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수가 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쌀도 똑 떨어졌다. 궁핍을 떨쳐내고 당당한 백수 생활을 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실업급여. 전 직장에서 이직, 상실신고를 했다는 연락을 받기가 무섭게 고용지원센터를 향했다. 고용센터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백수 인증이나 마찬가지건만, 찌질한 백수처럼은 보이기 싫어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비비크림까지 챙겨 발랐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선 먼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지(이직의 원인이 근로자 아닌 고용주에게 있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수급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해당 창구에 가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 내 앞에 대기자가 다섯 명이 있었다. 조금 걸리겠다 싶어 멍 때리고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의 어깨 너머로 ‘심사관’의 딱딱한 음성이 들려왔다.
“실업급여라고 하는 건 하자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겁니다”
“수급자격이 안 됩니다.” 내 앞에 있던 중년의 여성은 벌써 여러 풀꺾인 목소리로 통사정했다. “제가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게 아니고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을 다녔었는데… 회사에도 이야기를 했고요…” 그녀는 이런저런 사정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직원 남자는 필요한 답을 이미 몇 차례의 질문을 통해 들었는지 분명히 선을 긋는다. “실업급여라고 하는 건 하자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겁니다”라고. “질병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경우는 다른 데도 다닐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에게는 실업급여를 지급할 수 없습니다.”
“이걸 안 받으면 제가 생활이 곤란해요.”
“생활 때문에 그러신 거라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야죠. 아무튼 업무수행이 곤란하므로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자격이 안 됩니다.”
평소보다 높은 것임이 분명한 남자의 목소리에는 97%의 단호함과 3%의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 여성은 계속해서 사정을 말했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실업급여조차 받을 자격이 안 되는 ‘하자 있는 사람’이니까. 대신 그녀는 직원이 하루에 열두 번쯤 경험하는 ‘피곤한’ 내방객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거다.
내 차례다. 아주머니가 ‘당하는’ 걸 봐서 그런가. 순간 긴장이 됐다. 이직 사유를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잘못 얘기했다 저 여인이 겪는 수모를 내가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 끝에,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포즈로 내 앞의 직원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순하지만 멍청하지는 않고, 해고됐지만 무능력하지는 않아 보이길 바라며. 절간의 사천왕상이 짓고 있을 법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는 웃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신분증 주세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틱틱틱틱틱틱…틱틱틱틱틱틱틱……
“○○○씨, ‘고용계획변경’ 사유로 이직하셨네요. 수급자격에 해당합니다.” 그는 내게 종이 한 장을 쥐어주고 지하 1층 교육장으로 내려가라고 일러줬다. 두근거린 심장에 무안하게도 싱겁게 끝나버린 거다. 중년의 그녀는 끝내 이 종이 한 장을 받지 못했다.
교육은 두 시간이나 진행됐다. 심지어 짜임새 있게 총 3부로 구성돼 있었다. 1부는 실업급여제도 안내, 2부는 취업지원서비스 안내, 3부는 워크넷 활용법이란다. 교육하는 직원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1부인데, 그래서 교육 시간도 1시간이나 됐다.
이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부정수급’이다. “실업급여는 사실 ‘구직급여’로 적극적인 재취업 활동을 전제로 드립니다”고 강조하던 직원은 곧장 우리에게 8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줬다. 동영상에는 다양한 부정수급의 사례―사업주가 개인적 이유로 사직하는 노동자에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이직신고를 한 경우(영상에서는 이를 “사업주와 실직자가 공모하여 이직사유를 허위로 신고한 경우”라고 명명했다), 지인의 명함으로 구직활동을 증명한 경우(허위 자료 제출),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발생한 근로소득을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등―와 더불어 이것이 적발됐을 때 우리가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아주 상세히 담겨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받는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닌데’라는 잘못된 생각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적발시 1년 이하의 징역,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부정수급은 철저한 조사와 모니터링으로 반드시 밝혀집니다.” “소중한 재원인 고용보험 기금이 가치 있게 활용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극적인’ 멘트를 거듭해서 들어야 했는데 이 멘트들은 내게 이렇게 번역돼 들려왔다.
해고자에 대한 국가의 첫말, “너 진짜 해고당한 거 맞아?”
“너 수급자격도 안 되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신청한 거지? 그게 아니라도 앞으로 열심히 구직활동 안 하면 돈 안 줘. 그리고 이 돈 받으면서 알바하고 신고 안 하면 ‘부정수급’이거든.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어. 범법자 된다고. 그러니까 잘해!”라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교육은 절반의 의심과 절반의 협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문득, 이런 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하는 저들, 그러니까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들은 여기 모인 우리를 뭘로 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실업급여를 타낼 목적으로 혈안이 돼 온갖 부정한 방법도 서슴지 않는 부도덕한 패배자들이자 소중한 국고를 축내는 벌레 같은 존재… 뭐 이런 건가.
그들 바람대로 이 자리에 정직하게 수급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모였다면, 이들은 모두 회사 사정으로 인해 권고사직 당했거나 명예퇴직, 구조조정 당한 사람들일 텐데, 살인과도 같은 해고를 당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들려주는 첫 번째 말이라는 게 “너 진짜 해고당한 거 맞아? 아니면 처벌한다”라니. 이건 또 무슨 코미디인가 싶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만들지를 말지, 왜 고용보험을 만들어서 우리를 가입시키고 돈을 내게 하고 실업급여를 받게 해서 그 위에 모욕까지 함께 얹어주나. 이것도 국민 복지의 일환일 텐데, 복지에 왜 자격이 필요한가. 도대체 복지란 게 뭘까?
어쨌든,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돈을 준다는 이유로 ‘낙오’한 사람들을 한 번 더 짓이기고 있었다. 여전히 이 사회는, 수치심을 자극하고 가책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낙오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 나라 복지의 맨얼굴을 본 탓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곳을 찾아야 하는 내 처지 때문이거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