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산화탄소를 에너지로 만드는 기계를 만들면 좋겠다."
아빠가 핵이며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응원을 많이 해주던 둘째 아이가 한 이야기다. 지구온난화에 이산화탄소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까 나름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나 보다.
"글쎄~ 그것을 왜 기계를 만들어 해결해야 하지? 이미 우리는 그런 일을 한 것을 많이 알고 있는 걸. 저기 화분에 있는 꽃도 그렇고 풀이며 나무가 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인걸. 새로 기계를 만드는 것보다 그런 풀과 나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안 그러니?"
"아~ 맞아요.^^ 열대우림을 지키는 것이 그거네요."
지금 세상에 머리 좋은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모양새가 꼭, 이 어린아이의 생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기술이 발달하면 지금 지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무모한 기술 낙관주의'가 그것이라 생각한다. 있는 것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정말 소중한 것을 지켜내지 못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의 기술을 핑계로 현재를 망가뜨리며 산다.
식량 자급률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 이들은 물고기를 키우는 빌딩을 지으려고 하고, 공기 중의 질소를 잡아 단백질을 만든다는 공상을 한다. 그런 공상 속에 살다 보니 농지를 없애고 농업을 죽이는 FTA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사람이 먹을 옥수수로 바이오에너지를 만든다는 기술을 개발했다지만 바이오디젤을 얻는다고 숲을 없애고 옥수수를 심고 그 옥수수는 사람 대신 자동차가 먹는다. 스포츠카의 연료통을 한 번 채울 바이오연료를 얻기 위해 성인이 1년을 먹을 식량을 쓰면서 '바이오 에너지 기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연료를 얻기 위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오늘도 매일 수만 명이 굶어 죽고 있다. 아니, 이런 내용은 아이보다도 훨씬 못하다.
월성 1호기의 수명이 다하고, 고리 1호기는 억지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한국의 핵폐기물 중 사용 후 연료봉을 비롯한 고준위 폐기물을 저장하고 있는 임시 공간은 2016년이면 포화상태가 된다. 그리고 아직 사용 후 연료봉과 같은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할 기술도 없고 처분할 장소도 없다. 그런데도 그 '미래의 기술'을 탓하며, 새로 핵발전소를 꾸준히 짓고 있으며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억지로 연장해서 가동하고 있다. 당장 국민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데 미래의 기술을 이유로 안전을 주장하고 있다.
경상북도에 만든다는 원전클러스터, 낙관치고는 너무 위험하고 무모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어린아이는 자기 생각의 잘못을 아주 빠르게 인정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데 반해 세상에 똑똑하다는 어른들은 온갖 핑계와 거짓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김질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 가진 자들, 있는 자들, 똑똑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논리다.
"어머니 그것을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요. 제가 수놓는 기계를 사드릴게요." "왜? 왜 기계를 사준다는 거냐?" "시간을 절약해 줄 테니까요!" "시간을 절약해? 시간이 부족하니? 신이 시간을 만들 때 넉넉히 만들었단다. 어리석은 아이야. 무한한 것을 절약하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너는 한도가 있는 것을 소비하려 하고 있어. 전기니, 금속이니, 기계를 만드는 데 쓰는 모든 재료들, 그런 것은 한도가 있는 자원이다. 너는 무한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한도가 있는 자원을 쓰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만둬, 나는 바늘을 쓰는 게 좋아." - 사티쉬 쿠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