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국민연금 폐지? 노동자의 노후소득은 누가 보장하나

[기획연재](3) 국민연금을 둘러싼 은폐된 계급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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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9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현재까지 기초연금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또한 공약 후퇴 이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행복연금 방안 역시 국민연금 가입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민간연금 강화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참세상>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연금 방안과 한국의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적 조명, 신자유주의 연금개혁 논리에 대한 비판과 향후 대안을 모색해 본다.


국민연금 가입자, 나는 열 받는다

인수위 기간 동안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주기 위해 국민연금기금을 쓰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분노했다. 솔직히 국민연금 가입자인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노인세대를 젊은세대들이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개별적으로 책임지든, 기금에서 하든 형태가 다를 뿐이지 젊은세대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는 기초연금을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누구 마음대로 국민연금 가입자를 차별하나’ 너무 열이 받았다. 그리고 다른 가입자들이 같이 열을 받길래, 우리 가입자들이 국민연금 가입자로서 ‘함께’ 하겠구나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가만히 보니,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이런 상황이면 국민연금을 탈퇴하게 해 달라’ 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납세자연맹에서는 ‘신용불량자 될 정도로 힘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국민연금 보험료 걷어가는 국민연금을 폐지하자’고 국민연금폐지운동을 벌이고 나섰다. 나는 열이 받다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출처: 민주노총]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생각해요?’

그 즈음 이례적으로 국민연금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민주노총에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민연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 국민연금폐지운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번째, 국민연금폐지운동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제도는 자본주의 유지도구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세 번째, 어쩔 수 없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네 번째,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도 ‘현재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국민연금을 안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다른 생각, 그러나 같은 현실

국민연금 폐지운동에 찬성하는 조합원이나, 국민연금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도구라는 조합원이나, 국민연금에 관심이 없는 조합원이나, 아예 안 들고 있는 조합원이나 국민연금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아주 똑같은 현실 위에 서 있다.

현실 1. 노동을 하지 못할 시 위험에 처하는 것은 대부분 노동자이다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는 고령이나, 질병이나, 사망으로 소득활동을 못할 시에 처해지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들에게는 참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면 노동자들은 실질임금 삭감, 치솟는 물가, 실업과 고용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미래의 위험은 둘째 치고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미래의 위험을 대비할 수 없다고 눈 감고 외면한다 하여 미래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지금도 빈곤하고,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도 빈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벌 사장들과 비교해보자. 그들은 지금도 주체할 수 없는 돈이 있고, 그래서 미래의 위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국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공적 제도’를 요구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동으로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고 있기에 우리는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 즉, 노후소득보장제도는 노동자들의 권리인 것이다.

현실 2. 현재 노인세대를 자본가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부양해야 한다.

또 하나 어느 사회나, 현재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해야 한다. 2013년 현재 노인세대는 전체 인구 중 12%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노인이 되는 2040년에는 나를 포함한 노인이 전체 인구 중 32.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젊은세대 7명이 노인 3명을 부양해야 한다. 젊은세대 중 0~14세를 제외하면 젊은세대 6명이 노인 3명을 부양해야 한다.

먼저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국민연금 보험료가 올라 가입자들에게 재앙이 닥쳐올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자. 초고령사회가 되면 국민연금 보험료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현실에서 노인부양재원을 6명이 어떻게 만들 것인지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6명 중에는 노동자도 있고, 자본가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핵심 문제는 해당 시기 노인부양재원을 노동자와 자본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이냐이다. 당연히 노동자가 많이 분담하면, 자본가가 적게 분담하게 되는 것이고, 노동자가 적게 분담하면 자본가가 많이 분담하게 된다. 만일 노동자가 적게 분담하고, 자본가도 적게 분담하면 노인부양재원이 너무 적어 노인세대 중 노동자였던 노인이 노인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노동자인 당신은 어떤 입장인가? 노동자인 나의 입장은 노인부양재원 형성에서 자본가가 많이 분담하게 해야 하고, 노인부양재원을 일정 수순 이상으로 하여 노동자였던 노인도 행복한 노후를 보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국민연금으로 돌아가서

노동자들은 늘 일한 것보다 적은 임금을 받기에 개인적으로 노후소득을 준비하기 어렵고,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이 사회가 유지, 발전하고 있기에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또 노인부양재원 형성에 있어서 노동자와 자본가 중 누가 얼마나 분담할 것인지 대립하게 된다고 하였다.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처음부터 노동자들이 요구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국민연금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우리 노동자들이 국민연금제도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어쩔 수 없이 민간개인연금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민간개인연금의 가입 유지율은 30% 정도 밖에 안 된다. 즉, 10명이 가입하여 3명만이 연금을 탈 때까지 가입자로 유지한다. 국민연금은 경제적으로 보험료를 내기 힘든 시기에는 ‘납부예외’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국민연금가입자 자격은 유지가 되고, 경제적으로 나아질 때 다시 보험료를 낼 수 있다.

