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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생명줄, 2년 더 쓰고 잘라줄게?”

[인터뷰] 신용보증기금지부 천막농성장 짬장 이준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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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역 앞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해고자이다. 한 때는 열심히만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그래서 한 때는 누구보다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사를 향해 고용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신용보증기금지부 해고자복직투쟁단(해복투) 단원들이다.

  공덕역 앞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안보영 기자

“비정규법이 희망인 줄 알았어요”

공덕역 신용보증기금 정문 앞 천막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그 곳에서 밥도 해 먹고, 잠도 자고, 투쟁도 한다. 자신을 해복투의 ‘짬장’이라고 소개한 이준형 씨는 “말을 잘 못해요”라며 인터뷰 요청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군대 있을 때 한 달 동안 취사병을 했다고 단장님이 짬장 하라고 했어요. 단장님이 시키면 뭐든지 해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우리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다들 마음이 잘 맞아서요. 가슴이 아프지만요. 서로서로 잘 위해주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밥도 하고 라면도 끓이면서 짬장을 자진해서 맡고 있다고 했다. 천막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밥을 걱정하고, 밥을 하고 함께 먹을 자리를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땐 비정규법도 있고 해서 기간이 늘어날 것이고, 다른데 계신 분들이 뭐 다 잘될 거라고 했어요.”

그는 신용보증기금 대전지점에서 일했었다. 같은 대학을 나온 동기들이며, 선배들이 정규직으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는 11개월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들어갔지만 계속 열심히 일하면 계약연장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적용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22개월 만에 해고되었다. 비정규법 때문이었다.

  자신을 해복투의 ‘짬장’이라고 소개한 이준형 씨/안보영 기자

“비정규법은 한 때 저에게 희망이었어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내 목줄을 잡고 협박하는 거냐”

비정규법 때문에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다. 하지만 수백, 수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법 때문에, 비정규직을 2년 동안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준 비정규법 때문에 비정규직은 딱 2년 만에 해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한다. 그것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할 것과 똑같다.

“4년으로 연장한다구요? 그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서서 반드시 막아야 해요. 그건 부려 먹을 만큼 숙련시켜서 부려먹다가 입맛이 안 맞으면 자른다는 말이잖아요. 2년 더 일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숙련되면 사용자들이 정규직으로 더 많이 전환할 것이라고 했다죠? 사용자가 미쳤습니까. 4년 된 비정규직 노동자 밑에 그만큼 숙련된 3년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데, 그냥 순차적으로 비정규직들을 계속 숙련시키면서 4년이 되면 해고하면 그만 인거죠.”

그가 인터뷰 내내 눈가에 가득 머금고 있던 미소는 이 말을 하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도 2년 일하는 것보다 4년을 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질문은 김현우 선전부장에게 던졌다.

“어느 책에서 이런 얘기를 본적이 있었는데요. 먼 산에 연기가 나는 걸 보고 불이 난 줄은 알았지만 그냥 있다가 결국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에서야 그게 정말 불이 난 것이구나 하고 호들갑을 떠는 얘기였어요. 내 발에 불이 떨어지는 기간이 2년 더 연장된다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계약기간 얘기할 때 마다 내 목에 줄을 걸고 협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2년 후에 당겨줄게, 아니 또 2년 후에 당겨줄게. 목에 줄은 그대로 묶여 있는데 말이죠.”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릴 리가 없다. 한겨레가 입수했다는 노동부의 ‘비정규직 고용개선 종합대책’에서는 “기간을 단축하거나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식은 고용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라며 “기간 연장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못 박았다고 했다.

기간을 단축하자는 것, 사용사유를 제한하자는 것. 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 한다. 짧은 기간 동안 꼭 필요한 곳에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게 하자는 것. 하지만 노동부는 “대안 일 수 없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좀 더 오래 동안 더 많은 곳에 사용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계약기간 얘기할 때 마다 내 목에 줄을 걸고 협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2년 후에 당겨줄게, 아니 또 2년 후에 당겨줄게. 목에 줄은 그대로 묶여 있는데 말이죠"/안보영 기자

“우리는 단지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것 뿐이다”

“우리가 정규직만큼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복지해택을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안정적으로 일만 하게 해달라는 거예요. 내가 만일 능력이 없다고 하면 나갈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자리가 정말 필요 없어져서 사라진다고 나가라 하면 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내가 나간 자리, 또 다른 사람들이 메우고 있잖아요. 필요 없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기간이 다 되었으니까, 그동안 열심히 일한 것도 소용없고 그냥 나가라는 거잖아요. 그걸 어떻게 납득 하겠어요”

그는 아이가 둘이라고 한다. 한 명은 16개월, 한 명은 7개월. 집에 자주 들어가지 못해 애들이 아빠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는 이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보고, 죽도록 해봤는데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여튼 내가 꼭 이겨야 하는 이유는 애들 때문이에요. 다른 데 들어가도 1~2년 있다가 잘릴 텐데 어떻게 애들을 키워요. 애들 때문이라도 끝까지 투쟁하고 복직해서 열심히 일할 겁니다.”

12월 3일, 그들은 사측과 교섭을 앞두고 있다. 일단 그동안 싸움을 통해서 3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으로 전환이 되었다. 이제 2년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남았다. 사측은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교섭에 나오겠다고 했다. 이 날 교섭이 잘 되면 그들은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잘 안되면 이 추운 겨울을 비닐 천막 안에서 나야 할 수도 있다.

공덕역 신용보증기금 정문 앞 천막. 그 천막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