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뉴스민] |
대구 칠성시장 한복판에서 멘붕 사태가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절망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 2013 투쟁을 새롭게 준비하리라 결의를 다진 123회 세계 노동절 대회 말미에서 멘탈이 붕괴되었으니 오죽 가슴이 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계 노동절 대회를 마치고 반월당 네거리에서 시작한 행진 대오가 경북대병원 옆에 멈춰 칠곡경북대병원의 노동자 해고를 규탄하는 함성을 지를 때만 해도 누가 멘붕을 예상할 수 있었단 말인가. 다리를 지나 칠성시장으로 접어들 즈음 시장 모퉁이에서 행진 대오를 향해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욕을 해대는 노인네를 본 것이 멘붕의 전조였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행진대오에 박수를 보내던 시장 아주머니들이 있었고 행진 대오도 아주머니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좋았다. 그 기세로 칠성시장에서 마무리를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웬걸, 백현국 대구경북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마무리 발언을 하러 화물차에 올라가고, 이어진 박정희 친일파 발언이 쏟아지자 고함이 일었다. 행진 대오 앞에 앉았던 필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건설노동자 한 명이 일어나 백현국 대표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주변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지만 순간, 박정희 친일파라는 발언에 필이 꽂혀 역정을 내던 그 노동자는 진행자들에게 이끌려 화물차 뒤로 갔고 화물차 뒤에서 화물차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노동자들도 TK 이데올로기에 결박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출처: 뉴스민] |
예의 그 노동자는 발언을 하던 대표에게 물병을 집어 던졌고 화물차 앞으로 단상에 오르려고 했다. 더 이상 발언을 할 수 없었던 백 대표는 5․18재단 이사장과 면담 약속이 있다며 발언을 포기하고 화물차를 내려갔다. 그 사이 몇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더 일어나 삿대질을 해댔고 대오 옆으로 이끌려 나가던 건설노동자의 입에서 ‘빨갱이’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멘붕이었다. 세계 노동절 대회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시작은 장대하였으나 노동조합에 가입한지 얼마 안 되던 건설노동자의 ‘난동’으로 인하여 집회는 죽을 쑤고 말았다. 이길우 건설노조 대구경북본부장은 건설노조원들을 화물차 앞으로 불러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노조원들을 달래고 있었지만, 무너진 멘탈은 회복되지 않았다.
대오가 흩어지며 손님들이 대거 몰린다는 소식에 입이 귀에 걸린 가게로 가는 도중 ‘이러니 노예로 살 수 밖에 더 있나’, ‘건설만 그런가, 화물도 대다수 한나라당 찍었지 않냐, 지난 대선에’ 등등 노동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총파업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건설노조 입장에서도 멘붕이었을 이 사건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노조가 변혁의 중추가 아니라 조합주의에 빠져 생긴 결과라느니, 개인의 문제를 건설노조를 넘어 노조의 문제, 심지어는 민주노총 대구경북본부의 문제로 비화시키려는 발언 등 대구경북 진보진영이 일제히 멘붕에 빠져들 태세였다.
필자 또한 마무리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도 착잡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박정희의 망령에 빙의된 사람들이 이렇게 많고 또 그들이 다름 아닌 노동자라니, ‘아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총파업의 위력을 보여줄 건설노조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던 필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반월당에서 집회를 할 때에만 해도 건설노조가 있었기에 외견상으로나마 집회를 성황리에 치를 수 있었고, 또 다시 저렇게 흩어지면 노동자들이 얼마나 각자 현장에서 투쟁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터에 건설노동자의 난동은 필자의 그 의구심에 일격을 가하고 말았다.
통진당 사태가 전국적인 사안이었다면 이번 대구경북 사건은 지역적이면서 통진당 사태와 연동된 일이었다. 노동자들이 계급적인 주체로 서기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현실, 이 레알한 현실을 놔두고 변혁의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한 일이었던가. 노조를 자기의 이익을 지키고 관철시키는 상호부조단체 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지하는 과정, 그 과정을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우리의 운동 과정에 누락되어 있었구나’하는 반성 이전에 박정희와 빨갱이의 망령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빙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 충격이었고 멘붕의 원인이었다.
수습과 문제 해결은 나중 일이었다. 사회변혁세력 혹은 좌파가 나라를 통째로 세습하는 북조선왕조를 아무리 비판해도 박정희와 김일성이라는 일란성 쌍둥이 독재자들의 망령은 노동 현장에서 너무나 거셌고 위력적이었다.
칠성시장 한복판에서 불거진 노동의 스캔들을 수습하기에는 아직 여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이 건설노조 총파업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겠지만, 난동사건의 여파가 결코 작지는 않다. 당사자가 건설노조 이길우 본부장에게 사과했지만, 노조가 상호부조단체의 성격을 넘어 노동조합으로 발전하고,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고, 이것이 레알한 현실이다.
이 레알한 현실을 바꾸는 것이 사회 변화, 사회변혁을 입으로만 말하기에 앞서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이미 외부에 다 공개된 사건을 두고 주위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건설노조 무기한 총파업 결의에 박수를 보내며, 정말로 뼈를 깎는 반성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된다. 우회로를 찾아 갈팡질팡 하지 말아야 한다. 돌직구가 필요하다면 돌직구라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