60세까지 띄엄띄엄 보험료를 내도 보험료를 낸 기간을 모두 합하여 20년만 내면 65세부터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민간개인연금은 수익비가 0.8이지만, 국민연금은 최소 1.2이다. 1을 내면 1.2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물가인상율에 따라 연금액이 인상되니 노동자에게는 민간개인연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 제도이다. 게다가 국민연금 직장 가입자들은 사용자가 보험료를 절반 내고 있어 노인부양재원에 자본가들이 법적으로 일부 분담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자본과 노동 역관계에 따라, 국가마다 사장님이 내는 보험료의 비율이 다르다. 그래서 국민연금제도는 치열한 계급투쟁 공간이다.

국민연금, 노동자 vs 자본가 vs 정부

국민연금이 무력화되었을 시에 웃는 자는 민간보험회사이다. 내가 찢어지게 가난해도, 노후가 걱정되면 빚을 내서라도 민간개인보험을 들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 민간개인보험이 확대되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물론 대다수는 민간개인보험을 들 수 없어 노후빈곤문제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무력화되었을 시에 웃는 또 다른 자는 나의 보험료 중 절반을 넣어주던 사장님이다. 노동자에게 어떡하면 한 푼이라도 더 안 주나 고민하는 사장님에게는 사회보험료 사용자분은 아까운 돈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가 국민연금 안 든다면 너무도 반가운 소리인데, 아예 제도가 없어지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

마지막으로 자본의 편인 정부가 있다. 지역가입자 국민연금 도입 직전에 정부는 개인연금 판매를 전격적으로 허가해주었다. 지역가입자들이 국민연금을 접하기 전에 민간보험회사들이 개인연금을 접할 수 있도록 하여 정부가 나서서 민간보험회사들의 판로를 노골적으로 보장해 준 것이다.

국민연금제도를 둘러싼 계급적 이해관계는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은폐하기 위하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나는 국민연금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좋은 ‘유일한 연금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간개인연금에 비해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고, 자본가들이 재원형성에 강제적으로 분담하도록 하여 노동자 입장에서 좋은 연금제도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더 좋은 제도로 변화하는 방향은 다른 계급의 이익이 감소하는 방향이다. 그래서 결국 국민연금 무력화에 (금융자본을 비롯한) 자본가와 정부가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제도나 정책에 있어서, 노동자들에게 좋은 제도나 정책은 노동자가 지키려고 하고, 자본가와 정부가 한편이 되어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유독 많은 노동자들이 관심이 없거나, 무력화시키는데에 함께 하고 있다.

87년 대투쟁 이후의 후세대들, 노후임금을 두고 계급투쟁 펼쳐야

87년 대투쟁을 겪은 30~40세 노동자들은 이제 55세~65세가 되었다. 87년 당시의 노동자들은 사업장 내 임금과 노동조건,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 보장되지 않는 권리를 두고 싸웠다. 당시만 해도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요구와 투쟁은 생소한 의제였다. 그 세대가 노인세대가 되어 노후문제는 자기 문제가 되었다. 그 후세대는 노인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자기문제가 생겼다. 동시에 노인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것과 이후 본인의 부양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중으로 자기문제가 생겼다.

‘노후임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자본 측에게는 답할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이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을 내고,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을 둘러싼 은폐된 계급문제도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없애는 것에 대한 반대투쟁, 연금수급나이를 늦추는 것에 대한 반대투쟁, 보험료를 높이는 것에 대한 반대투쟁,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중 사용자 부담비율을 높이는 투쟁,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일부를 (부자증세를 전제로) 정부가 지원하도록 요구하는 투쟁 등...

2013년 한국의 노동자들이 벌여내야 할 과제는 국민연금폐지운동이 아니라 바로 이 같은 투쟁들이다. 누구의 노후도 아닌 바로 ‘노동자의 노후’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