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비에는 조합원들이 모여 앉아 커다란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
추리소설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나는 추리소설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 술꾼이 술을 찾고 땅꾼이 뱀을 찾듯 지금껏 추리소설을 게걸스럽게 읽어 왔다. 많은 사람들은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를 떠올리면서 추리소설이란 과연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탐정이 범인을 찾고 트릭을 파헤치는 것만이 추리소설의 전부가 아니다. ‘누가 죽였는가?’라는 물음말고도, ‘왜 죽였는가?’ ‘어떻게 죽였는가?’ ‘언제 죽였는가?’ ‘어디서 죽였는가?’ 심지어는 ‘누가 탐정인가?’와 같은 다양한 물음을 던지는 추리소설들이 세상엔 많고도 많다. 오래 전에 인기를 끌었던 외화 시리즈 ‘형사 콜롬보’같은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고 시작한다. 범인이 꼼짝 못하고 자백하도록 증거를 잡아내는 것이 콜롬보 경감의 몫이다. 남미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야말로 진정 기발한 추리소설이라 말한 적도 있다. 조사자가 살인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9월의 마지막 날에 강남 성모병원에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물음과 맞닥뜨려야 했다.
‘과연 용역 깡패들은 언제 쳐들어오는가?’
어젯밤만큼 나 자신이 명탐정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성모병원에 도착하니 저녁 여섯 시 반이었다. 천막 농성장 주변에서는 촛불 문화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함께하러 온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병원 로비로 건너갔다.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로비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들어 알고 있었다.
로비에는 조합원들이 모여 앉아 커다란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주변에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기자들이 서넛 보였다. 노트북 컴퓨터를 갖다 놓고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상황을 들어 보았다.
“오늘 오전 열 시 사십 분쯤에 피켓을 들고 병원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열한 시 반쯤에 로비에 와서 자리를 잡았구요. 오전 시간이면 병원 로비가 굉장히 붐비거든요. 로비에서 구호 외치고 피켓 흔들고... 지나다니는 의사들, 간호사들, 환자들, 보호자들에게 사정사정하면서 거의 울다시피 했죠. (웃음)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한 시간 넘도록 저희를 그냥 내버려두더라구요. 그러다가 결국 인사팀 기획부장이 나와서 철수하라고 엄포를 놓았죠. 직원들은 사진기 들고 나와서 저희들 사진 찍으려 하고. 그래서 사진 못 찍도록 몸싸움을 하기도 했어요. 바깥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던 기자들이 그 와중에 우르르 들어와서 그걸 다 찍어갔죠. 경찰도 왔었어요. 정보 뭐시긴가 하는 경찰이 와서 ‘10분 내로 자진 해산해라. 안 그러면 신부님이 몽땅 끌어내라고 했다’ 이렇게 겁을 줬어요. 그러고는 그냥 갔는데, 바깥에서는 세 시부터 집회하고, 저희는 안에서 계속 점거하고 있었죠. 경찰이 언제고 올 줄 알았는데 저희가 자체적으로 알아보니 경찰 쪽에 접수된 바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 밤 열두 시가 지나면 저희는 더 이상 여기 직원이 아니게 돼요. (9월 30일이 계약 만료일) 그때 맞춰 용역 깡패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죠.”
조합원들이 뭔가 열심히 쓰고 있는 커다란 종이는 병원 안 곳곳에 붙일 대자보들이었다. 로비에 함께 있던 진보신당 사람들도 매직을 들고 종이에 한가득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대자보를 썼다.
뒤쪽에서 감시 카메라처럼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보안 직원이 거슬렸지만 나는 사진기를 꺼내 점거 농성장 주변 곳곳을 찍었다. 포도당인지 뭔지 몸에 주렁주렁 달고 살금살금 걸어 다니던 환자들이 피켓들 앞에 서서 골똘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보호자들도 잔뜩 써 붙여진 대자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쯤 걸음을 멈추어 읽어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면서 지나갔다.
