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김석진 의장.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현대미포조선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모습 |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법원 판결이 3년 5개월이나 늦어진 것이다. 이는 해방 이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 오랜 계류시간이었고, 당시 언론과 국회, 시민 사회 노동단체가 나서기도 했다. 그때 미포조선이 한 일들 중 하나가 92% 노조 대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일이었다. 탄원서 내용은 8년 동안 이어온 무분규가 깨질 우려가 있으니 김 조합원의 복직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미포조선은 강요없이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대의원 동원과 여론 호도가 아니냐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었다.
결국, 대법원에서도 승리해 김 조합원은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와의 법정공방도 끝난 건 아니었다. 김 조합원이 단체협약에 의거해 부당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지급을 요구했는데, 미포조선은 부당하게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2008년, 울산지방법원은 해고기간 동안 평균임금의 100%를 가산지급하라며 판결했다. 하지만 미포조선은 이에 불복해 부산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그러면서 전직 노조간부 20여명으로부터 진술서를 받아 제출했는데, 평균임금 100%를 가산 지급하는 기간에 대한 단협 조항의 취지는 부당해고 전체 기간이 아니라 1개월이라는 내용이었다. 부산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김 조합원에 대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반해 2011년, 대법원은 김 조합원의 손을 들어주며 부산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그러자 회사는 이번에는 아예 현대미포조선 전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앞서 법원에 제출한 내용의 진술서를 받고 있다. 김 조합원에 따르면, 단협 해당 조항에 대해 1990년과 1992년 회의록은 “부당해고 방지와 정신적 피해보상”에 목적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고, 또한 1988년과 1990년에 단협을 제정하고 신설할 당시에 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사업장이었던 현대자동차에도 동일한 단협이 있었고, 실제로 이에 따라 부당해고된 노동자에게 해고된 전체 기간의 임금이 지급된 사례가 있다며 따라서 부당해고 전체 기간 동안의 정신적 피해를 회사가 당연히 배상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법원은 2007년, 2008년에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와 대우자동차주식회사 에 대해서도 부당해고 전체 기간에 대한 평균임금을 가산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미포조선이 진실을 호도하는 진술서를 제출해 법원의 판단을 흐리려는 것도 문제지만, 조합원들에게 스스로를 속이고 동료를 반대하는 내용의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함께 투쟁해 처음으로 쟁취해냈던 단체협약의 문구 하나하나가 진정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를 조합원은 없다.
비록 근육은 피로해지고 가슴에 품었던 뜨거움도 예전과 비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하나였던 그때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회사는 그 기억마저 부정하라 하고, 동료를 자기 손으로 반대하라고 한다. 양심 한 조각도 회사의 것이 아니면 남겨둘 수 없다는 듯 말이다. 기억과 양심까지 빼앗고, 관계까지 앗아간다. 본의가 아니더라도 회사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심정과 함께 김 조합원과의 인연, 사연까지 묻을 수밖에 없는 게 과거의 동료들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법일 것이다.
양심의 자유까지 농단하는 미포조선의 발상은 그동안 김 조합원에게 보여준 집요한 탄압에 비춰보면 당연하게도 보인다. 2008년 4개월간 사내하청 비정규직 복직 연대투쟁에 참여한 후 김 조합원이 출근하는 현장사무실 입구에 작업동료들 명의의 김 조합원을 비방하는 현수막 장기간 설치, 노무관리자들을 시켜 이른 새벽부터 자택 감시 미행, 일터에서는 왕따 조장까지 해왔다. 장시간 정신적 고통으로 지금 김 조합원은 그 후유증으로 6개월째 병가휴직 중이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도 해 놓은 상태다. 조합원들에게 거짓 진술서를 받는 행위와 노동탄압, 인권유린을 현대미포조선은 이제 제발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