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놓고 한미 양국의 갈 길이 달라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한미FTA에 대한 조속한 비준을 고수·촉구하고 있는 동안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세의 채비를 갖춰가고 있다.
김종훈 외교통상교섭본부장은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의 '한미FTA 현 상태로 수용불가' 발언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11일 오전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종훈 본부장은 "공식입장이 아니어서 직접 대응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재협상을 요구했다고 할 만한 부분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 "공식입장 아니다"...미 의회, 불공정무역 보호 입법 추진
안호영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성관은 11일 브리핑에서 론 커크 지명자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며 "협정을 가능한 한 조속히 비준해 발효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게 기본입장"이라고만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기간 중 한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국 내 분위기는 달라보인다. 10일 미 하원 세출위원회의 샌더 레빈 위원장은 10일 미국 수출 장애물을 제거하고 불공정한 무역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가 9일 "단순히 현 상태만으로는 한미FTA를 수용할 수 없다"며 직접적으로 한미FTA를 불공정한 무역으로 언급한 데 이은 것이다.
<로이터>는 레빈 위원장이 "공정한 경쟁이라면, 미국이 도전에 응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는 모두가 합의된 룰에 따라 경쟁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의회 차원에서 해외 무역장벽을 조사해 필요할 경우 무역대표부에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기구 설치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스 보커스 상원재무위원장도 올해 내로 유사한 내용의 입법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美, 자동차에 이어 쇠고기 재협상 요구 수면 위로
정부에서 아직 한미FTA의 재협상을 요구할 부분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그 내용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쇠고기에 대한 재협상 요구도 등장했다. 9일 론 커크 인준 청문회에서 막스 보커스 상원재무위원장은 "한국은 반드시 연령에 관계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만 한미FTA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한미FTA 내용에 대한 재검토는 불가피 하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재협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은 작다. 재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미FTA를 둘러싼 한국 내 반대 여론 등을 고려하면 지불해야 할 정치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반대 여론을 촉발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추가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과 한미FTA를 놓고 진지한 토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안호영 통상교섭조정관은 "미국의 현실적인 여건이 지금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결국은 경기부양과 금융위기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바마 행정부와 진지한 토론을 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 통상현안을 점검하기 위한 국장급 한미통상협의가 11-12일 양일간 외교통상부에서 개최된다. 안호영 통상교섭조정관은 한국 측에서는 한우 등 대미수출을 위한 구제역 청정지역 인정 및 삼계탕 대미 수출검역 절차의 조속한 완료, 미측의 반덤핑 관세율 과대 계상 문제 해결 등의 미측의 협조를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측은 의약품, SPS(위생 및 식물위생조치), TBT(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등을 의제로 제기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미FTA는 의제에 올라와 있지 않다고 안호영 통상교섭조정관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