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와 광남이네 부모님은 섬을 떠나 김포공항에서 청소 일을 했고 뒤 늦게 섬을 떠난 대훈이네 아버지는 현장 노동일을 했다. 월남전 용사 주옥이 아버지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지붕 아래서 시름시름 앓다 외롭게 돌아가셨다. 어린 눈에 난민처럼 앙상한 아버지의 모습과 머리맡에 나뒹구는 빈 소주병...두렵고 억울했다. 친구를 어찌해줄 수가 없어서. 혼자가 된 주옥이는 그해 중학교 졸업을 얼마 안두고 재단사 시다로 그렇게 섬을 떠났다. 슬펐다. 어른들의 세상은 나의 섬보다 훨씬 크겠지만, 더 젊었을 때 도시의 화려한 꿈과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나 고단한 삶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커가면서 알았다. 세상의 어떤 질서가 그들의 땅과 바다의 꿈을 빼앗았는지, 어떻게 그들을 도시의 화려함으로 유혹했는지, 그 화려함 뒤편에 훨씬 더 큰 어두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과 영영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어린 꿈을 어떻게 앗아갔는지 알았다. 그렇게 나와 내 친구 후배들이 모두 그 섬을 떠났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이젠 어린 눈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 끊임없이 쫓기듯 떠나고 있고 그 빈자리를, 살찐 도시의 추악한 이기심이 바다와 땅의 꿈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을 버리고 압축성장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조금만 더 멀리 생각해보자. 쫓겨나는 사람들, 뭍 생명들, 세상에 귀한 것 없이 쏟아지고 버려지는 물건들.
도시의 주거환경개선과 택지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 생명들. 영등포지구 35평 아파트의 널찍한 거실과 주방은 허름하지만 단란한 승호네 다섯 식구의 열평 남짓 보금자리였을 것이고 아파트 주차장 몇 칸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을 것이다. 아파트 현관의 경비실은 대형마트가 멀기만 한 동네 하나밖에 없는 골목슈퍼 자리였을 것이고 나머지는 동네 노인들의 소일거리 텃밭이었을 것이고..., 끊임없이 몸을 불려가는 도심의 경계는 우리 생명의 밥상을 채워줄 논밭이고 산자락이었을 것이다.
4대강 죽이기로 쫓겨나는 뭍 생명들. 상수원을 보호하고 생명농업을 위해 유기농 단지를 일구어 온 농민들의 땅엔 위락시설과 자전거 도로가 들어선다. 여주 남한강 이포대교 앞, 넓은 강변 모래톱, 자갈밭과 갈대밭, 버드나무 군락지와 논은 강을 살리겠다며 10미터 높이의 보를 쌓고 강바닥까지 자갈과 모래를 긁어내는 준설을 하겠다고 한다. 생명을 쫓아낸 자리에 강이 살아날 리 만무하다. 차라리 강의 생명줄 한쪽을 잘라서 더 잘 살아보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솔직함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꿈과 생명을 뭉개고 만들어진 더 큰 이익은 넘쳐나는 길거리의 차량으로,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 같은 대형마트의 물건들로 쏟아진다. 그 풍요를 자꾸 더 크게 유지하려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건강하지 못한, 못된 권력과 자본의 습성이 우리 몸에 파고 든 것이다. 우리의 몸과 생활은 권력과 자본의 숙주로 전락하고 있다. 폭력에 익숙해지고 생명의 고통을 외면한다. 비약이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 이러한 거짓된 풍요를 거부할 힘이 남아 있는지 묻고 싶다. 마비된 서로의 오른 팔다리를 부축하며 곪은 숙주의 몸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발견하고 싶다. 아직 거동이 가능한 한 쪽 몸으로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으로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현장에서, 생활공간에서 스스로 현실적인 가치관의 갈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의 안전한 삶과 먹을거리를 바라지만 광우병과 강제철거, 이주의 문제는 자신에게서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신토불이 먹을거리의 중요성 때문에 우리농업을 살려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미FTA는 많은 사람이 찬성한다. 환경보존이 미래세대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개발이익에 스스로 편승하기를 바란다. 에너지문제, 기후변화 문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중형차를 타고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본다.
많은 사람이, 아니 대부분 이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그래서 난 희망을 발견한다. 선택의 갈등이 개별화되어있으면 그냥 개인적 고민일 뿐이지만 모이고 연결되면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안다. 개별화된 갈등은 양심적 고통일 수 있지만 연대하면 마음의 평안을 찾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실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여기부터이다.
문제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선택의 갈등을 확장하는 것이다. 깨어있고 환경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은 작은 실천에 목말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환경운동 그룹들도 좀 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모임을 만든다. 이들 모임은 적어도 자기만족과 조직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는 이 개별화된 성과에 주목해야한다.
앞으론 스스로 실천하는 다양한 모임의 주체들이 차세대 환경운동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임의 튼튼한 연결고리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길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95%가 도시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도시는 모든 사회적 재부를 대량으로 소비하고 폐기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 공동체가 한 세대 쓰고 버리면 되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다. 도시가 스스로 순환하는 생태적 공간으로 변해야하는 이유이다. 도시에서의 우리의 삶이 생태적 생활로 변해야하는 이유이다.
이제 갈등하는 사회를 주저하지 말자. 정의와 생명의 울림 앞에 고뇌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회는 숨은 쉬되 죽은 사회이다. 흔들리는 사회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새로운 희망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광장은 갈등하고 흔들리는 개인이 서로 넘어지지 않게 기대어주는 공간이다. 지역운동포럼 in 수원, 따뜻한 광장에서 만나자.
[지역운동포럼 개별의제-환경] "우리에게 지속가능은 있는가?"
■ 일시/장소 : 11월 22일(일) 오후 2시 / 아주대학교 법학관
■ 사회 : 윤은상(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 우리가 알고 있는 '지속가능'은 무엇인가? : 참가자들의 이해도 측정
토론주제1. "함께가는 우리동네 실천모임"
: 단체별, 지역별 다양한 대안생활 실천모임의 현황을 알아보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환경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 토론제안 - 임선영(수원환경연합 집행위원)
토론주제2. "차세대 지역환경운동의 주체와 환경교육운동"
: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의 가능성을 사람에게서 찾아보고자 한다.
: 토론제안 - 김동현(수원환경운동센터 활동가)
토론주제3.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것은 가능한가?
: 위 두가지 주제를 포함해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생활운동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 토론제안 - 서정리(수원생협 이사장)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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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상 님은수원환경운동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운동포럼in수원은 시민들과 단체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새신발의 주인이 되실 분들은 후원계좌 : 농협 116-12-278345 (예금주 송원찬)으로 후원을 해주시면 됩니다. 문의는 070-8276-7973 | 이메일 swjinboforu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