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5년째 대학에서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을 가르치는 시간강사이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기간제 노동자를 최장 2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이 과연 기간제 고용의 남용을 막고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관해 지금 논란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가 이러한 기간제한 규정마저 적용되지 않는 광범위한 예외사유가 허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인데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즉 나와 같은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2년을 초과하여 계속 기간제 노동자로 사용하는 것이 허용될 뿐 아니라,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예외사유를 도입할 때의 논거는 전문적 지식/기술을 가진 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해 대등한 발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간제법의 ‘보호’를 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적정한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학기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시간강사는 다음 학기에도 계속 강의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대학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대항할 꿈도 꾸지 못한다. 일례로 내가 쓰는 근로계약서에는 분명 6개월의 근로계약기간이 명시되어 있지만, 임금은 항상 학기 중 4개월만 지급된다. 분명 근로기준법 위반의 임금 체불이고, 나 자신이 노동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이에 대해 대학측에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진정을 한다거나 하는 건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저 다음 학기에도 계속 불러주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법학과의 3학점짜리 전공과목인 노동법을 강의하고 이번 학기에 받은 임금은 월 42만원이다. 시급으로 치자면 3만 5천원이니 09년 현재 최저임금인 시급 4천원보다야 훨씬 많지만, 초단시간노동자로서 한 학기 평균 임금은 월 28만원에 불과하니, 사실상 이걸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시간강사들은 대학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생존이 불가능한 저임금에 시달릴 뿐 아니라 대학의 정규직인 교수(전임강사)와의 노동조건의 차별이 극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시행된 지난 2년동안 대학 시간강사들이 제기한 차별시정신청은 모두 기각되었다. 시간강사와 교수(전임강사)는 ‘하나의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항상 고용불안과 저임금, 차별에 시달리면서도 현행법으로는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나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란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니라 고용불안과 차별을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법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한 사람의 비정규직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법률가로서 비정규직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입법을 촉구하며 팻말을 들고 국회 앞에 서 있는 이유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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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애림 씨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