 추방되지 않았나? 막상 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주저했다. 2006년 1월 처음 한국에 온 목적은 경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돈을 벌어 조그만 땅이라도 사서 본국에 돌아가 농장을 차리고 싶었다. 결국 이주노조와 만나 얘기하면서 지금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비자 지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입후보 했다. 사실 저는 한국어가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운동에 참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고용허가제로 재입국했으면 합법 상태인가?
"그렇다. 고용허가제로 3년을 일했고, 재고용되기 위해 모국에 갔다 와서 3년 더 일할 수 있다. 지금 4년 5개월 정도 됐다."
처음 한국에 들어와 어떻게 살았나...
"처음에 3D업종에서 일했다. 공장은 매우 더러웠고 위험했다. 공장에서 차별을 많이 받았다. 언어 문제나 모든 부분에 제한이 있어 사장님들은 그것 이용해 임금을 미지급하고 수당을 깎았다.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공제가 많고 부당한 대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법적인 보호가 전혀 없었다. 고용지원센터에 차별을 진정해도 신경도 안 썼다. 고용주들은 불만이나 진정을 제기하면 사업장 변경신청을 안 해주고 재계약을 안 해 준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에서는 이동의 자유가 없다. 미등록되는 경우가 많다. 4만7천명여명이 고용허가제 때문에 미등록노동자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도망가거나 미등록되는 경우가 많다. 고용허가제는 3번 밖에 옮길 수 없으므로 대부분 사장이 학대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사업장도 나쁜 회사면 나와서 미등록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법이 약간 바뀌어서 사업자 책임으로 법위반이면 횟수에 포함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위반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지원센터에 같이 가면 사장 얘기만 듣는다. 결국 사업주가 어떻게 얘기하느냐에 따라 처리해준다.”
본격적으로 고용허가제 문제를 얘기해 보자. 이주노조는 노동허가제를 요구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문제점은...
"노동허가제는 사업장을 바꾸는데 제한이 없다. 머무르는 체류기간과 시간 등이 자유롭다. 중요한 것은 가족을 데리고 올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힘들다. 오랫동안 지나면서 사회적 구조가 바뀌고 아이들도 부모 없이 자랄 수 있다. 노동허가제는 이동이 자유로워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다.”
노동허가제 사례나 기준 등이 마련된 사례가 있나...
"한국에는 숙련기술자나 전문 지식인에 적용하고 있다. EU나 독일 등에도 노동허가제가 있는 것으로 안다."
처음 어떤 직종에서 일했나...
"울산의 자동차 범퍼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런데 동료 여성 이주노동자가 유지보수 기술자에게 강간을 당할 뻔했다. 필리핀 대사관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동료 노동자가 비난만 받았다. 처음에 회사 간부에게 경찰의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 유지보수 기술자는 그가 유일했다. 회사는 신고해라 니네들도 니네 나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때 이미 한국공장의 노동조건이 학대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1년 쯤 뒤에 계약 만료로 그만 뒀다.”
그 뒤는 어떻게 됐나? 이주노조와는 어떻게 만났나...
"경기도 용인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그 회사는 램을 만드는 전자조립 회사였다. 여기서 이주노조를 만나고 가입했다. 2007년 10월 이었다. 옆 동료가 부당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이주노조를 찾아가 가입했다. 그 후 이주노조 교육에 참가하고 동료 이주노동자를 조직화하고 교육하면서 조직화했다. 그 회사는 여러 가지 노동법을 위반했다. 여성노동자를 야간노동만 시켰고 휴일은 한 달에 한번만 있었다. 퇴직금 수당도 잘 안줬다. 임금에서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공제가 있었다. 몸이 아파도 회사에 아픈 것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아야 병원에 가야했다. 아파도 일해야 하는 강제 노동이 있었다.”
이주노조를 만나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하나는 회사와 좀 더 싸우게 됐다. 예전에도 싸우긴 했지만 법적인 설명을 잘 못했다. 이제는 교육을 받아 잘 싸운다. 노조 가입 전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농장을 짓고 싶었다. 이주 활동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교육이 필요하고 다른 이주노동자 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활동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 왔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
다른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도 많은데도 노조를 선택했다. 노조를 선택한 것은 다른 종교 단체 등을 찾아 간 것과 달리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른 단체나 센터는 이주노동자가 단체에 의존하게 만든다. 문제가 생겨 센터에 가면 여러 도움을 주는데 또 그 문제가 생기면 센터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주체화가 아닌 의존이다. 또 센터들은 주로 협상적 자세를 취한다. 우리 권리를 최대로 밀고 가는 게 아닌 듯 했다. 사장에게 호소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전히 사장들이 권력을 쥐고 그 권한 내에서 줄거냐를 협상한다. 그런 식은 사장님들이 또 다른 이주노동자의 착취를 용인하는 것이다. 사업주가 그런 식으로 못하도록 압박 하거나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 똑같은 일이 반복되도록 일을 진행한다. 악순환이 된다. 이주노조의 주요 목적이 이주노동자를 주체화 하고 자기권리와 법을 알게 해 사장과 악조건에 맞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을 고무하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사기를 떨어드리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예를들면 임금이 체불되거나 하면 우리는 직접행동을 한다. 그래서 그 행동으로 많은 성과를 얻었다. 그런 행동은 피해를 받은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다른 이주노동자까지 우리 투쟁을 보게한다. 이주노동자들도 고무되지만 한국노동자들도 함께 고무된다.”
