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 문현 삼거리, 퇴근길의 미포조선 노동자들이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서 있다. 맑은 날의 바닷빛을 닮은 작업복 색깔, 오늘 하루 저 옷을 입고 배를 만들었으리. 푸르른 바다로 나아가는 배. 먼 바다로 나가서 만선이 되어 돌아올 배, 이국에서 일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들뜬 몸을 싣는 배를 만들었으리.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는 배를 만들었으리.
좌회전 푸른 신호가 들어오자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있는 집으로 달려 간다. 불켜진 집, 따뜻한 밥상이 있고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집. 천년이고 만년이고 무너지지 않을 집, 우리 모두가 사무치도록 지키고 싶었던 집. 그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마음과는 달리 모래위에 지어진듯, 오늘처럼 추운 날은 더더욱 위태로운 그들의 집으로.
▲ 미포조선,다시 투쟁의 깃발이 내걸렸다. |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노동자 가수 오세일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언제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노래다. 촉촉한 카스테라를 한입에 삼킨듯한 목소리. 고단한 삶을 살아온 그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전혀 고달프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에서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지난 3월 5일, 미포조선으로부터 정직 2개월이라는 중징계와 노동조합으로부터 5년간 유기정권이라는 징계를 받은 미포조선 현장투 김석진 의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이야기에서 지난 세월이 번뜩번뜩 살아난다. 물리적인 시간이 지났을 뿐,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미포조선의 투쟁, 아직도 감옥에서 병원에서 그 투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지금 문현 삼거리 김석진 의장의 목소리에서 그 세월의 기록이 살아나고 있다. 너무나 가슴 아픈, 그러나 눈에서 피가 흐를지라도 정면으로 응시할 수 밖에 없는 그 투쟁의 시간들이 살아나고 있다.
지난 여름, 대법원으로부터 미포조선으로의 복직 판결을 받고도 복직이 이뤄지지 않았던 사내 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을 촉구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한 시위를 시작한 것이 이 긴 투쟁의 시작이었다. 김석진 의장은 그 투쟁을 ‘인간이 인간의 태도를 취한, 너무도 당당하고 떳떳한 투쟁’이라고 했다. ‘고통 받는 이웃의 아픔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던 또 다른 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의 말처럼 이 싸움의 시작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해에서 시작된 일이다. 사람이라면,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함께 나누고픈 이웃의 고통. 복직이 미뤄진 채 하루하루 생계의 고통속에서 살아가던 용인기업 노동자의 아픈 삶이 김석진 의장의 목소리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들이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시작하던 그 어느 시간, 어디 쯤이었던가. 미포 조선 4층 옥상에서 목에 줄을 매달고 뛰어내린 노동자, 그의 목을 넘어 콸콸 넘차던 피, 그 피는 어디로 흘러 갔을까? 끔찍했으나 치열한 시간이었다. 단 한뼘도 삶의 정면을 비껴나지 않았던 시간.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새벽, 100미터 굴뚝 위에서 검은 독수리처럼 날개짓하던 그들을 보았다. 지난 겨울의 미포 조선 노동자들, 전국에서 달려온 수많은 연대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하며 그 겨울을 이겨나갔는지, 봄이 왔다고, 꽃이 피고 졌다고, 그대, 설마 잊었는가? 지난 겨울의 미포조선을 잊었는가?
“다행이죠.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에요. 현대가 수없이 합의를 해왔지만 박일수 열사 투쟁때도 이 합의서를 다 어겼단 말이에요. 앞으로도 이 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될까 걱정이에요.”
지난 1월 23일, 한달간의 굴뚝 투쟁 끝에 이영도,김순진 두 사람이 100미터 굴뚝 아래로 내려 오던 날이었다. 구조를 위한 119헬기가 굴뚝 주변을 맴도는 동안 아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굴뚝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배문석 민주노총 문화국장이 털어 놓은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가 낳은 소중한 합의서가 이토록 쉽게 휴지조각이 되리라곤 생각하질 못했다.
▲ 김석진 의장은 곧 서울 상경투쟁길에 오를 예정이다. |
미포투쟁'을 위해 현대미포조선 세개 현장조직으로 꾸려져 현장대책위 활동을 한 15명에 대한 징계결과가 나왔다. 5일자로 나온 징계는 '현장투' 김석진 정직2개월, 강명준 1개월 감봉1호, 남정한 견책, '현장의 소리' 강영우 정직6주, 김주 정직1개월, 김건태/김성만 1개월 감봉1호, '준비모임' 주광희 정직1개월, 김사원 정직2주, 김태암 정직1주, 김의섭 출근정지5일, 권봉락 1개월 감봉1호, 최종철/한경수가 견책을 받았다. 우려했던대로 지난 1월23일 현대미포조선 노사와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가 용인기업 6년투쟁, 이홍우 투신 이후 71일, 김순진, 이영도 두 사람의 굴뚝농성 31일을 이끈 '미포투쟁' 마무리를 위해 합의한 내용을 깬 징계다. 합의서에는 굴뚝농성을 한 김순진에 대해서는 해고 하지 않고 현장대책위 활동을 한 15명은 임금에 손실을 주지 않는 수위에서 경징계를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 출처 ‘울산노동뉴스’ 3월 5일 기사
합의서에 찍은 도장밥이라도 말랐을까? 겨우 한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 3월 5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4월 27일부터는 국회와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갈거라며 김석진 의장이 준비한 보도 자료 한부를 나에게 준다. 종이 위에 일일이 번호를 매겨가며 빼곡하게 적어 내려간 글을 읽는 일이 마음 아프다. 왜 노동자들의 소망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한스럽게 쌓여만 가는가? 세 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보도 요청 자료에는 29년을 일한 미포 조선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나이 스무살이었다. 1980년 미포조선에 입사하던 그 해, 갓 공고를 졸업한 푸르른 청년이 한 생을 일구고자 일터에 뿌리를 내렸건만 해고와 테러, 감시, 미행, 폭행이 그의 삶을 휩쓸고 있었다. 이 어려운 길속에서 당신의 삶을 이어 가는 힘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대중의 힘’, 그는 대중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아도 공감을 하고 지지를 보내는 ‘대중의 힘’을 그는 느낀다고 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세상이 변하는 이치, 그에게 노동운동이란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는 순리처럼 보였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실질적 주인 정몽준 의원이 직접 나서서 합의서,협약서 이행과 현대 중공업 경비대 심야테러 사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서울 상경투쟁에 나섭니다’
보도자료 맨 아랫단엔 김석진 의장이 던진 출사표가 담겨 있다. 벌써 몇 번째의 상경인가.잘 다녀 오시라는 말밖에는 더 이상 드릴 것이 없었지만 우리 모두들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흰눈속에서 어느날 우두둑 부러지던 굵은 나뭇 가지들, 요란한 도끼질이 아니어도 때가되면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세상은 다가올 것이다. 흰눈처럼 세상을 덮고가는 그의 발길이 그저 무탈하길. 그리고 더불어 함께 그 길을 덮고 가야 함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 퇴근길 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나무들이 새순을 피워 올리고 있다. |
부처님 오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라 가로수 사이사이에는 색색의 연등이 내걸려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세계 노동절과 석탄일이 나란히 이어진다. 연등을 거는 줄에 몸을 내준 벚꽃 나무에 새순이 돋았다. 꽃샘추위에도 제법 새잎이 많이 자라나 있다. 새순이 돋은 가로수 사이를 한무리의 퇴근길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