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16년 만에 위기에 처해 있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에 임명된 후 7개월 여 만에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았듯이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1년 반 만에 한예종의 존립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겉으로 보면 황지우 총장의 퇴진으로 문제가 끝날 것처럼 보이지만 한예종의 문제는 지난 20세기에 나치가 바우하우스에 대해 해산 통고를 내린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 의한 한예종 해산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미 한예종을 없애고 예술기능인만 육성하는 콘서바토리로 만든다는 말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예종을 콘서바토리로 바꾸는 것만이 이명박 정권과 문화부의 시나리오는 아니다. 이명박 정권과 문화부는 20세기에 나치가 바우하우스에 대해 취했던 조치와 유사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치스는 당시 바우하우스를 국제주의의 아성, 유태인의 소굴로 간주했고 학생 일부의 좌파적인 활동을 문제 삼았다. 1932년 나치는 외국 국적의 교수를 바우하우스에서 해임하고 힐버자이머와 칸딘스키의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바우하우스에 대한 보조금을 전년 15만 마르크에서 8만 마르크로 삭감시켰다.
이명박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변희재가 한예종을 가리켜 부실집단으로 매도하고 좌파 교수를 제거한 후 한예종을 그저 순진무구한 콘서바토리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바우하우스의 해체 과정과 유사하다. 1932년 나치스는 바우하우스 폐쇄안을 통과시킨 후 노동자/직원은 다른 부서로 고용시키고 교수 전원을 해고시켰다. 한예종의 경우에도 황 총장 퇴진과 좌파 교수 제거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문화부와 인맥 학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존 대학이나 문화예술계의 사람들이 한예종 안으로 대거 영입될 가능성이 있다. 한예종 교수 상당수가 구조조정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1933년 4월 나치는 바우하우스를 볼셰비즘의 거점으로 지목하고 관련 증거서류를 압수한다는 명목으로 바우하우스를 수색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권은 한예종을 좌파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좌파 제거 및 한예종 해체라는 시나리오를 달성하기 위한 1단계 작업으로 한예종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벌였다. 나치가 베를린 경찰과 나치스 돌격대를 동원해 바우하우스를 봉쇄한 것처럼 이명박 정권은 교육 기관인 한예종 안에도 사태 발전 여부에 따라 경찰을 투입시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명박 정권은 뻔뻔하게도 지난 번 일제고사 파문 당시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로 그 초등학교 안에 경찰을 투입시킨 바 있는 파쇼적인 정권이기 때문이다.
1933년 7월 비밀경찰국인 게슈타포는 바우하우스의 교육과정을 새로운 국가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한예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변희재가 이론을 학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사기라고 하거나 문화부가 나서서 영상이론과 등을 없애라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예종 교수들의 교수권을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제한하겠다는 국가주의의 발로로서 나치의 바우하우스 교육 과정 재편 요구와 너무나 유사한 파쇼적인 행태인 것이다.
나치가 바우하우스가 나치의 선전정책에 교육 과정을 순응시키도록 요구한 것처럼 이명박 정권은 새 나라가 들어섰으니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따라 한예종의 교육 과정을 바꾸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바우하우스는 교육의 자율성이 국가정책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물론 한예종의 교육 과정 재편 요구에는 좌파 교수 적출이라는 음모가 깔려 있는 것이지만 국가가 나서서 교육 과정 재편 요구를 하는 것은 교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반민주주의적인 작태다.
오늘날 한국의 영화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한예종의 영상이론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 정권이 들어 섰으니 황지우 총장은 사퇴하고 좌파 교수들은 나가라는 그 치졸한 핑계 뒤로 한예종을 이명박 정권의 하수인 새로운 딴따라들로 채우고, 급기야는 붕괴시키려고 한다면 한국의 문화예술 수준은 뒷걸음질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무엇보다도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빚어내게 될 것이다.
한예종 사태는 이미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한예종의 엉터리 종합감사가 1라운드라면 황지우 총장의 비리 운운하면서 몇몇 진보적인 교수들의 뒷조사를 마치고 그 제거 작업에 들어간 것이 2라운드다.
이명박 정권은 교육 과정 운운하며 변죽만 울리지 말고 이번 감사가 눈엣가시였던 몇몇 진보적인 좌파 교수들의 적출에 있는 표적감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문화예술계의 예술인 적체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때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적 공백이 생길 소지가 큰 시기다. 정치적 혼란을 틈타 불도저를 동원할지도 모르는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과 문화부는 한예종 사태를 더 부풀리며 이참에 문화예술계의 진보의 싹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일념을 버려야 한다. 그 일념이 늘 좌충우돌로 끝났기 때문에 보내는 충고다. 한예종은 한국에서 진보적인 예술의 유일한 마지노선이다. 이명박 정권이 파쇼정권이라는 규정이 오명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나치가 1933년에 바우하우스를 폐쇄한 길을 그대로 따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교육 기관 한예종을 해체하려는 기도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