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차례로 세상을 떠난 한진중공업 최강서, 현대자동차 이운남, 민권연대 최경남, 한국외대지부 이호일과 이기연의 가족들에게 이번 겨울은 한파 대신 절망에 몸이 얼어붙고 하늘에서 눈이 아니라 눈물이 내리는 시절일 것입니다.
4년이 다 되도록 아버지를 화마에 숨지게 한 죄인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한 채, 옥살이 하고 있는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과 역시 동료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혀있는 김주환, 김성환, 김창수, 천주석은 감옥에서 맞는 네 번째 겨울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요?
경상북도 청도와 밀양에서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겠다고 매일아침 공사장 바리케이드 앞으로 출근하는 할머님들은 이 겨울이 얼마나 야속하고 지겨울까요? 그 와중에도 밀양 주민들은 버스 한 대를 대절해서 부산 한진중공업, 평택 쌍용자동차,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 아산 유성기업을 방문하여 마음을 전하는 응원을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런 마음들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지난주 제주 강정마을에 있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습니다. 공사가 강행되듯, 누가 들어도 어색하고 이상한 이름인 ‘민군복합 관관미항’을 짓겠다는 감언이설에 지난 6년 동안 단 한 번도 속지 않고 한결같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날도 해군기지 공사를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 1월 8일,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 전국대책회의와 강정마을회가 부대의견의 철저한 검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강정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던 지난 10일,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김광진 의원과 장하나 의원도 강정 주민들과 함께하겠다며 아침 일찍 강정을 찾았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은 경찰은 두 의원들의 눈치를 보며 해군기지 공사를 위한 경찰의 고착 작전을 보류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오후 3시경, 갑자기 경찰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더니 평소의 두 배가 넘는 경찰병력이 공사장 정문과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공사장 정문에는 장하나 의원과 천주교 사제들이 정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경을 포함한 2개 중대의 경찰병력이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장하나 의원과 천주교 사제들을 둘러쌌습니다. 그리고는 서귀포 경찰서 경비과장 구슬환이라고 밝힌 사람이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업무방해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즉시 이동하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장하나 의원이 경비과장에게 매우 정중하게 대화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과장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20여 분 동안 똑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장하나 의원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부대조건에 대한 설명을 하는 순간에도 경비과장은 계속 방송으로 해산 명령만 반복했습니다. 경찰들은 고착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지킴이들과 주민들을 나가지 못하게 막았고 밀치고 나가려는 사람들은 힘으로 막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비과장은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으로 이동하더니 그 자리에서 주민들과 지킴이들을 고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김광진 의원이 있었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여야가 공사 중단을 합의했고 검증 없이는 예산 집행을 할 수 없으므로 지금 진행되는 공사는 예산도 없이 진행되는 불법 공사라고 중단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지킴이들과 주민들만 힘으로 밀어냈습니다.
급기야는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김광진 의원에게 몰려와서는 신변보호를 위해서라며 김광진 의원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사복경찰들의 김광진 의원의 팔짱을 끼고 끌고 갔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두 명의 경찰이 더 달라붙어 김광진 의원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공사장에서 레미콘 차량을 포함한 공사차량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시 세대의 레미콘 차량과 포클레인을 포함한 십수 대의 공사차량이 들어가고 철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김광진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임을 밝히고 문을 열라고 했지만 그 이후 1시간동안 그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여기저기 연락을 하는 듯 했고 잠시 후 용역직원들이 나와 김광진 의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해군기지 사업단에 들어가고 장하나 의원은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과 함께 생명평화 백배를 진행했습니다. 해군기지 사업단장이 김광진 의원에게 케이슨 제작을 위해 레미콘 차량이 필요해서 어쩔 수가 없다는 말만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두 의원은 해가 지고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강정마을을 떠났습니다. 하루 보통 5~6차례 드나들던 공사차량들이 그날은 딱 한번만 드나들었으니 공사를 어느 정도 늦춘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했고 강정을 방문해 준 두 의원들이 참 고맙다는 말을 나누며 저녁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경찰이 또 들이닥쳤습니다. 고작 레미콘 3대를 집어넣으려고 밥상을 뒤엎으며 지킴이들을 고착 시켰습니다. 그날 밤은 낮에 하지 못한 공사를 만회하려는 듯 새벽에도 수시로 공사차량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지킴이들은 밀려나고 끌려나오고 고착을 당했습니다. 제 1야당의 현역 국회의원들도 이렇게 무시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데 지킴이들과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이 되시지요.