바로 이 곳에 용역 깡패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말없이 마치 중장비처럼 모든 것들을 깡그리 휩쓸고 짓뭉개 버리는 덩치들이 기어이 오기는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세 번이나 깡패들을 보낸 신부님과 수녀님들이었다. 농성장에 있는 사람들 누구나 세 번 일어난 일은 네 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곱 시가 다 되어 조합원들 중 두셋이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로비를 나와 천막 농성장 쪽으로 갔다. 나와 보니 천막 농성장을 마주하고 있는 병원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우우 몰려서서 마구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취재진을 못 들어가게 하는 건가 해서 그쪽으로 가 보니 보안 직원 몇 명이 입구 문을 붙들고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문 잠그고 뭐 하려고 그래?”
“여러분들께서 자꾸 언성 높이시면 환자 분들께 피해가 큽니다.”
“아니, 문 잠그는 건 피해가 아닌가? 왜 병원 이용하는 사람들한테까지 피해 주는데?”
“병원 직원이면 환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보안 직원들이 입구를 잠그려고 했던 모양이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로비에서 조합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천막 쪽과 통하는 가장 가까운 입구를 꽁꽁 틀어막겠다는 건 무슨 속셈일까? 지금까지 용역 깡패들이 느닷없이 쳐들어 올 때마다 오늘과 똑같은 식으로 병원 측에서 굳게 잠그곤 했다는 바로 그 문이었다. 어쩌면 이는 노골적인 경고인지도 몰랐다.
‘오늘밤 안으로 너희들을 박살내 버릴 이들이 찾아갈 것이다. 너희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 둘 입구 쪽으로 몰려 왔다.
“뭐 하는 거야? 잠그지 마!”
“네티즌 여러분! 아예 우리가 병원 안으로 들어갑시다!”
“문화제를 저 안에서 합시다!”
“차라리 드러누워!”
보안 직원들은 사람들이 자꾸 밀려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같은 말만 중얼중얼 주워섬겼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 반말하세요?”
결국 직원들은 하는 수 없다고 판단한 듯 입구를 활짝 열어놓은 채 물러가 버렸고 사람들은 투덜거리며 다시 천막 농성장 앞으로 갔다. 일곱 시 이십 분쯤에 촛불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백여 명은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앉은자리 앞에 놓인 촛불들이 하나하나 주홍빛으로 일렁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발언이 어디 있겠느냐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기억나는 발언은 하나뿐이다.
“저는 이곳 성모병원에서 일해 온 노동자입니다. 오늘 저희가 계약이 만료가 됩니다. 마지막 날이라 모처럼 근무복을 꺼내 차려입고 그동안 같이 일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정말 눈물로 호소를 했습니다. 그분들 모두 저희들에게 마음속으로 뜨거운 연대를 보내고 있는 분들입니다. 미안한 나머지 저희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저희가 이 옷을 입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이 유니폼이 꼭 수의처럼 느껴집니다. 너무 힘들어서 몸과 마음이 하나같이 피폐해졌습니다. 자식이 아파서 울고 있으면 어떡해야 할까요? 자식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다고 날마다 신음을 하며 몸부림치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지요? 네, 눈물로 닦아줘야 합니다. 저희 간호부 파견직 65명은 간호부 소속입니다. 간호부 과장님 부장님이 모두 수녀님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몇날 며칠을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수녀님들은 저희에게 어디가 그렇게 아프냐고 한 번도 물어봐 주시지를 않았습니다! (흐느낌) 가톨릭 병원이 다른 병원들 보다 따뜻한 곳이라 믿고 저희는 이곳에 지원해 왔습니다. 저희는 병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그런 저희에게 단칼에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을 줄 수 없으니 이곳에서 나가라.’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꼬옥 부여잡고 그 조합원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저희들에게 그러실 수가 있나요!” 울먹임 섞인 부르짖음이 위로 쭉쭉 뻗어 나가기만 하는 삭막한 병원 건물들을 휩싸고 돌 때 내 가슴은 누군가가 사금파리를 대고 아래로 쭉 내리 그은 것처럼 갈라지듯 아팠다.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수녀님들 서넛이 문화제 무대 뒤쪽으로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 일곱 시 이십 분쯤에 촛불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앉은자리 앞에 놓인 촛불들이 하나하나 주홍빛으로 일렁이었다. |
▲ "저희가 몇날 며칠을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수녀님들은 저희에게 어디가 그렇게 아프냐고 한 번도 물어봐 주시지를 않았습니다" |
이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톨릭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짓밟는 것도 아니었고 신부님 수녀님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환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로밖에 생각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교를 들먹이며 자비심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을 바라는 게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었다. 병원은 상점이었고 환자는 고객이며 노동자들은 임시로 고용한 점원에 지나지 않았다. 종교란 그들―병원 경영자들이 잠시 마음을 쟁여다 두고 한가로이 쉴 수 있는 한낱 도피처일 뿐, 그것으로 그들이 인간의 삶을 고민하고 자신의 영혼을 곱씹는 일이란 없었다. 아, 물론 이는 성모병원 종교인들의 무관심과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라는 결과만을 놓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갈 곳을 잃어 삶이 순식간에 일그러진 노동자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내 가슴속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나는 숨이 막혔다.