자 이제 농성 문제로 가자. G20은 이주노동자에게 어떤 문제를 야기하나. 문제점은 무엇인가...
"정부는 G20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범죄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테러를 예방한다고 얘기한다. G20 참가국 대부분이 이주노동자 착취와 억압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그런 대부분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를 만들고 그런 문제를 통해 가난한 나라 노동자에게 강요된 이주노동 하게 한다. G20의 목적은 단지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고 더 가난한 나라에게 부의 분배는 없다. 부는 부자들에게 집중되고 가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일자리는 없어지고 실업률은 더 올라간다. 그래서 G20은 가난한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 강요된 이주노동자를 만들고 있다. 그 부자나라들이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대상으로 보고 있다.”
G20에 항의하기 위해 농성이라는 방법을 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해봤다. 지금은 예전 단속추방 탄압보다 훨씬 심하다. 더 심한 탄압에 제일 강력한 저항이 필요했다. 단식도 개인적으로 시작했다. 이것도 강요된 투쟁이다. 억압 강도가 높아질수록 저항강도도 더 높아질 것이다.”
이번 농성은 지난 2003년 명동성당 농성 때 보다는 관심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든다.
2003년엔 압도적으로 미등록 노동자가 많았다.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 법체계도 달랐다. 당시는 대부분이 미등록이다. 탄압을 받고 해고를 많이 당했다. 지금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지금은 비자를 가진 사람이 많다 보니 미등록 문제에 관심이 떨어졌다. 또 외국 인력이 부족해 회사들이 바쁘고 해서 이주노동자도 등록-미등록 모두 일하고 있다. 대량해고 사태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관심과 지지가 많이 오고 있다. 주말에 많은 노동자들이 찾아온다고 연락이 온다.”
이주노동자 운동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고용허가제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고용허가제로 새로온 사람이 많아 경험이 많지 않고 새로 오다보니 잘 모른다.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현재 상황을 대충 감내하는 상황도 많다. 여러 문제가 있더라도 대충 넘어간다. 더 많은 교육화와 조직화가 필요하다.”
한국문화 주입만 있고, 다문화 정책은 없다.
얼마 전 베트남 여성 살인사건이 있었다. 정부는 다문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다문화의 주체인 이주노동자는 탄압한다. 정부 정책에 모순점이 보인다. 그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다문화가 아닌 것 같다. 다문화 가정도 아니다.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와 문화에 동화하는 정책만 편다. 한국문화만 가르치는 것은 다문화 정책이 아니다. 한국문화 주입만 있다. 남편들도 교육을 시켜야 한다. 부인의 문화를 알게 해야 한다. 그렇게 결혼이주여성의 문화가 공존하고 믹스되어야 다문화다. 그래서 외국인 배우자들은 가족 내에서 조차 소외됐다. 또 다른 문제로 외국인 신부 인신매매 문제가 있다. 한국 남자들이 큰돈을 들여 외국인 신부를 데려오는 것은 인신매매다. 많은 사례를 아는데 공장이나 농촌에서 그 여성들을 아내나 배우자 대우가 아닌 비인격 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도 많다. 필리핀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는데 계속 남편에게 맞고 바깥에 못나가고 감금당했다. 이유 없이 때리고 남편이고 한국인이고 남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다 옳다는 것이다. 그런 유사 사례가 많다.”
앞으로 농성계획...
"이주노조는 4가지 주요 목표가 있다. 단속추방 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도로의 전환, 이주노동 인정이다. 지금이 이주노조가 인정받을수 있는 적기다. 고등법원에서 이기고 대법원 항고로 3년 5개월이 넘었고 UN과 ILO등 국제노동인권 단체가 합법화 권고안을 냈다. 이주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보다 현실적인 목적이라면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가 여전히 활동하고 투쟁하는 것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내는 데 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에게도 우리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메시지를 던진다면...
"우리는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여러분과 같이 살기 위해 일하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 일 뿐이다. 우리는 똑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꿈을 위해 일하러 왔다. 같은 인간으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도 나를 보내기 위해 희생했다. 우린 단지 생존을 위해 왔다. 우리는 자존심과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한국사회를 존중하는 것처럼 한국사회도 우리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비자가 만료되면 어떻게 할 건가...
“위원장 임기가 내년 2월 까지다. 비자가 만료되면 필리핀으로 가서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을까 한다.”
한국정부가 위원장에 대한 압박은 없었나...
“노동부 조사를 받은 적이 있고 소식통들에 의하면 경찰조사 얘기도 있다. 출입국에서 주시하는 것도 알고 있다. 언젠가는 비자를 박탈하는 방법을 찾을 거라 예상 된다. 출입국을 만난 적이 있는데 출입국의 제도화된 인종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천 출입국 소장은 면담과정에서 한국의 법제도를 더 배우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는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제도화된 인종주의다. 그는 궁금한 게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수원 출입국 소장은 그 자리에 있어도 안 된다고 했다. 이주노조 위원장이 이주노동자를 대표해 말할 권리도 없나? 법과 정책을 논의하는데 인종차별적으로 얘기하면 되나. 출입국 뿐 아니라 고용지원센터에 갈 때 마다 제도적 인종차별을 겪는다. 고용지원센터에 가면 기본적으로 반말과 짜증난 목소리로 대한다. ‘왜? 뭘 원해? 뭘하고 싶어?’ 이런 식이다. 문제를 알리러 온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는 귀를 안귀울이고 사업주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처리한다. 그런게 제도화된 인종차별이다. 경찰서로 가도 잘 도와주이 않고 신고해도 잘 듣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