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다부지다는 느낌이었다. 상체가 많이 발달 했고, 성경책을 꼭 끼고 있었으며 가슴에 붙어 있는 빨간색 수번이 유독 눈에 띄었다. 눈에 띄는 것은 또 있었다. 발달한 상체에 비해 다리가 매우 가늘고 야위었다. 그리고 얼굴은 하얗고 창백해 보였다.
내가 처음 본 사형수의 모습이다. 94년도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되었을 때의 일이다. 독방으로 방을 옮기기 전 여러 명의 재소자와 함께 혼거 방을 사용했는데 그중 최고수 한 명이 있었다. 최고수란 소위 사형수를 일컫는 말이다. 이 사람은 80년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정파괴범의 주범이었던 김영현이라는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사형수들은 구치소를 몇 달에 한 번씩 옮겨다니는 떠돌이 신세였다. 이들에게 는 사형집행이 되어야 기결수가 되었기에 사형이 확정되기 전 기결수 수용시설인 구치소를 떠돌아 다녀야 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구치소에서 매일 주어지는 30분 정도의 운동시간은 퍽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구치소 생활을 하는 사람은 다리가 가늘고 야윌 수밖에 없다.
사형수와 함께 방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감정의 기복이 심했으며 불안을 떨치고자 좁은 방안에서도 끝없이 사소한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밤에는 더욱 심각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들의 잠을 설치게 하기 일쑤였다. 다들 그 사람 옆에서 자는 것은 물론 옆자리에 앉아 있는 거조차 모두들 피했다. 다른 미결수들 역시 재판을 앞두고 있기에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기에 더위는 여전했고 사소한 문제로 서로 간에 예민하게 충돌이 벌어지는 일이 잦았다.
당시 나는 아직 어린 나이였고 국가보안법 사범에 대해 구치소나 일반 재소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예우를 해주던 시절이었기에 그리 큰 불편 없이 수형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독방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청하여 사형수의 옆자리에서 생활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그랬는지 김영현이 와는 사이가 좋았다. 그는 나에게 종교단체에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에서는 가끔 얼마의 영치금을 보내는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 ‘지존파’ 사건이라는 것이 터져 나와 전국이 떠들썩했다. 이때부터 사형수 김영현이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건이 생기면 본보기로 사형집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역시나 얼마 안 있어서 추석을 앞두고 오전에 김영현 앞으로 사식인 쌀밥이 들어왔다. 그러자 김영현이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누가 넣었느냐며 항의를 하였고 담당교도관이 알아보겠다며 돌아갔다. 이날 그는 오전 내내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한 다음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다들 누워 낮잠을 자는데 잠결에 ‘영현아 가자’ 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 보니 복도에 붉은 모자를 쓴 교도관 약 10여명이 서있었다. 사형 집행이 시작된 것이다.
문을 따고 교도관이 방안으로 들이 닥쳤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 김영현이는 성경책을 달라 그랬다. 나도 얼이 빠진 채로 성경책을 찾자 그의 보따리에서는 수신불가의 편지 묶음이 우루루 쏟아졌다. 성경책을 쥐여 주자 그는 복도 끝으로 교도관에 둘러싸인 채 조용히 사라져 갔다. 그의 마지막 뒷모습 이었다.
다음날 접견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는 전날 서울구치소만 약 10여 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존파 사건 이후 사회 기강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형이 집행된 것이다.
며칠 전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자살 소식이 있었다. 다시금 사형문제를 생각 하게 한다. 수형생활을 하다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거나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난다. 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어쩜 이런 사람들이 그런 엄청난 죄를 지었을까? 그리고 드는 생각이 과연 이들을 철창 속에 가두어 놓고 우리 사회는 정말 안전할까? 하물며 그들에게 사형집행을 한다고 정말 사회는 나아지는가? 하는 물음이다.
나는 이글을 맺으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해 뜬금없이 동정론을 펼치자는 건 아니다. 그리고 사형집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나라의 사형제도가 더욱 흉폭 해지는 범죄를 줄이는데 큰 도움을 주는가 에 대한 문제다. 과거 잘못된 사형집행 사례는 무수히 많다. 대표적으로 간첩으로 몰아 죽음을 당한 인혁당 사건이 그렇다. 8명이 판결 18시간 만에 죄없이 사형집행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7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는다. 인혁당 사건은 대표적인 사법 살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례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말라고 보장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