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 지도자들, “사실 노무현은 민중후보, 우리는 역할분담이었다”
다음날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전 의장은 노무현이 "서민후보"였다고 발언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를 보도한 “프레시안”은 처음에는 <진보 인사들도 봉하로…"노무현은 민중 후보">라는 기사에서 “민중후보”라는 표현을 썼다가 몇 시간만에 기사를 수정한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전 대표는 (노무현과) "어떻게 보면 우리는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고 발언했다.
이쯤 되면 죽은 노무현도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니 “서민후보” 노무현을 추대하고 지지하는 게 본심이었다는 말씀이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던 그 단체 대표의 말씀이다.
그 민주노동당 전 대표님 말씀도 사실은 ‘역할분담’이었다니, 점입가경이다. 민중운동의 지도자라는 분들께서 이제 와서 한미FTA 반대, 이라크전 파병반대 운동, 그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고백하시니 아랫 것들은 더 황망할 뿐이다. 그런 한미FTA 반대를 외치면서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민주노총 조합원인 허세욱 열사는 분신항거했었다.
사회운동의 이른바 “자주파”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신당 강령작성에 참여하기도 했고 국회의원 비례대표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김상봉 교수는 노무현 영정에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는 멋진 문구도 남겼다.
진보신당의 미디어스타인 진중권 교수는 “인간 노무현과 그의 정책은 별개”라면서 “장례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그 험한 입들 좀 다물어주실” 것을 부탁했다. 아, 예 그렇죠. “인간 전두환과 그의 독재는 별개”, “인간 이건희와 그의 식칼테러는 별개”, “인간 이완용과 그의 친일은 별개”, 그리고 “인간 이명박과 그의 정책은 별개”일 테니까요.
사회운동 진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의 충격으로 집단적인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하다. 최근 몇 달 간 이명박 정권에게 괴롭힘을 당한 장면과, 80년대 후반 노동인권변호사를 하던 때는 기억하지만, 기묘하게도 노무현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2009년5월23일에는 과거의 노무현이 죽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노무현이 죽었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촛불 실용주의?
민주노총은 노무현 사망 후 급히 회의를 소집하고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한다. 임성규 위원장 등 임원이 조문을 가겠다는 것과 장례기간 중 집회와 투쟁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적으로 추모분위기가 강하니 여기에 맞추자는 이야기다. 건설노조 혼자 파업해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실용적인 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노무현 추모식(촛불집회)에 참여하고 함께 거리로 나가자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대중들이 거리로 나가고, 또 이명박 반대 구호를 외치니 여기에 동참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또 헛갈리기 시작한다.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괜히 보도블럭이 아니라 아스팔트 걷는 걸 선호하는 집단도 아니거니와, 밤에 촛불을 켜는 것에 뭔가 집착이 있는 사람들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수단과 목적이 도치되기 시작한다. 가두집회가 목적인가, 요구의 관철이 목적인가? 이 때 나올 수 있는 반론은 “이명박을 반대하는 집회잖아?”라는 것이다.
사회운동들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씩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실정과 폭정 때문이고, 요약하자면 주로 그의 “막장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 정책을 위해 자행하는 “민주주의 압살” 때문일 것이다.
그럼, 노무현 추모식 촛불집회에 모인 이들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이야 많은 것이 노무현 정권을 계승했거나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운동과는 좀 다른 이유일 것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을 죽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쨌든 이 흐름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것인 이상, 정부의 “막장 신자유주의 정책”이 다소 힘을 잃을 수는 있다. 예컨대,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인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이나 여야 간 첨예한 정치적 쟁점인 “미디어법” 같은 경우에는 지연되거나 힘이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미,한-EU FTA, 비정규법, 금산분리완화, 의료민영화 등 정작 가장 중요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은 계속 추진될 것이다. 왜? 바로 노무현이 다 만들어놓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나 노동조합이 노무현 추모집회에 함께 하는 것은 마치 “실용적”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사회운동이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노무현 추모촛불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요구는 “노무현을 죽인 이명박 물러가라”다. 그곳의 분노는 노무현을 죽였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노무현은 누구인가?
이명박이 죽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노선의 인민주의(포퓰리즘) 정치인이다. 이 점을 너무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 인민주의(포퓰리즘)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각국 정치에 함께 나타나는 정치 현상이다. 인민주의(포퓰리즘)은 정책, 이념의 쟁점을 상대화하고 기존정치에 대한 거부와 공격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의 정치’로서 부패무능한 정치가와 제도를 공격하는 ‘원한의 정치’를 통해 대중을 동원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바로 불과 1년여 전에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또 불과 그 3년여 전에는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있었다. 이명박이든 노무현이든 신자유주의 정권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서로 싸우는 동안 그들 사이에 정책적이고 이념적이 차이는 사실 거의 없다는 점은 가려지고 만다.
