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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성골, 진골, 천골

[기고] KTX 승무원 천막 철거논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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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철도노조가 서울역에 있는 KTX 승무원 천막을 철거하라고 요청했다. 7월 5일 예정한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공동투쟁본부’ 발대식이 있으니 잠깐 철거하자는 것이다. 이유인즉 집회장소가 좁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KTX·새마을호 승무원 천막이 서울 시청앞 보수단체 집회 장소처럼 드넓은 장소를 독차지한 것도 아니다. 천막 두 동을 쳤으니 기껏해야 이십여 평, 이 정도 면적을 가지고 집회에 방해가 되니 철거를 하라고?

서울역 치안을 관리하는 남대문 경찰서도,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의 실질적 사용자인 철도공사도 이런 식의 요구를 한 일이 없다. 그런데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소속한 노조인 철도노조가 승무원들 투쟁의 상징인 천막을 철거하라니, 이런 일이 노동운동에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승무원들이라고 해서 이 한여름 폭염속에서 찜통 천막안 생활을 좋아할 사람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과시간도 아닌 밤 11시에 천막을 철거하라는 요구를 들으며 할 말이 없다. 노동운동이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노동운동속에서 온갖 풍상을 겪었음에도 한숨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KTX 승무원들은 외주위탁 노동자들이다. 본래 철도공사에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마땅하였다.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2003년 4월 20일, 철도노조와 당시 철도청이 정규직 3,500명을 채용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시 부족인력과 KTX 개통에 필요한 인력, 수원-천안간 전철 개통에 필요한 인력에 대하여 합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철도청은 합의사항을 위반하여 1,000여 명만 채용하였고 이에 따라 KTX 승무원들은 모두 외주위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채용과정에서 철도공사와 채용 자회사인 한국 철도유통이 “공무원 신분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호언했던 사실은 언론에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 훈련과정이나 실제 승무업무에서 철도공사가 사실상 사용자 노릇을 한 것은 최근 법원 판결에서 잇따라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은 3년에서 2년 가까이 직장에서 정리해고및 계약해지를 당해 길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이 그동안 겪은 고초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 KTX 승무원들은 누구나 최소 다섯 차례의 공권력 투입과 연행을 겪어야 했다.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정리해고및 계약해지,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등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에서 당하는 온갖 탄압을 잇따라 겪어야 했다. 이들의 생활이란 어떠했는가? 이십대 여성노동자들이 풍찬노숙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3년 가까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노동조합 회의실이나 사무실에서 사실상 노숙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시멘트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거나 노천 천막에서 소음과 먼지, 그리고 승무원 투쟁을 납득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매일처럼 시달렸다. 그러다가 다치고 병들어서 떠난 승무원들이 수십명에 이른다. 육체적 고통보다 “정당한 일에 앞장선 사람만 다친다.”는 피해의식과 경찰, 검찰, 법원에 끌려 다니며 재판을 받느라 그 누구나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다.

이런 승무원들을 보듬어 줄 사람들은 동료 노동자들밖에 없다. 민주노조를 자처하는 철도노동조합이 이들을 감싸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합이 산다. 노동운동의 조직논리가 “연대와 단결”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이들을 보호하고 감싸야 할 노동조합이 어렵게 친 천막을 철거하라고 강요해야 하는가? 그것도 일과시간이 아닌 밤 11시가 넘어서 승무원들이 피로에 지친 몸을 누일 때 전화를 걸어서 철거하라고, “잠깐 철거하면 되는데 그것을 못하겠다고 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위협해야 하는가? 승무원들이 마지막 투쟁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정세에 맞지 않는다”며 납득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정작 한 명도 천막설치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천막농성장에 격려방문을 한 사실도 없다. 한국사회 민주노조 운동이 이토록 타락할 수 있는지, 민주노조 운동에 회의를 가진다. 한숨과 울분으로 잠을 잘 수 없다.

나는 이 모든 현실이 노동운동을 하는 간부와 활동가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실 철도 노동자들은 KTX·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하여 왔다. 노동조합 설문조사에서 과반수가 넘는 조합원들이 “KTX·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은 정당하며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KTX·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에서 철도 노동자들은 8,000여 명이 자동이체나 모금을 통해 생계비를 지원해 왔다. 이런 조합원들 성원이 있는데 왜 노동조합이 KTX·새마을호 승무원들 천막을 철거하라고 요구해야 하는가? 이는 촛불집회에서 서울시장이 “서울 광장에 잔디를 새로 심어 뿌리가 날 때까지 일체의 집회를 불허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의 문제는 철도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조를 자처하는 많은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기를 사실상 기피한다. 말로는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지만 대부분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현실이라고 판단한다. 민주노조 운동안에서 철도노조는 그래도 조금 낫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철도노조에는 세 가지 노동자들 집단이 있는 것 같다. 성골인 정규직 노동자들, 진골인 직접고용 비정규직, 천골인 외주위탁 노동자들.....

나는 철도노조가 나를 제명하기를 원한다. “철도노조는 그런 노조가 아니라고, “너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일삼았다. 철도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해 앞장섰다. 철도노조는 KTX·새마을호 승무원들 천막을 철거하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 이렇게 주장하며 나를 제명한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반성하겠다. 노동조합과 철도노동자들을 모욕한 죄를 새기며 평생 반성하며 살 것이다. 그러니 철도노조여, 나를 제명하라.
덧붙이는 말

이철의 님은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비정규조직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