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10시 전후 경찰이 평택 쌍용자동차 도장2공장을 제외한 모든 공장을 장악했다.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침묵하던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입을 열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노조가 정상화에 비협조적일 경우 법원과 채권단 입장이 경직될 수밖에 없어 파산밖에 방법이 없다”면서도 “채권단은 담보가 많아 피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상화 방향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쌍용차 사측은 2일 노사교섭 결렬선언을 한 뒤 “파업으로 구조조정이 되지 않는다면 청산형 회생계획안을 신청한다”며 사실상 파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쌍용차 협력업체 6백여 곳으로 구성된 협동회 채권단도 이날 오후 4시로 파산신청을 연기했다. 협동회 채권단은 이날 파산신청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찰의 진압 추이를 보고 파산신청을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쌍용차 사측, 산업은행, 협동회 채권단 모두 “파업을 계속하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며 노조에게 ‘파산’ 위협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개별기업 문제는 불개입”이라며 회생계획안 제출이 예정된 9월 15일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상하이차 인수 뒤 이어진 쌍용차의 부실
쌍용차가 올해 1월 법정관리 신청을 한 뒤 상하이차가 부실의 책임이 있다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상하이차는 2004년 말 5,909억 원의 인수대금을 지불하고 쌍용차를 인수했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 당시부터 헐값매각 논란이 이어졌다.
상하이차 인수 전 쌍용차의 자산은 자기자본 1조2천535억 원, 부채 1조3천874억 원 등 2조6천409억 원의 규모였다. 외형상 부채가 자기자본을 초과했지만 전체 부채 가운데 금융권 차입금 등 순부채는 4천200억 원에 불과했다. 2003년 당기순이익은 5천897억으로 인수대금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상하이차 인수금액의 66%인 3천931억 원이 차입금이었다.
상하이차 인수 뒤 일어난 기술이전과 유출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 뒤 일어난 일은 자동차기술의 핵심인 엔진기술 이전이다. 상하이차와 쌍용차는 2006년 '카이런'을 생산하는 "L-프로젝트 라이선스 계약"을 240억 원 헐값에 계약했다. 이 계약으로 상하이차는 가솔린 엔진생산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쌍용차는 정규직, 비정규직 포함해 1천여 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에 희망퇴직과 함께 1조2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노조와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쌍용차는 작년 8월 하이브리드카 기술 유출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기 전 2007년 1월에 국가정보원이 검찰에게 하이브리드카 기술유출가능성을 언급한 첩보를 넘겼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쌍용차는 2004년 산업자원부에 의해 디젤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의 국책사업자로 선정돼 지원금과 함께 국내 연구기관과 연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국책사업인 하이브리드카 기술유출혐의로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 1년이 되었지만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지 않고 있다.
쌍용차는 상하이차가 인수하기 전인 2002년 3천184억 원, 2003년 2천896억 원의 영업이익을 봤다. 그러나 상하이차 인수 후 영업이익은 한 해 500억 원을 넘지 못했고 작년 2천27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끝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상하이차는 법정관리 후 경영권은 손을 뗐지만 여전히 쌍용차 주식의 51%을 소유하고 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지분을 지키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 뒀다고 알려져 있다.
정부가 주도한 쌍용차 매각
정부는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중국의 자동차기업 난싱은 2003년 12월 쌍용차와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난싱이 중국정부의 투자승인에 실패하면서 중국의 쌍용차 인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난싱의 쌍용차 인수 실패 뒤 상하이차가 2004년 6월 입찰에 참여했다. 한달 뒤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중국을 찾아 중국 측 인사들과 쌍용차 투자계획을 논의했다. 이들의 방중 다음 날인 7월 28일 상하이차는 당시 쌍용차의 주 채권은행인 조흥은행과 양해각서 체결식을 가졌다.
쌍용차 헐값매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수 1년 뒤인 2005년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주도로 4천2백억 원의 신디케이션론이 쌍용차에 지원됐다. 신디케이션론 지원으로 쌍용차는 채권단공동관리(워크아웃)에서 벗어났고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완전한 주인이 됐다.
책임지는 곳은 없이 ‘파산’ 압박만
쌍용차사태의 시작은 상하이차 인수 뒤라는 점에는 노동계와 업계의 분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에 힘을 실어준 것은 정부였다. 그러나 정부는 상하이차에 부실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권두섭 변호사는 4일 민주노총의 ‘쌍용차 기획파산 의혹’을 제기하는 간담회에서 “파산을 이야기가 나옴에도 대주주인 상하이차의 주식소각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주식을 소각하지 않으면 사실상 파산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4년 넘게 쌍용차를 경영해 온 상하이차와 직간접적으로 쌍용차에 개입했던 정부는 쌍용차사태와 무관한 것처럼 침묵하고 있다. 상하이차와 정부는 침묵으로 쌍용차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있다. 오직 쌍용차 노동자들만이 산 자(비해고자)와 죽은 자(해고대상자)로 나뉘어져 자신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