노무현 추모열기를 정치적 지지로 끌어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의 경우를 보면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며칠 전인 5월 17일, 민주당은 “뉴민주당플랜”을 발표한다.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니 몇몇 평가를 인용해보자.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재벌과 스포츠뿐이다. 한나라당이 잘하고 있다면, 우리는 한나라당 2중대가 아니라 3중대라도 해야 한다." (김효석 뉴민주당비전위원당, 5.17~19)
"뉴민주당 선언의 기본 비전은 그야말로 한나라당의 입장과 같음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대변인 논평, 5.18)
신자유주의 사회정책, 경제정책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뉴민주당플랜”과 같이 정책적으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더욱 수렴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초유의 경제공황 상황에서 민주당은 전혀 대안세력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노무현 추모 물결 속에 단연 자신을 부각하는 인물인 유시민은 어떨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던 그는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신자유주의적인 복지·의료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가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처한다면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혁적 정치인으로서, 반한나라당 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노무현과 동일한 한계를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노무현의 거리, 노무현과 사회운동의 거리
아무리 그들의 입장이 서로 수렴하기로서니 이명박 혹은 한나라당보다야 노무현, 민주당이 나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노무현 정권 때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미FTA 반대 집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운동이 노무현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거나, 추모 촛불집회를 통해서 어떤 운동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이유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거리, 혹은 이명박과 노무현의 거리보다 노동자계급, 민중이 처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위치가 훨씬 더 멀리 있기 때문이다. 굳이 “계급적 시각”이니 하는 고풍(?)스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를 묻지 않아도 그렇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정책을 계승한 반면에, 노동자운동, 민중운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에 앉아있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 추모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단지 슬픔 때문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 분노하기 때문에 나선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 진영은 그들이 이명박 정권에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화하고 선전하면서 그 공간에서도 채워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무현 추모행사는 모든 정치적 쟁점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다. 정치적 쟁점이 “노무현”을 중심으로 재생산되는 한,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왜 싸우는가 혹은 싸웠는가를 다시 생각해야
글머리에 이야기했던 사회운동의 지도자들 중 어떤 사람은 아마도 노무현과는 전략적인 동맹, 그러나 전술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이라면 앞으로는 좀 더 솔직해지시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감히 드린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사실은 같은 편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쓸쓸한 일이 아닌가. 생전부터 그렇게 하셔야 안 헛갈린다.
혹은 노무현 추모 분위기에 함께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데 정세적, 실용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내기 쉬운 쟁점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추모” 유인물은 “전직 대통령마저 자살로 몰아가는 정권! 그대로 두면 안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가 모두 끝난 후에는 “왜 이명박을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이는 “반이명박”만으로 사람들이 오래 모일 수는 없다. 그렇게 모인다한들 ‘원한의 정치’로서 인민주의(포퓰리즘)를 사회운동이 앞서서 부추기고 자기무덤을 팔 뿐이다. 특정 정치인의 대중동원을 중심으로 하는 인민주의 정치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사회운동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미 노무현 정권 당시에 사회운동이 경험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회운동, 노동자운동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과제를 제대로 제기하고 잘 싸우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이명박에 반대해서 “왜” 싸워야하는 지를, 따라서 정치적 쟁점을 제기해야한다. 그 쟁점의 성격에 따라서 거리에 나오는 이들이 “노무현 지지자”로 불릴 사람들일 것인지, “노동자 민중”로 불릴 사람들일 것인지가 결정된다.
노무현 추모 물결에 용산철거민학살도, 박종태 열사도, 비정규직, 최저임금 투쟁도 묻혀진 5월29일, 용산4구역에서는 철거용역의 강제철거가 다시 시작됐고, 최저임금 위원회 회의에서는 경영계측의 요구안이 “최저임금 5.8% 삭감”으로 제시되었다. 노동부는 노조의 임금협상을 4~5년에 한번씩 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든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분노라는 정서 자체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왜 싸우는가에 따라서, 무엇을 쟁취할 것인지, 싸움의 결과는 무엇일지 모든 것이 변한다. 노무현 추모 동참은 당장은 편리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책임은 대중의 불만에 이유를 제시하는 데 있다. 6월 이후 거리의 투쟁을 만들어가는 것이 노무현의 유령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일 때, 이명박을 넘어서는 진짜 희망이 발견될 것이다.
- 덧붙이는 말
-
박준형 님은 공공노조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