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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좌파당의 부상과 그들의 선거공약

[연속기고](2) 21세기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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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좌파당의 부상과 그들의 선거공약

1) 좌파당의 11.9%의 득표율이 가지는 의미

좌파당은 2007년 6월 구 민사당(PDS)과 선거대안정당(WASG)의 결합으로 사민당과 차별화된 좌파정당으로서의 역할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005년도 선거연합을 통해 8.7%의 득표율을 얻어 연방의회 의석 중 54석을 얻었고, 2008년 지방선거에서 헤센주(Hessen)에서 5.1%, 함부르크(Hamburg)에서 6.4%의 지지를 얻었다. 구 민사당과의 결합으로 인해 구서독지역에서 좌파당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으나 보수지지층이 두터운 헤센주에서 5%이상의 득표를 얻은 것은 상당한 성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좌파당의 베어하임(Wehrheim)은 좌파당의 정치를 경험하게 된 지역에서는 서서히 구 동독당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베르디의 펠트-프리츠(Feld-Fritz)역시 베를린(Berlin)과 브란덴부르크주(Brandenburg)의 예를 들면서, 이 두 곳의 지방정부에서 좌파당이 연정파트너로 참여하면서 시민들의 좌파당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구 민사당에게 가졌던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은 좌파당의 정치활동을 통해 변화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좌파당은 4년 만에 3.2%p 증가한 11.9%의 득표율로 의회 의석수를 54석에서 76석으로 확대하였다. 이는 전체 의석수인 622석 중에서 12.2%에 머물지만 보수와 자유주의 연정이라는 정국에서 새로운 좌파성향의 당이 펼친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는 득표율의 수준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존 보수당을 지지했던 4만 명이 17대 총선에서 좌파당을 지지했다는 사실 역시 곱씹어 볼 만하다.

좌파당은 지난 대연정(기민/기사 연합당-사민당)시기 사회적 정의 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중심으로 정부정책에 비판을 가해왔다. 특히 실업정책의 판도를 바꾼 하르츠IV의 폐지와 최저임금관철이 당의 주요 정책이었다. 좌파당은 사민당이 ‘외적 강제(Sachzwang)’로 내세우며 개혁했던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제기한다. 이러한 당 정책과 입장이 사민당과 다른 좌파 성향의 정당으로서 입지를 굳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민당이 주도한 개혁 중 가장 지탄을 많이 받은 하르츠VI의 내용과 결과 그리고 이에 대한 좌파정당의 비판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사민당의 하르츠IV가 남긴 중대한 오류

2005년부터 시행 중인 하르츠IV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실업급여(Arbeitslosengeld)와 실업부조(Arbeitslosenhilfe)를 통합한 실업급여II(Arbeislosengeld II)에 있다. 실업급여II는 더 이상 과거 임금에 연동하지 않으면서 2006년 기준으로 구 서독지역 독신자의 경우 월 345유로, 구 동독지역 독신자의 경우 331유로로 균일하게 지급하게 되었다. 이전의 실업급여의 경우 총임금의 60%에 해당하는 급여수준과 12개월-18개월의 수급기간을 가졌고, 실업부조의 경우 총임금의 53%(자녀가 있을 경우 57%)로 과거 소득에 연동시켰다.

그러나 실업급여II는 과거 소득뿐만 아니라 자녀유무나 사회적 약자의 최소한의 조건을 제외한 부분의 개인의 차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액의 실업급여로 전환되었다. 이는 우선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급여가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수급권자 선정에서도 실업자의 수입 및 저축정도와 배우자의 소득까지도 평가되어 대상자에 대한 선별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수급권자와 수급권에서 탈락된 사람들은 더욱더 강제적으로 노동시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특히 직업알선센터(job center)에서 제안한 일자리를 거절할 경우 급여액의 일정액 또는 전액을 삭감당할 수도 있다. 더욱이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방안으로 정부는 ‘1유로 일자리’를 만들어서 현실 임금 수준과는 전혀 별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면서 ‘최저임금제’ 도입 논의가 촉발되었다. 이러한 강압적 실업지원정책의 개혁으로 실업률은 해마다 한 자리씩 감소되었다. 독일의 실업률은 2005년 11.7%, 2006년 10.8%, 2007년 9.0%, 2008년 7.8%, 그리고 2009년 5월 8.25%로 나타났다. 2005년 4,460,880명이 2008년 말 3,267,943명으로 26.7%(1,192,937명) 매우 감격스럽게 실업률은 감소하였다. 그러나 이와 실업률의 감소는 일자리와 삶의 질 안정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빈곤의 정도가 매우 심화되었다.

하르츠IV 개혁이후 2007년 말 사회부조 수급권자 중 빈곤율에 속하는 비율이 50%에서 66%로 무려 16%가 증가하였다. 이들은 중위소득의 60% 미만의 소득 생활자이고 특히 구 동독지역의 수급권자들의 경우 개혁 이전 연평균 10,400유로 수준의 소득이 개혁이후 8,800유로 수준으로 18%이상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결국 하르츠IV와 1유로 일자리라는 강제적 조치는 가시적으로는 실업의 축소와 고용창출을 위한 정부 비용을 감소시켰지만, 실질적으로는 임금수준의 하락과 구조적 실업의 희생자와 빈곤층에게 심각한 빈곤의 덫에 걸려들게 하였다.

