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배기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과 전교조 관계자 전원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용식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에게는 징역 2년, 손 모 전교조 전 부대변인에겐 징역 1년6월, 박 모 전교조 전 사무처장, 박 모 민주노총 전 재정국장에겐 1년씩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용식 전 사무총장이 범인 도피를 총괄하고 조직보위를 위해 대책회의와 허위진술을 주도했고 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손 모씨는 범인도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1년을 구형받은 전교조 박 모씨는 이석행 위원장을 하룻밤 재워줬고 연행 후 회의에 한번 참석했다.
검찰의 이번 범인도피죄 적용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파렴치범이나 잡범이 아닌 시국사범인데다 이전엔 민주노총 수배자 도피과정에서 도피죄를 적용 한 일이 없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석행 전 위원장은 지난해 7월 미신고 집회를 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고, 임단협을 앞두고 전국 184개 사업장 23만590여명이 참가한 불법 정치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도피생활을 했다. 이 전 위원장은 작년 12월 5일에 체포돼 지난 3월 19일 오전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검찰, 민주노총에 ‘조직 속에서 개인의 위치 고민하라’ 충고
검찰은 징역형 구형이유로 “피고인들은 인정상 당연하게 도피를 도왔다고 하지만 허위진술을 하려 했고 조직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진술했다”면서 “그 와중에 한 사람은 처절하게 짓밟혔고 조직보호 논리로 내부 개인의 희생이 뒤따랐다. 피고인들은 오직 조직보호 논리”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종합하면 아직 진보계열은 고민이 많아야 한다. 조직 속에서 개인의 위치에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도 했다.
이번 이석행 위원장 도피 은닉죄 사건의 변호인은 “검찰이 여전히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과 무리하게 결합하고 있다”면서 “범인도피 관점으로만 봐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공판은 김상완 성폭력 사건과 병합되어 진행됐다. 변호인은 또 “검찰이 개인의 우발적 행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피고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면서 “시국사건으로 숨겨준 사람을 범인도피죄로 처벌한 사례가 없었다”고 변론했다.
이용식 전 사무총장은 최후진술에서 “이석행 전 위원장은 이 사회의 양심수”라며 “그런 사람에 편의를 제공한 조합원들이 법정에 선 것이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장은 또 “MB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민주노총은 탄압의 표적이 되었고 그렇게 수배된 위원장에게 한 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 것은 인간적으로 최선의 도리였다. 이런 인간적인 도리에 실정법으로 처벌한다는 검찰의 입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이어 “검찰에서 조직보위론을 얘기하고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려 한 적이 없다. 한 개인, 어떤 조합원이라도 지켜야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사명”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총장은 “아무리 검사라지만 조직보위를 말하지 마라”면서 “제가 지킨 민주노총은 한 번도 거짓되고 불의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허위진술을 강요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더는 모욕받고 비난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 모 전교조 전 사무처장도 “지금도 공안 2부는 전교조를 마녀사냥하고 있다”면서 “위원장이 연행될 당시 언론에는 전교조 조합원의 집에서 연행됐다고 보도됐다. 전교조이기 때문에 범인도피죄를 적용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과거 이근안이 10년 동안 도피 시 그를 도와준 사람을 도피죄로 처벌한 것을 못 봤고 김우중을 도와준 사람에게도 없었다. 어떻게 전교조에만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 박 모 전 재정국장은 이미 집행유예 중이라 구형대로 징역형이 선고되면 이전에 선고된 징역형도 살아야 한다. 전교조 박씨와 손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교사 신분을 잃게 된다.
성폭력 가해자엔 징역 5년 구형
이날 검찰은 도피를 도운 한 조합원에 성폭력을 저지른 김상완 전 민주노총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가 범인도피와 성폭력을 저질렀고, 피해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피해자는 진정성이 없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구형이유를 밝혔다.
김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의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이 일반적으로 믿기는 어렵지만 사건 당시 피고의 행적을 비추었을 때 진실성이 높은 변명”이라며 맨정신이 아니라는 취지의 변론을 했다.
변호인은 이어 “피고가 사건 발생 20일이 지난 12월 26일에 자신의 잘못을 알았고, 그날 이후 정신적 공황에 빠져 몸무게는 8킬로가 빠졌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심지어 십이지장 궤양이 왔다”면서 “맨정신이었는지 판단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믿기 어렵지만 이후 행적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 “피고인의 처가 학교로 피해자를 찾아가고 집으로도 찾아가 합의를 시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피해자 선생님께 죄송하고 사과를 드린다”면서 “아무리 기억을 못해도 그분이 받은 상처는 매우 죄송하다. 안정되게 제자리에 돌아가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이어 “20대 후반에 노동운동을 처음 접하고 노조에 가서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20년 이상 가족보다는 민주노총을 위해 싸웠는데 이번 일로 인해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에 상처를 줘 더없이 죄송하다. 씻을 수 없는 업보라 생각한다”면서 흐느끼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제 가족에 돌아가 생활하도록 선처를 바란다”면서 “남은 생애는 겸손하게 탐욕과 욕심에서 벗어나 이웃과 세상에 도움되는 삶을 살겠다”고 판사에 호소했다.
한편 이용식 전 사무총장은 최후진술 과정에서 “김상완 동지는 20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며 민주노총에서 신망을 받아 중책을 맡겼고 평상시에도 언제나 어려운 일과 힘든 일을 도맡아 왔다”면서 “이미 인간 김상완은 사형선고를 받았기에 다시 지아비이며 아빠로 따뜻한 이웃이 되도록 해달라”며 선처를 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