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가족 이자영입니다. 주강이의 엄마이고,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의 아내입니다. 이젠 저를 소개할 때 남편과 아이 이름을 대는 게 빠르게 되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 주강이의 장난과 무례함을 받아주시고, 남편과 많은 시간 함께 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동지 여러분, 존경합니다. 지난 주 실상사에서 생명평화행진단 여러분을 뵈었습니다. 남편만 가 있었다면 굳이 찾지 않았을 곳인데 아들이 있어 가게 되었지요. 아들 덕에 행진단 스케줄을 트위터로 확인하면서, 쌍용의 처지는 복에 겹다 싶을 만큼 세간의 주목과 응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들을 보았습니다.
변명하자면, 저는 줄곧 피하고 살아왔습니다. 쌍용차 사태는 저와 남편, 주강이의 일상을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아이가 받은 공포와 불안, 그로 인한 후유증은 다시는 입에 담고 싶지 않을 만큼 저에겐 제일 큰 상처입니다. 쌍용차 가족의 죽음이 잇따랐지만, 그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남편을 덮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고인을 애도할 여유가 나질 않았습니다. 뒤이은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사태... 비슷한 색깔 비슷한 모양의 작업복을 입고 거리에 내몰린 남자들과 가족들의 사연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분들이 당한 폭력과 고통을 들을 수가 없었고, 그분들을 만나는 일은 더더욱 하기가 싫었습니다. 이런 마음인 거죠. “나도 다 안다고. 나도 다 겪었다고. 그러니 내 앞에서 더 얘기하진 마. 제발...”
제 고향은 제주입니다. 저는 10여년 뒤 고향 제주에 내려가서 남은 생을 제주에 바치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강정을 외면하며 지냈습니다. 도무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구럼비에서 절하고 계신 분의 사진을 보았는데요, 순간 가슴에서 견디기 힘든 통증이 일었습니다. 강정 주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유린되는 실상들, 맨 몸으로 중장비에 대항하는 분들의 얘기들 앞에서 저는 늘 황급히 눈길을 돌리며 모른 체 했습니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도 신청했다가 별 것 아닌 사정을 핑계로 취소했습니다. 봐야할 것 같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유난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문적인 진단으로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 하지요. 그런 진단명 아래 저의 상태를 변명할 수 있어 좋지만, 기륭, 콜트콜텍, 현대차 비정규직, 자살하는 청소년들, 장애인들, 성폭행과 살인 등으로 충격 입은 분과 가족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 더 답답합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저희들에게 건네는 “힘내세요.”란 말조차 거슬릴까요. 파업이 한창이던 당시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종일 공권력과 대치하던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힘내세요.”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힘이 드는 겁니다. “우리더러 힘내라고? 무슨 힘을 내? 여기서 더 무슨 힘을 내라고?” 정말이지 그 자리에 서 있는 상황만으로도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건데, 거기에다 힘을 내라고 하다니… 제 마음 혹시 이해가 되시는지요? 그런 경험을 한 뒤부터는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응원합니다. 힘 드리고 싶어요.”라고요. 제가 이리 까다롭고 예민해졌습니다.
이런 저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우선 제가 확실하게 책임져야 하는 사람인 아이를 보호하는 것, 그리고 남편이 나로 인해 힘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불쾌해 하실 분도 계실까 죄송하지만... 이나마 가능하기 위해서는 저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 병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고요.
그리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제 마음이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하는 겁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란 역할이 있습니다. 이미 생명평화행진단의 구성자체가 상처받은 치유자들이고 행진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치유입니다. 저희가 정혜신 박사님과 집단상답을 할 때 고문피해 선생님들께서 함께 자리해 주셨을 때 많이 고마웠듯이... 그리고 파업 당시 용산 유가족분들께서 와 주셨을 때 우리 마음이 든든했듯이... 제가 무얼 하진 못해도 그 자리에 가 있는 것만으로도 혹은 지켜보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만약 힘이 된다면 그 노릇을 하겠노라고 말씀 드립니다. 저란 사람의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해서 이렇게밖에 말씀드리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동안 저에 대한 치유작업을 하면서 제 아픔이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고유하고, 존중받아 마땅함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분의 아픔이 죽을 듯이 괴로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강정 사람, 기륭 사람, 용산 사람이면 그 경험과 고통의 깊이도 천편일률적인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 고유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겪는 슬픔과 고통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한분 한분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고통을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주신 분들 덕에 되살아났습니다. ‘되살아남’의 경험을 여러분도 하실 수 있길 염원합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이 아픔을 잘 견디실 수 있기를, 이 아픔 안에 있는 의미를 찾으실 수 있길, 그래서 이 경험을 통해 더 평화로워지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