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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던 밤, 기륭분회 천막에서

[기고] 기륭분회 일일 동조단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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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굶는 거 '쯤이야' 식욕도 없고 밥 차리기도 귀찮은 더운 여름엔 익숙한 일이다. 단식보다 날 더 불안하게 했던 것은 24시간 동안 낯선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 다른 곳에서 잠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외박이 부모님 모르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21일 목요일, 12시 10분쯤 기륭전자 앞에 도착했을 땐 날이 참 좋았다. 햇빛이 쨍쨍해서 더울 정도였다. 집에 가만히 있을 때는 그다지 더운지 모르겠더니 천막 안에 있으니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덥고, 사람도 적고, 그래서 12시 반에 예정되어 있었던 피켓 선전전은 연기되었다. 나는 천막 안에서 준비해 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1시 경, 단식 파트너인 하나 언니가 도착, 병원에 가 계시느라 비어있는 윗 천막으로 올라갔다. 사다리가 매우 무서웠다. 천막 안은, 생각보다 선선했다. 그리고 아주 깨끗했다. 단식투쟁하는 분들이 계신 천막이어서 그런지 이곳저곳 굉장히 신경 써서 정리하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하나언니가 준비해 온 여흥거리들, 천막 안이 꽉 차도록 지지방문 온 친구들. 밖에서는 금속노조가 주최하는 큰 집회로 시끌시끌했다. 그리고 당연히, 회사 안에 주둔하고 있는 전경들도.

오후 7시,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천막 안에 있다가 릴레이 단식단의 일원으로 발언하는 하나 언니를 보러 밖에 나갔다. 가슴이 짠했다. 11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집회가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꼭 승리할 것이라고, 승리가 머지않았다고 말했을까. 그리고 기륭전자 노조원들은 되풀이되는 집회를 보며, 반복되는 발언들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왠지 문화제에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자꾸 마음이 답답해졌다.

천막 안에서 쉬는 동안 막판에 상영되었던 영화도 끝나고, 문화제가 정리되고 있었다. 밖은 벌써 깜깜해져서 천막 안에 켜둔 형광등엔 여러 이름 모를 벌레들이 날아들었다. 천막 안 공기는 자꾸 답답해져서, 하나 언니랑 바람도 쐬고 몸도 풀 겸(허리가 매우, 매우 아팠다. 천막 안에서는 몸을 쭉 펴질 못한다.) 천막 밖으로 나갔다.

컨테이너 위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계신 분들을 구경했다. 큰 무대가 쓱쓱 정리되어 트럭에 실린다. 초를 모으고 쓰레기를 주우시고. 대학생 단식단 말고 그냥 릴레이 동조 단식단에 계신 분과 인사를 나눴다. 닉네임이 소나무라고 하셨다.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였다. 촛불 쪽에서 온 분들이 여럿 보였다.

영화 보느라 집에 갈 차 시간을 놓친 여성분 한 분과, 하나 언니와 나와 모기장을 치고 침낭을 꺼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은 거의 못 잤다. 비 올 것을 대비해서 안의 비닐을 모조리 내려 무거운 짐들로 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는 소리에 잠들 수 없었다. 밖에서는 깃발이 펄럭이고 나무들이 흔들렸다. 비닐 위에 선풍기를 올려놓아 고정시켰는데, 새벽에 두 번이나 내 머리맡으로 선풍기가 쓰러졌다. 결국 아침까지 선풍기를 눕혀놓아야 했다.

선잠에 빠졌다가 깨나길 여러 차례, 겨우 잠들었다. 그러고는 아침 선전전에 늦었다. 비가 정말 추적추적 기분 나쁘게 내리고 있었다. 우비를 입고 골목에 서서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했다. 사람들은 우산을 푹 눌러 쓰고 바쁘게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저 사람들 중엔 혹시 투쟁을 그만두고 회사로 복귀한 노조원들도 계실까? 궁금했다. 아니 그런 케이스는 아예 없나? 모르겠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언니는 공대위 회의에 참석하느라 내려가고, 나는 모자란 잠을 보충하느라 침낭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는데, 노조원이 올라오셨다. 천막을 정리해주시고 앉으셨다. 그리고 다른 노조원 분들도 조금씩 천막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셨다.

비가 오는데다가 회의 때문에 있을 곳이 없으신 것 같았다. 골목에서 고개를 들어 천막을 보면 항상 동지들 모습이 보였는데, 안 보이니까 기분이 이상하고 허하다고 하셨다. 어제 바람소리 얘기를 해드리고 비 많이 올 땐 어쩌셨냐고 했더니, 노조원들이 천막에 거의 매달려 있어도 날아가려고 한다고 하셨다. 컨테이너 전에 천막에 계셨는데 눈 때문에 무너지고 바람에 날아가고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난 하루 나와 있는 게 이렇게 힘든데, 그래서 징징대고 싶은데 그 오랜 시간을, 심지어 어떤 분은 단식까지 하시며 길에서 버티셨다는 게.... 듣는 내가 서러웠다.

공대위 회의는 분회장님 일로 자꾸 늦어졌고 정협 일정으로 난 먼저 천막을 떠났다. 다음 단식하시는 분들께 바톤 터치한 채로. 결국 부모님 모르게 이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투쟁 1일 체험'을 한 듯한 기분이다. 천 명이 모일 수 없을지라도, 천 일을 지속할 수 없을지라도, 한 명 한 명 기륭에서 보고 느끼는 게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륭전자 노조분들 모두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 활짝 웃는 얼굴을 뵙고 싶다. 그러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덧붙이는 말

위지원 님은 기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대학생 단식단 일원으로 8월 21일 하루 단식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