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36일동안 45미터 굴뚝농성을 벌인 현대차노조 이헌구, 윤성근, 정갑득 전직 위원장들(사진=현대차지부) |
지난 주말이었던가.
“쌍용자동차에 공권력 투입되었다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동료가 전화를 했다. 쌍용자동차의 굴뚝과 도장 공장, 가족대책위의 절규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급박하게 전화를 돌렸다. 그마다 다행히도 공권력의 무모한 시도는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공권력투입이라니...정말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을 기어코 저지르고 마는가.’ ‘소통이란 말이 넘쳐흘러 마치 국시(國是)인 듯 착각이 되는데, 어찌하여 정부는 수년째 계속되어온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이토록 외면할 수 있는가?’
온 나라가 물난리고, 비가 오지 않으면 40도를 웃도는 폭염인데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두 달 하고도 열흘 가까이 70m 높이 굴뚝 농성장의 세 사람이다.
“승리하지 않으면 결코 내려오지 않는다.”
“승리하지 않으면 결코 내려오지 않는다.”
11년 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 당시 36일간 굴뚝고공농성에 동참했던 한 사람으로서 오늘따라 당신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새겨진 마음이 더욱 무겁게 남는다.
먼저 내려간 쌍용차노조 김을래 부지부장 동지!
정비지회 김봉민 부지회장 동지!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부지회장 동지!
부디 몸 잘 챙기십시오. 끝까지 조합원들을 믿고, 비록 몸은 함께하고 있지 못하나 전국 곳곳에서 지지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믿고 좀 더 버텨주십시오.
1998년 울산, 2009년 평택
답답함과 무기력감속에 늦게까지 소주를 마셨다. 어둑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평택은 여기서 어디쯤일까, 어린 아이처럼 손가락질을 해봤다. 6월19일 상경투쟁 시 평택 쌍용자동차 광장에서 열린 금속노동자 투쟁문화제에서 만났던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굴뚝농성장 동지들의 목소리를 생각하니 그냥 눈물이 주루룩이다.
11년 전 울산 현대 자동차에도 생존권을 지키려는 수백 개의 텐트들이 자리를 잡았다. 노란봉투(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조합원들이든 아이든 수천의 조합원들과 가족들, 아이들까지 하나로 어우러져 36일간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꼭 11년만에 1998년 울산은, 평택의 2009년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되살아나 울산 그 이상의 절박한 현실을 겪어내고 있다.
2009년 5월 쌍용조합원 976명이 노란봉투를 받은 것처럼 나 역시 1998년 1700여명의 조합원과 함께 노란봉투(해고통보서)를 받았다. 결혼한 지 불과 두 달이 되던 때였지만, 신혼은 고사하고 회사측의 희망퇴직자 모집, 정리해고 통보방침으로 이미 수개월 전부터 어수선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은 심정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노동운동을 하든 하지 않든, 조합간부이든 그렇지 않든 정리해고 통보는 한 인간의 존재를 철저하게 위축시키는 것이며 생존과 그 존재 자체를 끔찍하게 위협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36일간 계속되었던 굴뚝농성장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아내의 격려와 지지, 함께하는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는 경영자들의 경영미숙과 책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경영자로서는 최하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1998년이나 2009년이나 철저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1998년과 마찬가지로 쌍용자동차 사측이나 MB 정부 역시 이를 교정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지난 보궐선거 시 너도 나도 쌍용자동차 회생방법이 있다며, 쌍용자동차를 반드시 책임지겠다며 목청을 높이던 정치인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1998년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울산 현대자동차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이미 1만명 이상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난 마당에, 정말 그 당시 절절히 필요했던 ‘정치’ 대신 277명의 식당여성 조합원들의 희생, 1700여명의 무급휴직이라는 노동자 책임 전가책을 중재안으로 포장하며 노동조합을 압박했고 그렇게 쓸쓸히 36일 동안의 꿈같은 투쟁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결국 살아남은 자와 내몰린 자로 노동자들을 나눠버린 간교하고도 잔혹한 자본과 정권의 생존게임전략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희망퇴직으로, 정리해고로 정든 직장을 떠나버린 조합원들, 남아있는 조합원들은 또 그들대로 모두가 예외 없이 각자의 상처를 안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그 상처를 그냥 덮어둔 채로 치유하지 않았기에, 11년이 지난 지금 1998년 울산 현대자동차의 과거는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의 현실로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숱하게 발표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쌍용차 사태의 원인에 대해 70% 이상의 국민들이 쌍용차를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하여 기술을 빼가게 만든 당시 정부와 사측의 잘못이라고 본다. 쌍용차 파업에 대한 문제제기도 17.6%정도에 불과하다. 정리해고 등 인력감축 방식으로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반대여론은 찬성여론에 비해 두 배나 높다. 특히 경찰병력투입에 대해서는 88.8%라는 압도적인 국민들의 반대가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며 폭력적인 사태해결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정부는 ‘소통’을 말하며 ‘불통’만을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는 진짜로 하나다. 진짜다...
쌍용차 문제의 본질과 조합원들의 투쟁의 정당성은 국민적 여론으로 확인된다. 진짜다. 이 때문에 쌍용차 사측은 조합원들을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로 끝없이 이간질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을 갈라내고,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쌍용차 조합원들을 대립시키는 것은 자본과 정권의 마지막 발악이고 권모술수일 뿐이다. 벌써 쌍용차조합원 여섯이 유명을 달리하고, 사측의 관제데모에 동원된 조합원들도 역시 또 다른 생존의 덫에서 괴로워하는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다.
쌍용차조합원들의 주장은 ‘함께 살아야 한다.’이기에 정당하며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십 번 외면당했을 장미꽃을 또다시 건네는 가족대책위의 눈물과 절규 속에서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한솥밥 먹던 형님들, 제발 나오지 마세요. 장미꽃을 받아주세요.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며 다가가고 또 다가가는 흔들림 없는 바로 그 마음이 바로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승리하는 것이고 1998년 미완으로 상처를 남긴 현대자동차의 투쟁이 부활하는 길이며 우리 노동자들이 승리하는 길이고 우리 사회의 모든 약자들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는 세상을 열어내는 길이라 생각한다.
“함께 살자”
맞다. 옳다. 참으로 노동자다운 말이다.죽은 사람, 산 사람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쌍용자동차 조합원, 하청업체 노동자,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살아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노동자는 똑같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인 것이다.
쌍용자동차 동지여러분! 가족대책위 여러분!
부디 꿋꿋이 버텨내십시오.
어떤 비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꼭 이겨냅시다.
함께 이겨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