노래 공연과 몸짓 공연이 이어지고 문화제가 끝났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어디선가 김밥이 날라져 왔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나는 허겁지겁 김밥을 받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지난밤을 이랜드 홈에버 상암점 천막 농성장에서 지샌 탓인지 몸이 자꾸만 아래로 허물어지려고 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김밥은 어느새 다 떨어져 버렸다. 눈이 벌써부터 감겼다. 이틀째 그대로 묵은 양말은 운동화 속에서 촉촉해졌다. 씻지도 못해 온몸이 꿉꿉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나는 보고 싶었다.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장마철 먹구름 떼처럼 몰려올 용역 깡패들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음은 불안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안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놈들은 언제쯤 올 것인가? 미스터리가 풀려야 나도 속 편하게 집에 가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천막 농성장 곁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시 병원 입구 쪽이 시끄러워졌다. 모르는 사이에 직원들이 아까 그 입구를 잠가 버린 것이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직원들과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거칠게 싸웠다. 저런 외주 업체 직원들과 입씨름을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옷을 간드러지게 빼 입고 직원입네 행세하는 자들이니 나도 모르게 직원들을 향한 곱지 않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나아쁜 놈들! 권력의 하수인들은 다 너희들처럼 비겁한 것이냐! 몰래 문이나 잠그고!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너희들은 부끄럽지도 않으냐! 정말로 양심에 한 점 얼룩도 없는 것이냐!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문을 잠근 직원들은 자기 할 일 끝냈다는 듯 유유히 병원 안쪽으로 가 버렸다. “병원 입구 전부 다 봉쇄한 거 아니에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는 입구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기 위해 병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단 한 곳만 빼놓고 모든 입구가 틀어 막혔다.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10월 1일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 노동자 신분이 되기란 그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어차피 직원도 아니니 상관없다는 핑계를 대며 병원 측은 어쩌면 경찰까지 동원해 노동자들을 끌어낼지도 몰랐다. 경찰이 노동자들 편을 들어준 적이 과연 경찰 제도가 생기고 나서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구실로 어느새 경찰들은 자기네들이 저지르는 숱한 폭력과 불법마저 준법과 합법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쏙 밀어 넣는 야바위꾼들이 되어 있었다.
열어 놓은 입구 쪽에는 보안 직원이 우두커니 서서 병원 안팎을 오가는 사람들을 건성건성 훑어보고 있었다. 멀쩡한 문들 놔두고 멀리 돌아서 드나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입을 비죽거리며 불평을 했다. 자기 할 일만 하면 돈을 받는 보안 직원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리저리 잰걸음으로 다니며 힐끔힐끔 우리들 쪽을 쳐다보았다.
다시 병원 로비로 들어갔다. 조합원들과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 쓰던 대자보가 벽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로비는 한산했다. 기자 완장을 찬 사람들 몇몇이 돌아다니며 사진기를 찰칵거렸다.
