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허무했던 진실의 실마리. 며칠 전 밝혀진 회계조작의 대표적 물증은 다름 아닌 2008년도 회계 감사조서. 감사조서란 감사보고서에 기재된 수치가 어떤 근거에 의해 산출되었는지 밝혀주는 서류다. 수학 문제에 정답이 있다면 그 정답 풀이과정이 바로 감사조서다.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불가분의 존재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풀이과정과 정답이 서로 맞지도 않고 수치도 엉망이었으며 1천억이 넘는 유형자산 몇 개를 통으로 누락시키기도 했다. 회사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다보니 별별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작년 쌍용차 회사는 법원에 의해 2008년도 감사조서 제출을 명령받자 미루고 미루더니 결국 문서에 찍힌 숫자와 글씨를 절반 이상 압착해 찌그러뜨려 보냈다. 아무리 돋보기를 쓰고 봐도 글씨를 읽을 수 없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서는 ‘압착 문서’, ‘불가독문서’로 불렸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해고자들이 그 글씨 하나하나를 늘리고 펴서 마치 고대 희소문자 해석해내듯 해독한 결과가 며칠 전 회계조작 폭로 기자회견에 담긴 주 내용이 되었다.
만약 작년에 정상적인 조서만 받았다면? 얘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죽도록 굶지 않아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인수위 앞에서 벌벌 떨어가며 노숙하지 않아도, 그 높은 철탑에서 계절을 세 번이나 바꿔 맞이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그 감사조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회계조작 말만 나오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되는 금융감독원도 문서 제출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는데 그 이유가 참 가관이다. 그 조서 안에 내밀한 영업기밀이 담겨있다나 뭐라나. 영업기밀? 영업기밀은 무슨! 구리디 구린 회계조작 기밀이 담겨있겠지. 하긴 뻔히 알면서 묵인했으니 순순히 제출할 수 없겠지.
어제 쌍용차와 ‘허위’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던 안진회계법인이 반박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해서 그 내용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다지 쓸 만한 내용도 없어 보인다. 요약하면 법정에 제출한 자료 외 자신들 서랍 안에 더 자료가 있다는 얘기인데, 법정 제출 자료가 양파도 아니고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나.
사람 자를 때는 그렇게 신속 정확하게 덤벼들어 단 한 명의 오차도 없이 두들겨 패 내쫒더니 어이가 없다. 하긴 그러니 그 자료를 그렇게 차량 폐차시키듯 찌그러뜨려 제출했겠지. 이쯤 되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자료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이제 회사나 금융감독원이나 막판에 몰려 이판사판 같아 보이니 하는 말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반드시 그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들은 국가가 관리하던 법정 관리 중에 불법 기획된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폭도라는 누명까지 쓴 채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공장에서 쫓겨난 만큼 반드시 국가로부터 사과와 함께 응분의 배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대목이 쌍용차 국정조사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함께살자 희망지킴이’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모인 사람들로 우리는 그들이 소중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반드시 명예를 되찾아 떳떳하게 공장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함께하기로 마음을 모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 ‘쌍용차 해고노동자 H-20000 프로젝트’ 과정에서 비록 그들이 젊음을 바쳤던 공장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옛 기억을 살려 차를 조립하면서 느끼던 설렘과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4년 동안 차디찬 길바닥에서 생활하며 투쟁하던 그들이 세상에서 단 한 대뿐인 자동차를 만들어 세상에 선을 보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많은 희망지킴이들과 함께 오는 6월 7일 서울광장에 한데 모여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당당한 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그 차가운 가슴 속에 다시 따뜻한 희망을 품어가며 만든 차를 보고 싶다. 물론 이 글을 끝까지 보아주신 모든 예비 ‘희망지킴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