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장님이 나를 보면 항시 건네는 첫 인사셨죠. 조막손에 눈깔사탕 하나를 공짜로 쥐어줄 것 같은 맘씨 좋은 이웃집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던 소리나 거리에서 만났을 때나 어김없이 건네시던 이 한마디가 울컥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가장 따뜻했던 인사였어요. 이렇게 쌍용차지부와 재능지부가 가장 가까이에서 너른 광장을 앞마당 삼아 아래, 윗마을 이웃사촌으로 지낸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한번쯤은 지부장님께 써보고 싶던 편지글이 손에 쥐어보지도 못할 이런 때에 쓰게 됩니다. 남은 조합원들에게 위로를 보태겠다는 것도, 지부장님이 떠나 있는 자리를 힘있게 채우며 싸우겠다는 결의도 아닙니다. 그저 지부장님을 만난 첫 기억부터 함께 싸워왔던 시간들을 글로 남기는 이 작은 일이 지부장님을 자유롭게 뵐 수 있는 시간까지 저에 대한 작은 위로입니다. 조금은 쑥스러운 이 편지를 시작하며 지부장님에 대한 첫 만남부터 떠올려 보았습니다.
▲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부장님을 처음 뵌 것은 그 뜨겁던 여름 77일간의 공장 옥쇄파업이 끝난 직후, 건설노조 동양레미콘분회를 연대투쟁 간 곳에서였어요. 연대사를 부탁하는 동지에게 ‘난 그냥 평조합원입니다’라며 한사코 발언을 마다하던 그 모습이 지부장님에 대한 첫 만남의 기억이었더랬죠. 이런 별스럽지 않은 일이 왜 기억에 남았을까요? 사실 그 날 그런 지부장님을 보며 속으로 ‘에이, 뭐 저래. 그 영웅적 투쟁을 했던 동지가 그깟 발언을 저리도 거부하다니...’ 좀 실망스러웠거든요.
그런 짧은 만남 얼마 후 성균관대에서 하는 77일간의 기록을 담은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시종일관 제 처지에 대한 설움이었는지 참 많이도 울었었죠. 그런 중에도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에 남았던 한 장면... 투쟁이 끝나면 제일로 하고 싶은 게 뭐냐 묻는 카메라를 향해 ‘우리 마누라 한번 찐하게 안고 싶다’ 라며 너무도 해맑은 웃음으로 웃던 멋진 그 중년의 남자가 바로 지부장님이셨습니다. 첫 인상과는 너무도 다른 기억이죠?
이후 2011년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 천막농성을 시작하는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의 연대투쟁을 하게 되면서 구로정비지회 지회장으로 다시 뵙게 되었죠. 2011년 8월엔 상경한 한진지회와 투쟁사업장의 조합원들이 상급단체 어디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우리만의 동지애로 광화문 KT지사 앞에서 했던 노숙투쟁. 침낭 하나도 깔지 못하는 노숙 장소에서도 밤마다 아우뻘 동지들과 밤을 새며 구성지게 뽕짝을 부르시며 분위기를 띄워주시던 지부장님...
또 2012년 1월부터 시작한 서울, 수도권 투쟁사업장 순회 투쟁 ‘희망 뚜벅이’, 그 힘을 모아 혹한의 겨울 추위를 마다않고 시청광장을 점령한 ‘희망 광장’을 함께 하며 투쟁의 현장에서 만나는 지부장님은 이 힘든 싸움의 현장이 힘겹고 서럽지만은 않은 듯이 언제나 즐거운 분위기로 밝은 기운을 주시는 분이었죠. 그 살인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러한 공동투쟁들을 함께 한 이후, 작년 4월 쌍용차지부 동지들은 동료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고 서울 도심 한복판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셨습니다. 숱한 탄압에 맞선 끈질긴 투쟁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해결의 고리를 찾아보고자 선택하신 단식, 오십 중반의 중년이신 지부장님이 행한 결단사 ‘우리가 죽는다 해도 꿈쩍이나 하겠어? 하다 하다 이것밖에 없으니 하는 거지. 제발 우리 주변이라도 싸우는 우리들과 함께 해보자고 굶기라도 해보는 거지...’
저는 지부장님도 다르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단식을 그런 마음으로 결단했기에 지부장님께 그만두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죠. 단식 천막에 들를 때마다 얼굴 보는 것으로 말 대신 안부를 확인하고, 침낭 안으로 밀어 넣으며 뜨뜻한 곳에서 한 숨 자라고 자리를 내어주시는 것을 마다않고 따르는 것 밖에는. 보는 많은 사람들이 단식하시는 분 옆에서 어쩌면 그렇게 편안히 잘 수 있냐 물으면 ‘뜨끈하고 얼마나 좋은데’ 라며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웃곤 했죠. 이제야 말인데 정말 뜨뜻하고 편하고 좋긴 했어요.^^
그렇지만 놀라리만치 꿋꿋하게 잘 견디시던 지부장님도 하얀 상복을 입은 모습이 눈물 나게 서러울 만큼 눈에 띄게 말라가셨죠. 그렇게 힘겹게 버텨주시다 43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 가시고 짧은 복식 기간 후에 다시 싸움의 현장으로 나오신 지부장님은 좀처럼 예전의 기력을 찾지 못하시더군요. 그런 몸으로 천막은커녕 깔판 한 장 깔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연행, 구속. 우리 모두는 이것이 쌍용차 동지들의 투쟁을 짓밟아버리려는 자본과 정권의 짜여진 각본임을 알기에 더욱 분노스럽습니다. 면회 간 유치장 유리 너머에서 지부장님의 구속으로 인해 조합원이 위축되고 투쟁의 기세가 약해질까봐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이구, 지부장님 이런 일에 기세가 떨어지고 위축될 동지들과 이제껏 싸워오셨어요? 지부장님이나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버텨주세요’ 라고.
정우 형님. 새벽녘에도 안주 한 아름 안고 들어와 잠을 깨우시며 술 한잔 하자던 그 모습으로, 힘내라고 어깨를 안아주시며 신청한 노래를 구수하게 불러주시던 그 모습으로, ‘자야~ 잘 있었나?’ 라고 그 살인미소를 날리시며 건강하게 나타나실 거죠? 좁고 누추하지만 우리에겐 어느 호화 주택보다도 웃음과 희망과 동지라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천막에서 하루 빨리 함께 하기를 빌어봅니다. 그 날을 당기는 것도 물론 밖에 있는 우리의 몫이라는 것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우 형님, 사랑합니다. 화이팅!
쌍용차 동지들 더 힘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