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강화도 해병대 2사단 8연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김상병에게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네 명 목숨을 잃게 한 한명의 청춘도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네 명의 명복을 빌며 가족들의 슬픔이 희망으로 승화되길 기도한다.
네 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김상병이 사형선고를 받음으로 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상병의 사형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김상병의 목숨은 목숨이 아니라는 말인가? 김상병이 군복무 중인 병사가 아니었다면, 우리 군의 문화가 폭력과 권위주의에서 벗어났더라면, 우리가 청소년시기부터 끈질기고 체계적인 인권과 평화의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면, 과연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난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인권활동을 하기 전부터 그랬고, 인권활동을 시작하고 난 후에는 더욱 이 입장에 대해 아무런 의심과 흔들림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실 난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일만큼 힘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를 왜 폐지해야하는 가에 대해 수 백가지의 이유를 들며 1박 2일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참혹하고 비극적인 범죄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 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보호 방안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법이 정한 벌을 마치고난 후 무리없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하게 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토론”, “갑자기 황망한 일을 당한 범죄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경제, 제도, 문화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사회전반에 만연한 폭력과 억압의 문화를 생명과 인권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일” 등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관심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 “니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해도 그런 편한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느냐?”, “피해자 인권은 왜 생각지 않느냐”는 소리만 10년을 들어왔다. 앞으로도 똑같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듣겠지만, 그래도 난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날까지 계속 사형폐지를 위한 활동을 계속 할 것이다. 사형제도 폐지는 이미 인권운동진영에서도 인기가 다한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너무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해 온 일이기에 지겹기도,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없기까지 하니 말이다.
내가 지키려는 것은 참혹한 범죄를 저지를 대한민국의 사형수 60명의 생명만이 아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의미이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범죄를 당한 이들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들에 대한 먼지만한 미안함이고 양심의 울림이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절대 저질러서는 안되는 참혹한 범죄다.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 역시 용인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다음 국회에서는 사형제도가 꼭 폐지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