저쪽에서 시비가 붙었는지 큰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직원들이 몰래 잠그고 도망친 입구 쪽이었다. 복도에는 어느새 몰려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엇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잠긴 문 때문에 언쟁을 하다가 화제가 다른 곳으로 엉뚱하게 덧가지를 친 것 같았다. 어깨를 서로 밀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다가 직원이 대강 꼬리를 내리고 먼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하지만 더 큰 싸움은 잠시 후에 벌어졌다. 복도를 지나 다시 로비 쪽으로 가려는데 병원 총무팀 사무실 앞에서 방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들이 들렸다.
“왜 문을 잠궈? 안 열어?”
“어디서 오셨어요? 병원 직원이세요? 왜 큰소리를 치십니까?”
“환자들이 겪을 불편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뭐가 부끄러워서 문을 잠그는 거죠?”
“이 개새끼들아! 이 따위로 병원 운영할 거야? 사람이 사람으로 뵈지 않아?”
“반말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거기 아저씨! 사진 찍지 마세요!”
아주 짧은 반소매 웃옷에 양복바지를 입은 덩치 큰 사람이 눈에 확 들어왔다. 큰 키에 팔뚝이 나무둥치만큼이나 굵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목에는 금줄을 두르고 있었다. 얼굴에 쓰여 있었다. ‘나 깡패요.’ 병원 측에서 어디선가 데리고 온 협박용 근육쟁이일 게 뻔했다.
집회 때마다 늘 만나는 공공노조 사람이 배를 내밀며 총무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 근육쟁이가 덩치로 막아섰다. 험악하게 생긴 얼굴과 맞지 않게 목소리가 가늘었고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연방 씨물거리며 웃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희들 지금 근무 서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위에서 시킨다고 시키는 대로 다 하냐? 너희들한테는 양심도 없어?”
“이렇게 환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병원 금방 망하겠네요!”
“에라이 개새끼들아! 이게 병원이야?”
“도대체 문을 잠근 의도가 뭐야? 이따가 경찰이랑 들어와서 다 들어내겠다는 거 아냐?”
“반말하지 마세요! 여러분 자꾸 이러시면 환자 분들에게 피해가 갑니다!”
“그럼 문도 열어놔야 할 거 아니에요! 병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렇게 숨기고 싶습니까?”
서로 겉돌기만 하는 말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쯧쯧쯧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깡패 근육쟁이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기 일자리 하나 지키겠다고 저렇게 충견 노릇을 하는 보안 직원들도 참으로 애처로웠다. 어차피 그들도 비정규직인데.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굳이 자기 손 더럽히고 싶지 않았나 보았다. 직원들은 꼭두각시처럼, 장난감 병정처럼 우리들과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환자들만 죽도록 고생하다가 결국 이 병원 재수 없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여기만 손해죠 뭐. 자기네들끼리 쪽박 차라 그러고 우리는 갑시다! 싸울 필요 없어요!”
결국 싸움은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나는 쯧쯧쯧 또 혀를 찼다. 보안 직원들이 정말로 불쌍했다. 다른 공간에서는 분명 귀한 자식이요 착한 아버지일 텐데. 연인과 사랑도 하고 친구들과 우정도 나눌 텐데. 왜 하필 여기에서는 병원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을까. 그 모든 것이 돈의 힘 때문일까? 모를 일이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실랑이는 병원 안 곳곳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한테 직원들이 다가와서 속을 긁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항의하면 아까 그 깡패 근육쟁이가 불쑥 나타나 몸으로 사람들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고 끝까지 존댓말을 썼다. 얇은 입술이 실룩거리며 웃는데 정말로 징그러웠다. 바깥은 추워 죽겠는데 왜 굵직한 팔뚝은 허옇게 드러내 놓고 다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 과연 놈들은 언제쯤 쳐들어올까? 가슴속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로비도 어느덧 조용해졌을 때, 알고 지내던 진보신당 강남구 당원이 A4 용지 대여섯 장을 붙여 만든 벽보를 들고 왔다. 직원들이 잠가 놓은 문에 붙일 거라고 했다. ‘정문 이용하세요’ ‘직원들이 강제로 잠가 버렸습니다’ 등등이 쓰인 벽보를 가지고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아까 직원들이 몰래 잠그고 도망친 바로 그 입구 쪽으로 갔다. 복도에 서 있던 보안 직원이 막아섰지만 우리는 아랑곳없이 지나쳐 버리고 입구 유리문 앞에 서서 테이프로 벽보를 붙였다.
