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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선택은

[탈핵상상](6) 욕망을 위해 파멸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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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선택은? 전기가 모자란다면서 심야전기니 뭐니 전기소비를 부추기고, 강물이 살아야 한다면서 콘크리트를 부어넣어 강물의 흐름을 막아 물을 썩게 만들고, 식량이 모자란다면서 자국의 농업을 죽이는 시대입니다. '청아하고 맑은 새소리 들으며 나무그늘에서 여울물에 발을 담그는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그곳에 무엇을 지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역설이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일본의 핵사고가 발생한 후, 이런저런 자리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꽤 많은 사람들과 "한국에서 핵발전소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냐?"는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큰 사고를 경험했으니 많은 분들이 핵의 위험성에도 동의하고 재생에너지의 확산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핵을 없앨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조금 다른 입장이 많았습니다. 그중 회의적인 사람들이 내어 놓는 말 중에 "사람들은 욕망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한다. 현대 산업사회가 주는 풍요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망하거나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랑 다른 생각이긴 했지만, 반발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 혹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마지막 원자로가 멈춘 날부터 이틀 동안 전국의 1035명을 상대로 전화를 이용한 무작위 여론조사를 해 8일 발표한 결과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원전이 모두 멈춘 뒤 올 여름 전력이 부족해 전력사용이 제한된다면 참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7명이 넘는 74%가 "참을 수 있다"고 답했다.일본 정부의 원전을 재가동하겠다는 입장도 여론과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 검사를 끝낸 원전의 재가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3%가 "반대"라고 답해 "찬성(31%)"보다 배 이상 많았다. - 프레시안 5월 9일 기사인용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 "일본 사람들이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추게 만들고,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기보다는 불편을 감수하겠다"고 하는 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번쩍하고 환한 불빛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아! 망하고 죽을지언정 풍요를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결국 재앙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하는 가벼운 말일 뿐이구나. 실제 당사자들이 느끼는 것은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을 경험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다시 핵 발전을 가동하여 얻을 수 있는 편안함과 풍요보다, 조금 불편하고 힘들지만 안전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후쿠시마의 사고가 가져다준 끔찍함과 두려움은 우리가 이야기로만 막연히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실제 그들에게 닥칠 미래의 상황은 그만큼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그들의 미래입니다. 체르노빌이 그들의 미래입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이미 과거의 경험이 있었음에도 핵에 대해 깨닫지 못한 우매함이 있습니다. 67년 전에 그들이 직접 경험한 핵의 공포를 이제야 다시 느끼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일본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은 한편 눈물겹지만, 한편 미련스러운 이야기들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욕망을 위해서는 목숨을 버릴 것이다!"라는 말은 또 얼마나 가벼운 말인가? 이웃의 재앙을 통해 배우는 바 하나 없이 그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자는 이야기가 득세를 하는 시대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원전 르네상스니 뭐니 하는 가벼운 입놀림'이 아닌, 보다 '꼼꼼한 평가와 한 걸음 먼저 내딛기를 주저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얕은 물을 건너고 있다면, 보이지는 않지만 물 밑에 징검다리가 있다고 가정하고 물을 건너도 괜찮다. 실제로는 돌 징검다리가 없다고 해도 얕은 물에서는 건너다 익사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물이 깊고 물살이 빠른 경우라면, 그런 돌 징검다리가 확실한 것이 아니라면, 아예 건너지 말아야 한다" -웬델 베리

핵폐기물에 대한 처리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핵발전을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는 웬델베리의 이야기를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넘치는 풍요에 대한 욕망이 아니어도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풍요와 성장, 욕망의 끝이 후쿠시마와 같은 절망이라면, 환대와 나눔을 소망하며 만들어내는 가난하지만 절제할 줄 아는 세상에 미래와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인용한 그림은 벡신스키의 작품입니다. 벡신스키1984_3a[2]라고 쓰여졌던데, 이 작가의 작품에는 제목이 없고 제작연도와 일련번호만 있다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포옹을 놓지 않는 연인, 흔히 이 작품을 '폼페이 화산의 화석'으로 오해한다고 합니다. 욕망의 도시 폼페이의 몰락, 그 순간의 포옹이라는 독자들의 상상력이 발휘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