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16일(일) 중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이번 중의원 선거의 핵심 쟁점은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 탈 원전, 외교, 경기와 고용 등이다. 동시에 세계적인 불황과 지난해 대지진과 최악의 원전 사고 등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우경화와 파시즘 대두가 일부에서 우려되고 있다.
▲ 지난 7월 16일, 일본에서 17만 명의 시민들은 “사요나라(안녕) 원전, 10만 집회”에 참여해 원전에 반대하는 정치적 전환을 요구했다. [출처: 일본 레이버넷(http://www.labornetjp.org/)] |
지난 2009년 8월에 실시된 중의원 선거는, 반세기 이상 계속된 보수 지향의 자유민주당 (이하 자민당)이 정권을 잃고 비교적 자유 지향의 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큰 기대 속에 출범한 민주당 정부였지만 실정이 이어졌다. 민주당의 공약을 되돌아보면, 민주당은 고교 무상화, 어린이 수당 지급, 세출 삭감 등 공약 일부를 실현했지만, 미군기지 문제, 공공사업 재검토,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비정규와 파견노동자 보호 등과 같은 정책은 결과적으로 대부분 실현하지 못했다. 특히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실패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사임했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대응 실패로 간 나오토 전 총리도 사임했으며, 소비세 증세 강행 때문에 의회의 대립이 격화되고 당이 분열하며 결국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며 이에 책임을 지게 됐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속된 보수 정권의 폐해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이에 대한 실패는 일본의 정치를 유동화시키고 있다. 각 언론사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역 유력자나 기득권층의 조직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지만, 사실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다른 당보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으면 의석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실망하고 사회민주당 (사민당)과 공산당 등 기존 좌파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 많은 국민은 개혁을 외치는 “제3극”이라는 극우 세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제3극”은 최근 “일본 유신회”를 창당, 현재 14% 정도의 지지율로 자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민주당은 약 10% 정도의 지지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진보 세력을 중심으로 탈 원전을 제시하는 중도 좌파 “일본의 미래”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지만, 지지율은 침체하고 있다.
우경화와 재무장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일본을 되찾는다”는 슬로건 아래, 주로 △지진, △경제 △교육 △외교 △민생 등의 분야에서 약화된 일본을 세우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공약이 노리는 부분은 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을 제시함으로써 원전 사고의 문제를 숨기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가속화하고, 교육에 대한 교원노동조합의 영향을 배제하며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육 이념에 복귀하는 것이다. 또한 외교는 일미 동맹 강화, 군사력에 의한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 해결, 민생 분야에서는 재해나 범죄에 대한 대응을 구실로 한 치안강화를 추구한다. 자민당은 그간 줄기차게 당론으로 헌법 개정을 주장해 왔지만, 최근 발표된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은 국방군의 군사력 강화, 기본적 인권의 개념에서 “천부 인권”을 제거하는 등 한마디로 백년 이상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내용이다.
약진이 예상되는 극우 세력의 “일본 유신회”의 공약은 자민당 이상으로 수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애초 “유신의회” 대표로 오사카 시장 교하 토오루는 탈 원전을 내걸었지만,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인사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가 “일본 유신회” 대표에 취임하며 그의 핵무장론과 모순되는 탈원전 공약은 실종됐다. “일본 유신회”는 지방 분권에 의한 통치 체제 개혁, 재정 개혁, 경쟁력 강화, 자주 헌법 제정, 군사력 강화 등을 제시하며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시장 원리주의, 경쟁 시스템의 도입, 정치적으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독재, 외교적으로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무력 외교를 추진할 예정이다.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자민당과 일본 유신회의 연립 정부 구성 가능성은 낮지만, 이 두 극우 세력은 중의원 선거 후 정책적 협조를 통해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 개정이나 재무장은 내년 여름에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과 일본 유신회가 다수 의석을 확보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즉각 극우 노선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고, 양 세력은 먼저 중의원 선거에서 충분한 의석을 확보한 후, 포퓰리즘적 정책을 전개해, 참의원선거에서의 승리를 목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노동자민중에게 극우 세력의 집권은 재난 그 자체일 것이다. 극우 세력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를 표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한미 FTA보다 훨씬 강력한 시장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블록에 대한 종속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노동자민중은 무한 경쟁과 초국적 기업에 의한 수탈의 대상이 된다. 또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는 외교로의 전환으로 중국과 한국, 북한, 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갈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자민당과 일본 유신회의 내부에서는 징병제 실시도 검토되고 있다. 백 년 전 “메이지 유신”을 거쳐 “부국 강병”을 슬로건으로, 청일 전쟁, 러일 전쟁 그리고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돌진한 역사 재현의 악몽을 보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탈 원전 확산
