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에 대한 평가를 떠나 대한민국 최고통치자로 한 시대를 이끈 사람이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한 것에 대해 삶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되고, 아무리 정치적인 신념을 달리 했다 해도 애도를 표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불쌍함’과 이에 비례하는 추모열기만큼 이후 조문정국이 미칠 파장에 도 관심들이 쏠리고 있다. 혹자는 삼국지에 빗데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한다. ‘이명박은 이제 남은 임기 내내 죽은 노무현과 경쟁을 해야 하는 실속도 승산도 없는 싸움의 강박에 시달릴 것’이라고도 한다. 실제 ‘지역감정’이나 ‘박정희’만큼의 현실정치 그림자를 드리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현직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의 죽음이 모든 뉴스를 잡아먹었다는 데는 동의한다. 또 박종태 열사와 용산에서 학살당한 채 120일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영혼이 한 번 더 쓸쓸하게 될까 조바심친다. 행여 조문 정국으로 구천을 떠돌고 있는 열사들의 영혼이 상처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살아 비천한 자는 죽어서도 비천한가
대다수 국민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다. 진심에서 우러난 추모는 그 자체로 의미 있으니, 또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이명박의 역사를 되돌리는 횡포를 다시 한 번 문제제기 하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용산참사의 다섯 분과 박종태 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오늘의 이명박 정권의 정책 대부분은 이미 참여정부 때 추진되거나 완성된 것들이다. 법치의 이름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철거민이 죽고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2003년 열사정국의 당사자였던 민주노총이 발 빠르게 애도를 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심지어 위원장과 임원, 산별연맹, 지역본부 대표자로 조문단을 꾸려 봉하 마을을 방문하고 민주노총 차원의 집회를 연기했다.
“다 좋다!” ‘남 달랐다.’는 전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걸 막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조문’을 민주노총의 정치 행위라 강변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다만, “120일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용산 참사 현장은 다녀오셨는지?” “박종태 열사 시신이 안치된 대전 중앙병원엔 다들 조문하셨습니까?” “5월 9일, 16일 노동자대회엔 피치 못 할 다른 일정들은 없으셨는지?” 묻고 싶다.
외롭고 쓸쓸하게 동지들의 투쟁을 방치한 후, 열사가 되고 흘리는 답답함의 피눈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는가. “민주노총이 동지들과 함께 있다고”, “민주노총이 책임지고 투쟁해서 반드시 살아 함께 승리하자고”, 거기가 어디든 목숨마저 위태로운 투쟁으로 내몰린 조합원들의 투쟁 현장에 상주하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습을 우리는 바란다.
더 이상 동지의 죽음마저 외롭고 쓸쓸하게 하지 마라
억울하게 죽음에 이른 것도 한스러운데, 심지어 죽은 후 장례조차 못 치르고, 여기에 열사의 영정을 두고 결정한 투쟁조차 뒤로 미루고 봉하 마을까지 조문 간 민주노총 지도부의 무개념을 개탄한다. 전임 대통령 조문이 꼭 필요했었던 건지 민주노총 지도부는 스스로 자문하길 바란다.
민주노총은 살아 외롭고 쓸쓸했던 동지들의 죽음마저 더 이상 외롭고 쓸쓸하게 하지 마라.
그대들은 지금 박종태 열사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당사자, 상주의 책임이 있음도 잊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