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요구된 집행을 거부한 것인데, 그 행위가 ‘심적 갈등’을 일으킨다는 게 이유였다. 그들은 강제로 열어야 하는 집의 문 앞에서 어떤 심적 갈등을 느꼈을까?
시민을 돕는 일을 기본 임무로 가진 소방관이 시민들의 삶의 뿌리를 위협하는 은행을 돕는 것에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민생활의 편리를 돕는 것이 임무인 열쇠 수리공이 시민의 집을 강탈하도록 돕는 것에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다만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심적 갈등’이다. 열쇠수리공들의 선언은 널리 알려져 시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스페인 의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련법 개정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경제난 속에서도 이웃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스페인 국민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스페인 열쇠수리공과 소방관의 심적 갈등
2009년 “함께 살자”는 쌍용 노동자들의 외침을 외면한 채 정리해고만을 고집한 사측, 숫자놀음으로 한순간에 쌍용자동차를 부실기업으로 바꿔버린 회계법인들,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공장에서 나가라며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사람들, 헬기에서 최루액을 뿌려대던 경찰들, 주저앉은 노동자에게 달려들어 수없이 곤봉을 휘둘렀던 경찰 특공대원들에게는 ‘심적 갈등’이 없었을까? 사측의 비열한 회계조작과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그것들에 면죄부를 주었던 사회의 침묵은 쫓겨난 쌍용차 노동자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함께 떠밀었다.
어느 누구도 ‘심적 갈등’을 이유로 그 폭력적인 임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 폭력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그 폭력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인간이라면 가져 마땅한 ‘인간의 마음’을 잃게 된 걸까?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의 ‘심적 갈등’을 스스로 무시하게 된 걸까?
심적 갈등을 느끼지 않은 쌍용차 가해자들
정리해고 후 3년 동안 22명의 죽음이 발생했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은 공장 밖에서 3년을 버텼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2012년 4월 5일 대한문에 22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 설치 과정에 함께하며 힘을 모아주는 시민도 많았지만, 지나가던 이들은 쌍용차 문제는 예전에 모두 해결된 거 아니냐며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죽긴 왜 죽어, 니들만 힘드냐? 고생들을 안 해봐서... 쯧쯧”하며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방송이나 신문이 사태의 전말에 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니 시민들이 쌍용차 관련 소식을 알 수 없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 별 관심이 없었던 두 아이의 평범한 엄마인 나도 ‘희망버스’나 ‘와락’이 아니었으면 쌍용차 문제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찾은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의 첫 말은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였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도움을 주어야 할 곳에 조금 더 일찍 오지 못한 것에 대한 ‘심적 갈등’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대한문에 첫 발걸음을 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죄송합니다”를 되풀이하는 것도 비슷한 심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한사람의 발걸음으로 시작된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심리치유를 위한 곳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쉼터이기도 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하게 하는 소통의 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한사람의 마음이 세상에 나오면서, 그 파장이 더욱 멀리, 깊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대한문을 찾다
인권 운동가 박래군 씨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사회적 관심을 확대해 나가며 물질적 지원까지 할 수 있는 ‘희망지킴이’를 제안했다. 문화연대의 활동가 신유아, 민주노총 소속의 박병우, 참세상의 이종회 씨 등이 동참하면서 이 계획은 구체화됐고, 공지영 작가의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다룬 ‘의자놀이’가 출판됐다.
관심은 뜨거웠다. 분향소를 향하는 발걸음도 많아지고 국정조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향소에는 ‘의자놀이’를 구입하려고 일부러 오시는 분들이 이어졌다. 낯익은 연예인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다양한 분들이었다. 책값을 더 많이 내려고 하는 등 이상한 구매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심적 갈등’을 느끼는 분들의 연대에 힘입어 ‘희망지킴이’에 240여 명이 뜻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한숨과 탄식의 분향소에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한 콘서트와 기부물품 바자회를 열 수 있었다. 이를테면, 수많은 사람들의 ‘심적 갈등’이 한숨과 탄식뿐인 곳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 넣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심적 갈등’이 모여 분향소에 따뜻한 숨결이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면서 41일 동안 단식했던 김정우 지부장의 뒤를 이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평택 송전탑농성이 128일을 지나고 있다. 대선을 치루며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듯 보였던 쌍용차 국정조사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은 깊고 고통스럽다. 응원을 보내던 이들의 허무함과 낙담도 작지 않다. 자신의 아픔으로 타인의 아픔을 볼 줄 아는 이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나의 행복으로 타인의 아픔을 가늠할 수 있는 이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그렇게 연대의 폭은 확대되고 깊어진다.
3월 29일에 저녁에는 조계사에서 ‘시와 음악이 있는 콘서트’가 열린다. 심보선 시인과 최승호 피디의 이야기와 이한철, 허클베리핀의 음악이 해고자들과 시민들을 만난다. 시민들의 손길이 하나하나 모여 2만개의 자동차 부품으로 해고자들이 자동차를 만다는 ‘H-20000 프로젝트’도 추진된다.
2만 명의 시민이 2만 개의 자동차부품으로 만드는 자동차
저마다 다른 방식의 연대를 하며 노동자들의 옆을 지키고 있다. 관심 있게 지켜봐주는 시선, 응원을 전하는 말 한마디, 적극적인 참여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하고 귀한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심적 갈등’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심적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강제 행위를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동료들에게 쇠파이프를 들었던 쌍용자동차 공장 안의 ‘산 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외쳐야 한다. 폭력진압에 복종했던 특공대원들에게 외쳐야 한다. 함께 사는 대신 정리해고를 선택한 쌍용자동차 이유일 사장에게 외쳐야 한다.
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외치고 싶다. “우리의 ‘심적 갈등’을 외면하지 말고 당당히 대면하자!”고. 그래서 “노동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자!”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 ‘희망지킴이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