이러한 우경화 흐름 한편에서는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을 통해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원전 폐지의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원전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다. 자민당과 일본 유신회도 적극적으로 원전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즉 “원전은 위험하다. 그래서 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원전은 위험하지만 당장은 원전 가동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원전 정책의 거짓말은 후쿠시마 사고로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리고 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시민이 자연 발생적으로 매주 금요일, 총리 관저 앞이나 국회 주변, 또는 각 지역에서 시위를 계속했고, 1년 이상 경제산업성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이만큼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일본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며, 많은 정당에 “탈 원전”의 공약을 강요한 정치적 압력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탈 원전 흐름에는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피난 생활을 하는 후쿠시마 현민을 중심으로 꾸준히 핵 폐기를 호소해 온 사민당과 공산당 등 진보 세력, 녹색 가치, 생명, 환경을 중시하는 시민단체, 심지어 일부 진보 보수나 민족주의 단체도 참가하고 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탈당파가 기존의 탈 원전 세력을 끌어 들여 “일본의 미래”라는 정당을 창당하며 획득 의석이 주목 받고 있다. “일본의 미래”를 비롯한 탈 원전 세력의 정치적 지향성은 다양하고 쉽게 통합할 수 없지만, 극우 세력이 강한 국가와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반면, 탈 원전 세력은 서민 생활과 인간의 안전 보장을 중시하는 방향의 차이를 지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탈 원전”이라는 구호를 내건 세력은 많지만, 그 진정성은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누구나 받아들이는 “탈 원전 후” 사회의 이미지는 막연하다. 대체에너지는 어떻게 하는지, 미사용 핵연료와 사용 후 핵연료, 보유한 플루토늄의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폐로 절차 및 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미국의 핵에너지 전략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등 탈 원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은 결코 쉽지 않다.
한편, “일본의 미래” 대표 가다 유키코 시가현 지사는 과거에 징병제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한 바 있으며, 주류 민주당 탈당파의 중심에는 노련한 보수 포퓰리즘 정치가인 오자와 이치로가 있다. 국회 주변에 모이는 탈 원전 시위 대오 중에는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배타적인 주장을 하는 그룹도 있다. 다양한 정치적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탈 원전에 동참하고 다른 정치적 주장이 한데 공존하고 있다는 점은 탈 원전 담론의 국민적인 확산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시민운동의 탄생을 가리키지만, 이들 세력 사이의 소통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많은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이 탈 원전에 공감하고 있지만, 유력한 지지 단체가 없는 “일본의 미래”는 탈 원전을 원하는 사람의 수를 반영할 만큼 많은 의석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우선 일본 최대 노총인 랜고(연합)는 탈 원전의 방향성을 내세우지만 집행부를 장악한 원전 추진파 전국전력산업노조총연합(전력총련)의 반대로 인해 원전 정책에 대해 고용 보장을 빌미로 오히려 원전의 현상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80%의 노동자, 시민이 원전 폐지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현실 정치에서의 의석 획득에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세기 이상 지속 일본의 좌파 정당 간의 갈등, 시민사회를 이끄는 구심력 부재도 작용하고 있다. 한 목소리로 탈 원전의 슬로건은 외치지만, 탈 원전을 실현하기 위한 공통의 합의와 전략은 없는 상태다.
우울한 일본의 진로
앞서 언급했듯이, 극우 세력이 집권해도, 내년의 참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일본의 우경화가 일사천리로 진전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침체, 파산 상태의 정부 재정,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고립, 증세와 고용 불안 등 일본에 밝은 재료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의 위기, 미국의 재정 절벽, 중국 경제의 감속 등 세계 전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권자의 대부분이 기대하는 경기 회복에 특효약은 없다. 적어도 많은 유권자들은 기존 체제의 유지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며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자유주의 방향으로의 변화를 선택했지만, 자유주의의 변화는 실패했다. 그 성급함이 극우 세력이 표방하는 경쟁력 강화와 국가 기능 강화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 경제의 전반적 위기 하에서 국제적 긴장을 높이는 것은 경기 회복의 도움이 되지 않고, 국가적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헛된 구호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생명의 가치, 공존과 연대의 중요성을 배웠다. 이 귀중한 교훈이 얼마나 이번 선거 결과에 반영되는지, 국회를 압박해온 일본의 시민 사회의 힘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