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결론 정해 놓고 구성된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기획연재](2) 박근혜 시대 연금개혁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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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9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현재까지 기초연금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또한 공약 후퇴 이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행복연금 방안 역시 국민연금 가입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민간연금 강화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참세상>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연금 방안과 한국의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적 조명, 신자유주의 연금개혁 논리에 대한 비판과 향후 대안을 모색해 본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또다시 연금개혁이 이슈로 등장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수위를 통해 연금개혁안을 결론으로 내놓고, 이를 정치적으로 다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에 구성된 국민행복위원회가 그 핵심이다. 여기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연금개혁안 자체보다는 연금정치 측면에서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먼저 연금정치의 원론을 상기해 보자. 시민들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또 조세를 통해 기초노령연금 재원을 부담한다. 즉, 기여자이자 나이가 들면 수급자가 된다. 나아가 이미 400조를 넘어선 국민연금기금이라는 사회적 기금의 주인이기도 하다. 즉, 연금제도의 원천이자 존재 근거는 바로 시민이다.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연금을 높이네 낮추네 하는 이야기들은 결국 시민들의 노후에 관한 얘기이다. 연금개혁이 시민의 의사와 동떨어져서,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연금개혁을 돌이켜보면 빈 들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느낌이 든다. 한국 연금정치는 민주주의의 황무지였다. 우리나라 연금개혁에 단 한 번이라도 ‘민의’라는 것이 제대로 반영된 적이 있었는가? 아니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자 하는 사회적, 정치적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가? 단 한 번도 없다.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70%(40년 보험료 납부시 받는 연금액이 평생 평균 소득의 70%임을 의미한다)에서 60%로, 그리고 다시 2007년 말 40%로 낮출 때에도 소위 사회적 합의기구도, 국회도 결국에는 정부의 의도를 그대로 쫓아갈 뿐이었다. 첫 번째 급여삭감에 관해서는 전문가 내부 논의만 있었고 개혁 사실조차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두 번째 국민연금 급여 삭감을 둘러싸고서는 형식적으로는 사회적 합의기구와, 국회 차원의 논의도 있었지만 실제 개혁 과정을 주도한 것은 관료들이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연금논의는 정부의 입법 시도로 중간에 중단되었고, 국회 논의는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정당들은 국민들의 대표체로서 합의에 나서기보다 정부-여당으로, 또 야당으로 연금합의에 나섰다. 민주화 이후 연금정치의 절차는 보완되었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노동이나 시민운동의 정책 투입 통로는 정당이 될 수도, 사회적 합의기구가 될 수도 없었다. 직선제 쟁취라는 수준의 민주화로는 한국의 연금개혁 정치에서는 사회적 공론화와 숙의가 수반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없었다.

일방적이고 행정부 중심적인 연금정치의 결과물은 단순히 공적 부문의 축소에 그치지 않았다. 노인빈곤 문제가 극심한 가운데 2007년에 나온 어정쩡한 해법이 지금 논란인 기초노령연금이다. 노인 30%를 제외하는 등 대상범위가 애매한 것은 물론, 기초노령연금 급여액은 애초 약속한 스케쥴대로 인상되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 도입 당시 이 제도를 점차 축소시켜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 미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한 보충연금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반면 노동계는 기초노령연금을 점차 확대되기로 예정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이해의 간극은 그만큼 제도 개혁 과정에서의 소통과 논의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의 급여 지급을 약속한 바 있다. 대선 승리 이후에는 인수위에서 국민행복연금이라는 이름으로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약 14-20만 원의 급여, 소득 상위 30% 노인에게는 4-10만원 사이의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기초노령연금제도를 소득과 국민연금 급여를 고려하여 급여액을 조정하는 연금제도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각 소득 구간별 연금급여액은 국민연금가입 여부와 가입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 기준을 섞어 한층 더 복잡해져서 이해하기 어려워졌고, 급여 보장의 목적 역시 불분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노령연금을 인수위 방안대로 밀어붙이기 위한 행보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예상되는 특징 중 하나인 정치적 퇴행, 이 연금정치에서도 조기에 나타나고 있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주요 사회단체 대표들과 세대대표들을 포함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인수위가 제시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위원회로 작동할 예정이다(물론 박근혜 정부도 2000년대 정권교체의 시기에 등장한 제도화된 절차와 기구들을 폐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제도적 유산이다. 그 예가 연금개혁 과정에 활용되는 사회적 합의기구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 부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사회적 합의 노력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합의체를 형성하는 기만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개혁 방향도 아닌, 꽤 구체적인 개혁안을 먼저 결정해 놓고 사회적 동의를, 그것도 대표성이 불분명한 채로 구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형성하기 전에 결론을 정해놓고 이에 대한 승인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을 준비하는 데 준비단계 원칙 중 하나가 제도 개혁안을 마련하고 사후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기 어렵기에, 개혁안을 형성하는 단계에서부터, 혹은 적어도 여러 개혁안의 내용과 장단점에 대한 분석단계에서부터 ‘참여’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신뢰할만한 정보를 행위자들이 공유한 상황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대안들의 재정 전망과 효과, 소득재분배 효과 등에 대한 분석 결과에 관한 자료들을 철저하게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소위 국민행복 연금에 관한 내용으로 공개된 것은 방안에 대한 표 하나가 전부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제도 목표와 도입 배경, 상세한 재정전망과 소득재분배 효과 등에 대한 전망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연금개혁에 관한 결론은 이미 선언해 버렸고, 그 결론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이제 몇몇 사람들을 모아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갖추겠다는 것은 기만적이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의 연금개혁 시도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활용은 2000년대 중반과 유사하지만 결론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위원회 내부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뚜렷한 후퇴이다.

