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경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국회의사당 정문 앞 인도를 내리쬐는 태양은 뜨겁다. 이번 주는 민변 노동위 소속의 변호사들이 릴레이 단식 및 1인 시위에 참여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내가 든 피켓에 법률가 단식 50일이라고 적혀있다. 이미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소속의 노무사들, 단체소속의 법률가들이 중심이 되어 50여 일간 릴레이 시위 및 단식을 진행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벌써.... 민변 노동위원장으로서 법률가 투쟁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시국이 하수상하여 엠비악법저지, 용산참사 진상조사 및 변론 등에 오히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상황과도 무관치만은 않다. 민변 노동팀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김현지 인턴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그러자 정문을 경비하고 있던 의경이 다가와 국회의사당 건물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나와 인턴 그리고 역시 옆에서 비정규직법 개악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던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모두 이해할 수도 없다는 표정이다. 국회입법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1인 시위 장면을 촬영하는데 국회의사당 건물이 찍히면 안 된다니...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건물이었던가? 국회의사당 건물 또한 국가기밀에 속하는 것인가? 약간의 항의를 하였더니 자기들도 위에서 그리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도리가 없단다... 기가 막힐 일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난 이후 정부여당의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행동은 표현의 자유로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 아니라 통제해야할 대상으로 불법 시 되었고 이러한 ‘반민주적’ 국정운영의 행태는 국회의사당 정문 앞 1인 시위 현장에도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음을 체험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법률가들은 50여 일 동안 누구의 주목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입법의 전당’인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와 릴레이 단식을 지속하고 있는 것인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현재 정부여당에서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비정규직법 개정안과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기간제 근로자, 그리고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대상업무를 현재보다 대폭 확대하며, 6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해 최저임금조차 감액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가 제공하는 숙박비를 최저임금에서 공제하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결 같이 근로조건의 후퇴를 가져오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기간제 근로자 및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을 연장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4년의 한도 내에서는 자유롭게 기간을 정하여 근로자를 채용하고 그 기간이 경과하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주는 4년의 한도 내에서 자신의 구미에 따라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2년, 3년, 4년 단위로 자유롭게 근로계약 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계약을 갱신하든지 아니면 그를 해고하고 대신 다른 근로자를 채용하든지 그 선택에 아무런 법적 구애를 받지 아니하다는 의미이다.
노동자의 측면에서 보면, 기업주가 정해주는 기간만큼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지고 그 기간 이후의 고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없다. 기업주에게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주는 셈이다. 실제 이러한 정부여당의 입법추진으로 인해 올해 들어 기간제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여당이 앞장서 기간제근로자 및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 이내로 제한하고 있던 것을 4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하자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는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기간의 종료만으로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근속연수가 4.7년인 점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게 되면, 기업주들이 애써 정규직을 채용할 유인은 사실상 소멸하는 것이다.
고용안정이 없는 사회의 도래는 곧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의 꿈이 불가능한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국민의 다수가 미래를 준비하는 생활이 아니라 현실의 생계를 위해 ‘올인’해야 하는 ‘우라질’ 조건에 처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 하에서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기업주로부터 계약기간 연장이라는 ‘은총’을 받기 위하여 기업주가 싫어할 근로조건 개선 주장이나 노동조합의 설립 따위는 헌법전에만 있는 권리일 뿐 현실에서는 배고픔을 모르는 철없는 ‘짓’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만일 우리가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의 개악을 막지 못한다면 군부독재시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 했던 ‘공순이’, ‘공돌이’의 서글픈 아픔이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제도적으로 되물림 되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모두의 분발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