▲ 12월 24일 오전,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평화활동가들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과 평화를 기원하며 백배(百拜)를 하고 있다. [출처: 지금여기 ⓒ강한 기자] |
우리는 지난 연말 국회 앞에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하루를 꿈꾸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한해의 마지막 날에도 우리는 눈 덮인 국회 정문 앞 아스팔트 위에서 작은 방석 하나 깔고 누구를 향한 것이지 모를 수만 배의 절을 올렸습니다. 오로지 2013년 해군기지 예산이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바람을 뒤로 하고 2009억 원 해군기지 예산은 진통이 있었지만 여야 합의로 통과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헌정사상 최초로 해를 넘겨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까지 70일간의 검증기간과 그 검증기간 동안의 사실상 공사 중단이라는 부대조건을 여당과 합의한 것은 그래도 우리에게 너무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매일 24시간 쉬지 않고 강행하는 공사를 막기 위해 맨몸으로 레미콘을 막아서는 평화지킴이들과 군과 경찰만 보면 그동안 당하고 산 세월이 분노로 폭발하는 강정주민들이, 단 하루라도 용역직원들의 불쾌한 시선이나 물세례를 받지 않고 경찰의 불법적인 고착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주 강정해변에 과연 해군기지를 건설하거나 15만 톤급 크루즈 2대가 동시에 들어올 수 있는 항구가 건설될 수 있는가를 제대로 검증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70일이라는 기간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 동안 다른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턱없는 기대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새해가 시작되어도 제주 강정마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기획재정부에서도 검증기간 동안의 공사 중단을 전제로 예산 집행 계획을 편성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강정에서 해군기지 공사는 단 하루도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11월말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새누리당이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야당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을 때에도 국회 앞에 모였었습니다. 문정현·문규현 형제 신부와 강동균 회장 등 강정과 서울에서 스물다섯 명이 삭발을 하며 새누리당의 날치기 예산 처리에 항의했습니다. 곡기를 끊고 천막하나 없이 국회 앞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노 사제의 머리를 깎이게 하고 풍찬노숙을 말리지 못하니 우리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대선 이후 민주당도 힘든 시기를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선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원내대표 선출과 비대위원장 추대에도 불협화음이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 박기춘 원내대표는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방문하였고 민주당내 노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에 대한 일관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제주 해군기지 검증기간 공사 중단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발견한 유일한 희망의 불빛처럼 느껴집니다.
대선에서 아쉽게 패배했지만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의 공약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민주당이 대선을 통해 국민들과 한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을 상대로 최대한의 노력을 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민주당이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은 용산참사 유족들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셔야 합니다.
무리하게 진행되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즉각 중단시키고 최초의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가를 세심하게 살펴볼 일입니다. 엄격한 절차를 거친 철저한 검증은 물론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과 강정의 적합성 등도 다시 점검해야합니다. 약속한 70일에서 단 하루도 공사가 중단된 적이 없으며 보름동안 과연 누가 검증을 할 것인지, 보고는 누가 받을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은 채, 시간만 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왼쪽)과 문정현 신부가 29일 오전 국회 앞에서 2013년 제주 해군기지 예산안 통과를 비판하며 삭발하고 있다. [출처: 지금여기 ⓒ강한 기자] |
지난 10일 김광진 의원과 장하나 의원이 강정에 와서 함께 공사장 정문에 서 있을 때, 민주당을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를 떠나 든든하고 고마웠습니다. 연초에도 정청래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이 강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공사저지를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서 주신 것은 김광진 의원과 장하나 의원이 처음이었습니다.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정말 대선이후 고립감과 절망감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날 두 의원님의 연대와 동참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혹시 국회의원이 왜 현장에 가서 시위를 하느냐고 생각하시는 의원님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강정에서 진행되는 해군기지 공사는 국회의 공사 중단 합의를 명백하게 무시하며 진행되는 공사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런 불법·탈법 공사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막아서고 바로잡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님들께 강정 방문하시어 단 하루라도 이 불법·탈법 공사를 막아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의원님들께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셔야, 지금 강행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가 여야의 합의를 깬 일방적인 공사이며, 정부 예산이 투여되는 국책사업이 불법·탈법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국민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국회의원은 의회에서 의정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대통령 선거전 자신들 스스로 약속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약속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이가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떠들고 있는 상황에서 결연한 의지를 확인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어제 강정주민 열 분이 상경하여 방위사업청의 인수위 업무보고 시간에 맞추어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 앞을 찾았습니다. 기자회견을 하고 실무책임자 면담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4시간이 지나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던 인수위는 시간이 없어서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답변만 보냈습니다. 정말 서럽고 서운한 마음에 앉아 있을 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기 민주당 지도부의 의원들께서 강정을 방문해 주신다면 우리 주민들과 지킴이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공권력에 의해 늘 무기력하게 당하고 밀려나야만 했던 주민들과 지킴이들에게 단 하루라도 공사가 중단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다시 일어설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정을 방문해 주실 시기는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매일 2명씩의 의원들께서 릴레이로 방문해 주셔도 좋고 하루 날을 정해 함께 오시는 방법도 좋습니다. 강정 현장에서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17일(목)을 2차 집중의 날로 정하고 제주시민들을 비롯한 전국의 행동하는 양심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주 강정을 방문해 주세요. 단 하루라도 공사를 중단시켜 주십시오. 해군기지 공사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지닌 채 강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쌍용·강정·용산·탈핵의 연대인 SKYN_ACT와 함께살자 농성촌은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이 농성을 이어갈 것입니다. 생명평화대행진으로 전국을 돌며 쫓겨나고 아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는 다짐했습니다. 서로의 상처가 맞닿아 있고, 서로의 아픔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함께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길에서 민주당이 함께 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빠른 시기 강정에서 뵐 것을 희망하며 이만 줄입니다.
2013년 1월 14일
함께살자 농성촌 사무국장,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