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한국노총-노동부-경총이 전격 합의한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합의안 곳곳에서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의 권리를 무력화 하는 독소조항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합의안은 이미 현행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유급근로면제(타임오프Time-off)를 경영계나 정부가 대폭 양보한 안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현행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근참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노조법 등의 노동법은 ‘노동자 대표’가 고충처리, 산업안전, 보건활동, 노사교섭, 노사협의 등 관련활동을 하면 그 시간을 유급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노총이 협상을 통해 경영계에서 타임오프제도를 양보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타임오프제 명시, 사실상 노조활동의 범위 규정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근참법에 의하면 4자 야합에서 언급한 활동을 하는 노조간부에 대해서는 이미 타임오프 방식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노조전임자 임금이 금지 된다 해도 근참법이나 산안법이 있어 타임오프제는 굳이 합의하지 않아도 보장 된다”고 한국노총 합의안을 비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합의안이 타임오프제를 통해 노조활동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있다. 합의안은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금지 제도와 관련해 “노사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 관련 활동에 대해 사업장 규모별로 적정한 수준의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해놨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상 노조활동의 범위를 법으로 정한다는 것인데 이는 정부나 사용자가 악용하면 각종 노조활동은 사실상 무력화 된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이나 단체행동권에 중대한 침해를 가져 올수도 있다.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한다던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오히려 노조의 자주성을 더 옥죄게 됐다.
임성규 위원장은 “합의안이 실제화 되면 노사교섭이 결렬되고 쟁의행위에 돌입할 때 노조위원장의 전임을 무임으로 처리해 업무에 복귀하라고 회사가 명령을 내리는 상황이 된다. 만일 노조위원장이 복귀를 하지 않으면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사실상 단체협상권도 없는 노조가 된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결국 노조는 노사협의회 수준의 그런 노조로 전락한다”면서 “앞으로 임금도 교섭대상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식의 노조활동을 하려고 교섭을 한 한국노총은 노조이길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도 “타임오프제가 되면 합의안에 열거된 부분만 유급 면제 시간을 주게 돼 대의원 대회나 교육, 총회 등은 금지대상이 된다”면서 “노조라는 것은 교섭을 통해 합의를 해야 하는 기구인데 전임자 없는 노조는 거의 근무시간이후 활동하라는 것이다. 노조활동이 불가능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어 “교섭이 결렬 되면 파업준비도 사전에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인정해 줄 리가 없다. 그러면 휴가를 내던지 일을 하지 않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휴가신청을 받아줄 리도 없고 회사가 근무지 이탈사례 등을 이유로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별협약도 무력화 시킬 예정
복수노조도 애초에는 복수노조 2년 6개월 시행유예와 창구단일화가 노동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합의안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이뤄지면서 산별교섭까지 무력화 시켜 산별노조 체계에서 다시 기업별 노조 체계로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산별교섭 조차 무력화 된다면 사실상 소수 노조나 비정규직 노조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없어진다. 이는 “복수노조의 교서창구는 단일화 하고, 교섭단위는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설정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는 “그동안 경영계는 1사 1교섭, 1조직 1협약을 주장해 왔는데 이게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비판하고 “비정규직 노조가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산별교섭 형태라서 가능했으나 그게 의미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복수노조 중 하나가 산별노조에 가입하면 그 동안은 산별을 통해 협약체결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산별에 가입한 노조가 규모가 작으면 협상을 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산별교섭 자체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혜진 대표는 “만약 상급단체가 한국노총인 정규직 사업장의 계약직 노조가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하거나, 상급단체를 공공운수연맹으로 하는 노조의 비정규직이 공공노조를 가입할 경우 창구단일화를 하면 규모차이로 인해 기간제 노동자는 사실상 통합된다”면서 “한국노총이 경영계의 요구를 통째로 수용했다”고 비난했다.
권영국 변호사도 “결과적으로 회사와 관련한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약 체결 시 산별이든 기업이든 사업장 단위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도록 안을 내놓았다”며 “각 사업장에 관련된 단협, 임협을 체결하려면 산별교섭은 무의미하다”고 해석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정부가 악의적으로 기업별 노조 형태의 노동조합 체계 유지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창구 단일화를 하지 않고 교섭을 요구하면 다 무효가 되므로 아무리 산별협약을 해도 그 사업장에 무효가 된다”고 말했다.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산별 있으나 마나가 되기 때문에 단위사업장 교섭창구 단일화는 다시 기업별노조로 다시 회귀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노동부는 7일 합의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무관리 성격의 일부 업무에만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도입하는 것 외에도 전임자 수와 전임활동 시간도 제한한다. 심지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도 하나의 사업장에 관리직과 생산직, 산별과 기업별 노조가 있는 경우에도 교섭 창구는 단일화해야 한다는 설명했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은 “관리직은 전통적으로 사용자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세부내용이 무엇을 노린 것인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게다가 한 사업장에서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는 별도의 노조 체계이므로 구분해야 한다는 법원의 기존 판례가 있음에도 야합안은 별도의 노조를 모두 창구단일화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고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오늘 발표된 설명 자료는 이후 등장할 정부 시행령이 철저히 사용자의 입장에 선 노조말살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