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4월 1일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획기적이라고 이야기할만큼 양도세와 취득세를 면제해주는 정책인데,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결국 부동산활성화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만큼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3%로 예측했고, 한국은행도 성장전망치를 2.6%로 하향 조정했다. 건설업종에서도 관급공사를 주로 하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아직은 견딜 수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 건설노동자들은 점차 일자리가 줄어들고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통영지역에서는 중소 조선소의 부도와 폐업 등으로 대규모 해고사태가 벌어지자 정부에서 이곳을 ‘고용특구’로 지정하여 지원을 해줄 정도이다.
그러나 아직 민주노조운동의 많은 이들은 경제위기의 여파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자본가들은 경제위기 때 오히려 기업규모를 늘리고 확대하지만 작은 사업장은 부도나 폐업이 일상화된다. 대기업 중심으로 하청계열화된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대기업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하청업체로 전가하기 때문에 대기업 노동자들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그 위기를 피부로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아직 조직도 되어 있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이 위기는 직접적으로 다가오며 그것은 삶의 위기가 된다. 임금이 최저임금으로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않고 살아가는 대다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삶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거나 문화생활을 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던 이들이 경제 위기에 직격탄을 맞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 닥친 계급대표성의 위기
언제부터인가 많은 이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계급대표성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노동자의 삶이 고통스러워지면 당연히 노-자 간 갈등이 심화되지만 그 갈등이 ‘노-자 갈등’이 아닌 왜곡된 형태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고통은 직접적으로는 실질적 책임 주체인 원청대자본과 중소영세자본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만들어온 정부에 책임이 있다. 심지어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한 청년노동자들의 고통도 노동유연화를 원칙으로 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한 정부와 자본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고용형태는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는 은폐되어 있기에 노동자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분노를 터뜨려야 할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또는 불특정다수를 향한 분노로, 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 불만이 표현된다. 자본과 정부는 이 분노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혹은 ‘조직된 노동자들’에게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 ‘정규직 이기주의’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면서 문제를 왜곡한다.
‘계급 대표성’의 위기란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함께 투쟁하면서 문제 해결의 주체로 서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채 원인이 은폐되고 분노의 방향이 왜곡되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을 의미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정부와 자본의 ‘정규직 이기주의’ 이데올로기를 맞받아칠 만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불안정한 삶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아직 조직되지 못한 이들, 아니, 조직될 수 없었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더불어 투쟁하고 위기의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만들지 못하는 한 진정 ‘위기’일 수밖에 없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의제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직업소개소를 빙자한 불법파견업체들이 공단 전체를 휩쓸고 있는데도 왜 이 문제가 드러나지 못하는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문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데도 더 심각한 일상적 중간착취는 왜 이야기되지 못하는가? 이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량팀이 대거 해고되고 지역 전체가 휘청거릴 만큼 통영지역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는데 왜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못하는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그저 숫자상으로만 존재하는 10만명의 정리해고 문제는 왜 사회적으로 제기되지 못하는가? 이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노조를 만들자마다 폐업하고 떠나버리는 자본, 물량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한 기업 안에서 노동조건을 높여보겠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동의 현실이 이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노동자들 앞에 닥친 절실한 의제가 사회적으로도 은폐되는 현실에 대해 누가 발언하고 함께 투쟁할 것인가.
민주노조운동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구미지역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집을 떠나라는 권고가 내려졌는데 옆 공장 노동자들의 출근은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의 권리에 대해서 우리 운동이 발언하지 않는다면 누가 발언할 수 있을 것인가.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중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들에 단가인하 압력을 행사하고 심지어는 노동조건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사용자책임을 확장해야 한다는 요구는 우리 운동사회 모두의 과제이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그 최저임금이 당연하게 생계를 보장할만큼 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우리 운동 모두의 요구여야 하지 않는가. 민주노조운동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의제, 조직된 노동자들의 의제를 넘어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당면한 의제에 대해 발언하고 투쟁하면서 실질적인 노동자계급의 대표로 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운동의 미래를 만들자!
전체 노동자들의 83.7%를 차지하고 있는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 그러나 조직률은 1%도 채 되지 않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이 위기의 시대, 우리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기업의 규모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기형적으로 큰 이 사회는 노동운동 안에도 그런 격차를 만들어놓았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민주노조운동에서도 영향력이 크고,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많은 자원들은 그 대기업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다. 단지 민주노조운동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대리’하려고 하면 그 구조적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민주노조운동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의제를 갖고 투쟁하려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더 많이 발언하고 힘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조직화’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조직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이 더 많은 재정을 투여하여 ‘전략적’으로 조직화의 매뉴얼을 만들고 활동가들을 투여하고, 투쟁의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도 연결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과 투쟁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기업별 담합구조를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 단결로, 그리고 한 사업장 내부의 임단협을 뛰어넘어 생활권 쟁취를 위한 투쟁으로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조합만의 운동을 뛰어넘어 지역운동과 연결될 수 있으며,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닥쳐있는 문제인 불안정과 저임금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신장시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노동자 주체를 형성함으로써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왜곡된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만들어나가는 힘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운동의 미래를 함께 만들기 위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힘을 다하자!
연재 순서
1. 중소영세사업장, 불안정노동자에 주목 - 김철식(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로 산다는 것 - 윤정호(반월시화공단 노동자)
3. 전략조직화 사업을 조직문화 혁신으로 - 오상훈(서울남부전략조직화사업단)
4.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람들 - 이미숙(반월시화공단 조직활동가)
5.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운동 -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