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최근 돌고 있는 '볼리비아 괴담'은 이 같은 괴담확산 구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달 29일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 진보 좌파'라고 소개한 네티즌이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과 FTA를 체결한 볼리비아의 상수도는 다국적기업 벡텔에 팔렸고, 수돗물 값이 4배로 올랐다. 빈민들이 빗물을 받아먹자 벡텔은 수돗물 사업이 손해를 입었다고 볼리비아 정부를 고소했다. 결국 빗물 받는 통을 경찰이 단속하고 세금을 부과했다’고 썼다. 미국과 볼리비아는 FTA를 체결하지도 않았지만, 이 말은 트위터를 통해 '무한 리트윗(퍼나르기)'이 됐다...국회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내용을 인용했고, 좌파성향의 한 신문은 이를 1면에 보도하기도 했다.”
위 내용은 지난 4일 조선일보 기사다. 조선일보 등은 현재 얘기되고 있는 FTA와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의 외국 사례들이 괴담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이 '괴담'들의 확산 차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참세상>은 조선일보가 괴담 유포자라고 지목한 트위터 @mg2017를 찾아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반론 기고를 요청했다.
볼리비아 물 전쟁은 '괴담'이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
11월 4일 조선일보는 내가 올린 트윗 중 하나를 한미FTA 괴담으로 보도했다.
다음이 내가 10월29일에 올린 트윗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볼리비아의 상수도는 다국적기업 벡텔에 팔렸고, 수돗물 값이 4배로 올랐다. 빈민들이 빗물을 받아먹자 벡텔은 수돗물 사업이 손해를 입었다고 볼리비아 정부를 고소했다. 결국 빗물 받는 통을 경찰이 단속하고 세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볼리비아는 미국과 아직 FTA를 맺지 않았다.
첫 트윗을 올리지 2시간 만에 나는 그 점에 대한 잘못을 정정하는 트윗을 올리고, 내 트윗을 RT하는 모든 분들에게 다음의 정정사실과 추가 설명을 달아서 답변했다.
볼리비아의 상수도가 벡텔이라는 미국회사에 팔리고, 이후에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제소한 것은 모두 사실이다. 볼리비아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지만, 벡텔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이용해서 볼리비아 정부를 제소한 것도 사실이다.
벡텔은 미국 기업이지만 네델란드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만들어서 볼리비아가 네델란드와 맺은 양자간투자협정(BIT)에 포함되어있는 투자자국가소송(ISD)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6일이 지난 오늘에 와서 수많은 내 정정 트윗과 부가설명 트윗은 못 본채 무시하고, 처음에 올린 트윗의 잘못된 부분만을 강조해 “한미FTA 괴담”이라고 떠들었다. 트위터에 끓어 넘치는 한미FTA저지 여론에 흠집을 내고 찬물을 끼얹겠다는 뻔한 의도다. 하지만 볼리비아 사례는 “사실이 아닌 괴기스런 이야기”, 즉 괴담이 아니다. 볼리비아 상수도 민영화와 물 전쟁은 한미FTA와 매우 밀접하고 유사한 사례다.
볼리비아 민중과 벡텔의 물 전쟁 과정
볼리비아는 아직 미국과 직접 FTA를 맺지 않았지만, IMF재정지원을 받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실제로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자원산업을 다국적 기업에 팔아 넘겼다. 그중에 상수도는 IMF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다국적기업 벡텔에게 장기 시설운영권을 넘기는 형식으로 해외매각했다.
이렇게 수도가 민영화된 후에 수돗물 값은 300% 이상 인상되어 원래 가격에 4배로 뛰어 올랐다. 그러자 빈민들은 어쩔 수 없이 오염된 강물을 먹고 병에 걸리거나 빗물을 받아 마셔야했다. 강가로 물을 뜨러 나간 아이들이 악어에게 물려죽는 일도 빈발했다.
그런데 벡텔은 빈민들이 빗물을 받아 마시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수돗물 판매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였다. 빗물을 지붕에서 통에 받으면 강수량을 떨어뜨린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결국 볼리비아 정부는 빈민들이 지붕에 설치해놓은 빗물받이 통을 단속했다. 빗물에 세금도 부과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2000년 1월부터 3개월간 거대한 민중투쟁이 발생했다. 경찰이 총을 쏘고 민간인들을 진압하는 '물전쟁'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민중들은 볼리비아 정부로 하여금 벡텔의 상수도 시설운영권을 박탈하게 할 수 있었다. 이 투쟁을 이끌었던 오스카 올리베라라는 지도자가 2007년에 방한하여 볼리비아 투쟁사례를 소개하고 한국의 물 민영화 저지투쟁에 대한 연대활동을 벌인바 있다.
하지만 상수도 사업권을 잃은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배상금을 요구하는 재판을 걸게 되었고 볼리비아 정부와 벡텔 간의 지리한 힘겨루기가 계속되었다. 벡텔이 이 소송을 최종적으로 취하하고 볼리비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 것은 물전쟁이 발발한지 6년이 지난 2006년 이후였다.
볼리비아가 물전쟁으로 치룬 사회적 비용과 아이 2명을 포함한 6명이 죽은 사태는 공공부문 민영화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부를 수 있는 한미FTA는 일단 비준하고 나면 협정문 파기나 재협상은 더욱 어렵다. 먼저 비준부터 하자는 말이 얼마나 위험하고 안이한 주장인지 알아야 한다.
핵심은 수돗물 민영화, 볼리비아 물사태 ISD 위험성 극명하게 보여줘
조선일보는 내 트윗을 괴담의 진원지로 소개하며 미국과 볼리비아는 FTA를 체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대목은 ISD 문제고, 상수도 민영화 문제다. 강력한 ISD를 포함한 한미FTA가 상수도를 포함한 공공서비스, 공공정책을 공격하고, 투자자 이익을 앞세운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조선일보는 “미국과 볼리비아는 FTA를 체결하지도 않았지만, 이 말은 트위터를 통해 '무한 리트윗(퍼나르기)'이 됐다”고 만 언급했다. 내 주장을 괴담처럼 인식시키기 위한 교묘한 글쓰기 방식이다.
지난 10월22일 국회 끝장토론에서 이해영 교수가 폭로했다시피, 이제까지 한국 정부의 말과는 달리 한미FTA에서 미래의 공공정책결정권은 결코 포괄적으로 유보되지 않았다. 전기, 수도, 통신 등 공공부문도 미국 기업이 제소할 수 있는 ISD 제소대상이다.
설마 상수도마저 민영화할 것이냐, 또 설령 민영화한다고 해도 설마 해외매각 하겠느냐란 의문은, 왜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느냐라는 질문처럼 부질없다. 다만 한미FTA는 민영화, 개방화의 원칙, 사유재산권 절대의 원칙을 어떤 필수 공공서비스 정책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다.
또한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압박하고, 실제 제소사태를 벌일 수 있었던 ISD는 한미FTA의 ISD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벡텔이 볼리비아와 FTA를 맺지도 않은 미국 국적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제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ISD의 특성과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ISD를 포함한 한미FTA가 미국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과 다른 나라의 다국적 기업들 또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미FTA 역시 단순히 미국과 한국 양국 간의 국익을 저울질 하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문제가 달린 공공정책-서비스를 파괴하고 재편하려는 다국적기업의 문제다.
진정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찾으려거든 분노한 트윗이 아니라, 한미FTA로 우리에게 닥쳐올 암울한 미래부터 꼼꼼히 살펴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