구둣발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어느새 깡패 근육쟁이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이런 거 여기 붙이시면 안 됩니다. 모든 게시물은 게시판을 사용하셔야 해요.”
“그러면 이쪽에 누구 좀 나오셔서 통제를 하시던가요. 아무도 없으니 사람들이 불편을 겪잖아요.”
“지금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빨리 떼어 내세요.”
우악스럽게 생긴 손이 치켜 올려지나 싶더니 붙여 놓은 투명 테이프를 투두둑 떼어 내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저희가 뗄 게요.”
그러자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유리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뭐야? 왜 떼는 건데?”
“병원 시설물에 함부로 이런 거 붙이시면 안 됩니다. 게시판에 붙이셔야 합니다.”
“그럼 문은 왜 잠가? 문을 열어 놓으면 될 거 아냐?”
“빨리 안 열어요? 뭘 숨기겠다고 문을 잠가?”
“반말하지 마세요! 어디서 나오셨나요? 병원 직원이세요?”
“직원 아니면 어쩔 건데요? 그쪽은 직원 맞아요? 신분증명서 보여 봐요!”
“저 여기 직원이거든요? 제가 왜 그쪽한테 증명서를 보입니까?”
자기 입으로 넙죽넙죽 병원 직원이라 말하는 근육쟁이가 차라리 서글프게 보였다. 이 사람아. 그 좋은 덩치로 어디 번듯한 곳에 가서 양복 차려입고 일하지 그랬나? 사복 입고 싸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만한 곳에 가서 떳떳하게 일하지 않고 여기서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지금 입에서 여기 직원이라는 소리가 나오나? 근육만 그렇게 키우면 뭘 하나? 당신의 삶도 당신의 근육처럼 쓸데없이 부풀려진 게 뻔히 보이는데.
결국 우리는 뜯긴 벽보를 들고 다시 로비로 돌아와야 했다. 어느덧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조합원들은 긴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과연 놈들은 언제쯤 쳐들어올까?
하지만 밤이 다 지나고 동이 틀 때까지 깡패들은 쳐들어오지 않았다. 네 시쯤 사람이 가득 탄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와 사람들이 헐레벌떡 로비로 뛰어 들어왔지만 승합차는 병원 밖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고 했다. 정말 깡패들이 탄 차가 상황을 엿보러 온 것이었을까? 아니면 신경이 날카로워진 누군가가 잘못 본 것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밤새도록 우리들은 불안한 마음을 고질병처럼 안고 끙끙거려야 했다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승합차들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가슴속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도대체 놈들은 언제쯤 쳐들어올 것인가? 끝나지 않는, 끝날 줄 모르는 추리소설이라도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옆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다. 누구는 길이 안 보이는 짝사랑에, 누구는 인간관계에, 누구는 글쓰기에, 누구는 진보 운동에 마음밭을 파먹히며 하루하루를 견뎌 내고 있었다. 아무리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먹물을 풀어놓은 듯 별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수없이 반짝이는 별무리를 좀 보면 위로 받을 수 있을까. 더러운 꼴들, 비겁한 인간들, 신을 팔아먹는 종교인들, 돈벌레들, 폭력경찰들... 그런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다시 새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까. 별 없는 밤하늘 아래 그냥 궁금해졌다. 나는 자꾸만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섯 시 반까지 버티다가 결국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달라고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솔직히 불안하기 그지없다. 내가 병원을 나온 다음 갑자기 쳐들어왔을 수도 있다. 부디 아무 일 없기 바란다. 하루하루가 위험하다. 놈들은 과연 언제 쳐들어올까?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 물음에 못 견디도록 시달려야 할까?
이제부터 해고 노동자라는 신분으로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점거한 로비를 사수해야 하는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마음속으로 열띤 응원을 보낸다. 10월 1일 수요일. 천막 농성 15일째. 그리고 출근 투쟁 1일째.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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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학 님은 서울 서부비정규직센터(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