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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기록부는 공식적 사찰기록

[기고]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대학진학만이 교육의 목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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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그 내용을 기록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지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교과부는 지난 2월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발표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조치사항을 생기부에 기록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폭력사실 생기부 기재 방침을 수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교과부는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생기부 기재 방침을 각 지역 교육청과 언론에 재확인했다.

심지어 인권 침해적이므로 학교 폭력 관련 내용을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겠다고, 교과부의 지침을 거부한 지역 교육감들에 대해 교과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논란과 관련하여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는 학교 폭력의 예방과 처벌의 기능을 할 것이다"와 "학교 폭력 기록을 남겨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은 바람직한 학교폭력 해결 방안이 아니다"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교과부의 지침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교 폭력을 생기부에 기재하는 것이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대책이 되지 못할뿐더러, 학생들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한때의 잘못과 실수로 벌을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처벌이므로 이중처벌이라는 입장이다. 한 때의 잘못이 대입이나, 취업 등에는 오점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들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70년대의 생활기록부: 가족사항과 심리검사상황 등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현재는 개인당 20여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수많은 내용이 기록된다.


생기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 사찰기록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좀 더 크게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학교는 왜 학생들의 ‘생활’을 기록해야 하는가?

학교는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한 공공기관이다. 그렇다면 학생의 성취를 기록하는 것은 학교 본연의 목적에 적합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의 생활이 왜 기록되어야 하는가? 원래 생기부의 원형은 학적부이다. 이후에 학교가 행하는 학생 통제가 심해지고 학교가 관여하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학생생활기록부로 바뀌게 되었다. 심지어 2010년부터는 학생들의 독서현황도 생기부에 기록하게 되어 있어 무슨 책을 읽었는지 하나하나의 자료가 다 전산화된 자료로 기록된다. 뿐만 아니라 학교 폭력이 이슈화되고 나서는 교사와 학생이 상담한 내용도 일시와 소요시간, 내용을 네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기록하게 되었고 각종 누가기록이라는 형태로 교사가 학생을 관찰하여 알아낸 내용 10여 가지 이상을 자료화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이건 인권침해를 넘어서는 공포다. 현재 한국에서 의무교육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총 9년이니 생기부는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 사찰기록인 셈이다. 심지어 출력물은 10년, 전산화된 자료는 50년 동안 보관한다.

교육이 대학진학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정책적으로 확인시켜줘

그러나 자료의 수집이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좋다. 그렇다면 생기부의 필요성을 일단 인정해보자. 그럼 두 번째로 따져볼 것은 이것이다. 학교 폭력 관련 사항을 생기부에 적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현실적으로 지금의 학교가 교육기관이기보다는 선발기관이고, 모든 학생의 고른 성취를 꾀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매겨 상급학교 진학에 대한 자격을 인증해주는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기관이고 그러기를 요구받는다. 생기부 역시 교육적 수단이다. 학생 개인당 20여 장이 넘는 대규모의 사찰기록이지만 그 기록들은 학생들의 현재 생활을 기록하는 의도가 있지 학생이 나쁜 일을 했다고 기록해서 나중에 이 학생이 불이익을 받게 하기 위한 취지로 기록되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학교 폭력 관련 내용을 생기부에 기록한다는 것은 명백히 ‘이후에 받게 될 불이익’을 의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학교가 수행하는 역할이 맞는가? 이후에 받는 불이익은 학생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일어나는 처벌이며 학교가 행하는 교육과 상관이 없다.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기록과 학생이 이후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특정한 목적을 가진 기록은 완전히 그 성질이 다르다. 심지어 학교 폭력 관련 내용을 생기부에 기록하는 것이 학교 폭력 예방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대학진학’에서 받는 불이익이 얼마나 한국사회에서 치명적인가를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기부에 학교 폭력 내용을 기재하라는 지침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생기부의 기록이 대학진학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정책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그것이 학교 전반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건물을 하나 지을 때도 환경영향력 평가를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매해 교육정책이 바뀐다. 학교 폭력 생기부 기재 지침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학교라는 생태계, 그리고 한국의 교육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고민은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다. 고민 없이 졸속으로 이 정책 저 정책 시행해온 결과가 지금의 한국 교육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예방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 학교 폭력을 생기부에 기재하라는 지침은, 학생들에 대해 교사가 행하는 교육과 생활기록부의 성격을 새롭게 정의하는 지침이다. 학교가 학생을 기록하는 일이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처단의 수단, 그것도 대학진학에 대한 불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공식화하는 이 지침은 교실붕괴니 공교육 부실이니 하는 말로 표현되는, 이미 무너진 학교에 남아있는 마지막 서까래를 교육과학기술부의 손으로 뽑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