2009년 5월 24일자 일간지인 벨트(Welt)지에서는 월평균 소득의 60% 수준을 기준으로, 1인 가구원의 경우 765유로, 4인 가족의 경우 2065유로로 빈곤선을 잡을 경우 전체 독일인의 15%가 이에 해당한다는 충격적인 빈곤보고 결과를 보고했다. 또한 사회정책학자인 크리스토프 부터베게(Christoph Butterwegge) 교수의 조사에서도 국민의 약 13%가 빈곤선에 놓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기서의 기준은 1인 가구 평균 월소득이 781유로(현재 환율 대비 약 133만원) 이하로 설정했다. 그러나 부터베게 교수는 생필품 및 주거비용의 물가인상을 고려했을 때 빈곤층은 약 2천만(독일 국민의 약 24%에 해당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빈곤율 증가는 실제로 독일인들에게 생의 위협으로 다가왔고 공급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민당이 주도하더라도 그 결과는 보수당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다는 비극적 경험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좌파당은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하르츠IV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공공부문에 50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시간당 10유로라는 최저임금 법제화를 선거기간 동안 홍보하였다. 이 공약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미동했는지, 사민당에 대한 실망으로 당적을 옮겼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하려는 좌파 정책의 한계는 불과 10여년 만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좌파당의 10대 긴급강령의 내용

선거이후 좌파당은 총선과정 중에 공약으로 약속했던 정책들을 정리해서 ‘10대 긴급강령(10-Punkte-Sofortprogramm der LINKEN)’을 발표하였다. 정책은 크게 평화, 좋은 노동, 사회적 안전, 노후보장과 빈곤, 경제위기 책임, 기본권 보호, 그리고 에너지 전환으로 구분된다.

•평화
① 아프가니스탄에서 즉각적인 독일군의 철수와 독일 내 미 핵무기의 철수 요구
• 좋은 노동(Gute Arbeit)
② 수평적 법적 최저임금과 ‘동일노동-동일시간-동일임금’ 도입: 시간당 10유로의 최저임금 법제화와 여성, 남성, 동․서 지역, 비정규직(특히 도급노동자), 장애인 등에 대해 차별 없는 동일 임금
③ 대량실업 대신 2백만 일자리를 위한 해고보호법과 공동결정(Mitbestimmung) 강화: 해고보호를 위해 과거 해고보호법으로의 회귀, 도급노동 자유화 폐지를 위한 기업의 대량해고 금지 입법화,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건강, 교육, 인프라 및 공공 영역의 적극적 투자
• 사회적 안전
④ 단기노동자급여(Kurzarbeitergeld) 및 실업급여I(Arbeitslosengeld I)의 연장: 단기노동자급여의 36개월 연장과 실업급여I 역시도 수급자 모두에게 24개월로 연장
⑤ 하르츠IV 전면 폐지
•노후보장과 동서간 형평성
⑥ 67세로 연금 수령연령을 상향하기로 한 개혁취소와 동서 지역의 연금 가치 동일화
•경제위기 책임
⑦ 저소득자 및 중간소득자의 부담경감과 신용경색(Kreditklemme, credit crunch) 해소: 저소득자 및 중간소득자를 위한 부가가치세 증대 거부, 연간 평균 3만 유로(약 5천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월 평균 100유로 수준의 세금경감, 평균 월소득이 6천 유로(약 1천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해서는 우선적인 과세, 재산세 및 사적 소유세에 대한 세율강화, 은행에 대한 국가적 통제 강화 및 은행의 사회화
⑧ 사회적 보호시스템을 위한 보호필터: 경제위기로 인한 국가재정 불안정성으로 개인의 추가적 비용과 보험료 상승이 예상되지만 사회보험 가입자와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 구축
• 기본권 보호
⑨ 효과적인 노동자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법안 상정
• 에너지전환 달성
⑩ 원자력출구전략이 후퇴 또는 전환되지 않도록 함

이처럼 ‘10대 긴급강령’은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좌파당은 사민당의 집권기간 동안 약화된 사회연대와 노동권 강화를 주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우경화된 사민당의 11년 집권이 남긴 빈곤, 실업자 지원 축소 및 강제노동, 나쁜 일자리 증가에 대해 ‘신자유주의라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이와 대응해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좌파당은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화와 민영화에 대응하겠다고 밝힌다. 이들의 정책과 관점은 상당기간 ‘현실가능성’의 잣대로부터 배제되어 소수집단의 요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민당의 공급중심의 정책으로도 시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경험은 소수 집단의 정책에 귀 기울이게 했고, 시민들에게 다른 가능성과 기대를 품게 하였다. 이에 좌파당의 새로운 도전은 향후 좌파적 성향의 정당들의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대항한 21세기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주체로 유의미하다.

3. 결론: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치와 대응 가능한 사회복지 정치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사회공공연구소의 이슈페이퍼로 작성된 것입니다. 작성자인 제갈현숙 님의 제안으로 연속기고로 싣게 되었습니다.


제갈현숙 님은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