게다가 연금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이미 구성하여 2013년 상반기에 연금제도의 장단기적 발전 방향을 설정하여 정부보고, 국회 보고 및 입법 추진을 하기로 한 상황에서, 즉 연금개혁 논의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새로 구성하여 두 개의 트랙으로 공식적인 위원회의 연금개혁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연금개혁 논의기구의 일관성은 개혁 논의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일례로 스웨덴은 1994년에 우파정권에서 좌파정권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에 설치된 기획단(working group)의 구성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관성 없이 개혁안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공유하기 어렵다.

[출처: 민주노총]

어쨌든 박근혜 정부의 연금정치에 사회적 합의기구는 정치적 유용성(?)을 갖는다. 정부의 일방적인 연금개혁 추진은 연금개혁의 정치적 책임을 모두 떠안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연금개혁에서 사회적 협의를 활용하는 것은 책임소재를 분산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의 핵심 기능이 될 수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게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정권 초 인사문제에서 드러난 야당과의 조율능력 부재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회 논의 능력을 폄하시킬 수 있다. 요컨대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정당, 국민연금제도발전회를 모두 무력화시키는 형태로 작동한다.

사회적 합의의 형식에는 연금개혁 과정에서 야당과 노동, 시민사회세력들을 교묘하게 배제시키는 여러 장치가 존재한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 선택한 과반합의제도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그만큼의 이해관계가 형성된 상황이다. 정부 여당의 주도 하에 일방적으로 연금개혁을 밀어붙이기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모르는 사이에 빨리 개혁안을 처리하는 것이 아마 이를 돌파할 방법이리라.

지금까지의 조짐은 박근혜 정부의 연금개혁 정치가 민주화 시기의 형식은 갖추되, 그 실제는 시작부터 일방적이며 독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이 취약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정권 초에 이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로 개혁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 답은 ‘민의’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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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합의가 배제된 게 큰 문제인가요? 문제는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안되서인건가요? 그런데 그런게 대체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요?
    김영삼 때부터 시작된 사회적 합의란 원래 결론을 정해놓고 책임 분산하려고 만든 것 아닌가요?어디 연금 뿐이겠습니까? 노사정, 최저임금, 최저생활비 다 위원회란 위원회는 사실상 그런거 아닌가? 한줄로 스웨덴은 안그렇다고 하셨는데, 좀 뜬금없다는 생각듭니다.
    박근혜가 계속 정치적 퇴행이라 하시는데, 노무현 정권에 비해서 '비민주적'인 것이 무엇이 있는 지 잘 모르겠군요. 노무현도 박근혜도 '형식적 민주주의'는 지켰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걸 알겠는데,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구조가 안된게 문제다 라는 것에는 선뜻 동의되지가...
    그리고, 관료 주도라 계속 표현하시는 데, 그것도 좀 그래요. 사실 요즘 관료가 따로 있습니까? 사회복지 학계랑 사회복지 관료랑 구분이 잘 안되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