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권 없는 단결권?
그러나 오해는 금물이다. 우리 현실에서 노동3권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3권을 제약하는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이나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형법이 단적인 사례다. 구 노동조합법의 복수노조 금지조항도 1997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 제정되면서 삭제되기까지 헌법상 단결권 규정 위반 시비에 늘 시달려야 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위반이었음은 물론이다.
개정 노조법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결사의 자유를 형식적으로 보장했지만, 창구단일화를 통해 단체교섭의 ‘단순화’를 추구함으로써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또 단체행동권 행사의 주체를 교섭대표노조로 ‘단일화’함으로써 단체행동권을 심각히 제약한다. 이는 결국 단결권의 실질을 훼손하는 것으로 악순환한다. 위헌적 상황을 극복한다고 하면서 또 다른 위헌적 제도를 낳은 셈이다.
이번에는 노사 간 자발적 교섭을 장려 촉진하는 데 적합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ILO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위반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은 ILO가 핵심 노동 기본권으로 분류한 8개 기본협약 중 위 87호 98호를 비롯한 4개를 비준하지 않은 ‘예외적’ 국가로 남아 있다. 국내법에 저촉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교섭단위 분리와 단체교섭
창구단일화 방안 외에 이번 개정 노조법에서 쟁점이 되는 것 중 하나는 교섭단위 분리 제도다. 개정법은 교섭단위를 사업(장) 단위를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관행 등을 고려하여 노동위원회가 노동관계 당사자의 양쪽 또는 어느 한 쪽의 신청을 받아 분리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노동조합과 사용자 모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사용자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실제로 특정 노동조합에 대한 우호적 처우를 목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령 한 사업장 내에 생산직 일부를 포함하고 사용자와 친화적인 정규-사무직 중심 기업노조 A와 비정규직을 포함하고 사용자와 대립적인 정규-생산직 중심 산업노조 B가 병존하는 상황을 가정하자. 이때 B노조가 사업장 전체 조합원의 과반을 점하지만 정규직으로 한정할 경우 A노조가 과반을 점한다고 하자. 전체 조합원수를 기준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경우 B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될 확률이 높고 이때 B노조가 산업 최저기준에 입각하여 비정규직에게도 동일 수준의 협약 적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므로, 사측으로서는 교섭단위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하려는 유인을 갖는다. 사측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노동위원회에 받아들여질 경우 비정규직의 교섭권은 B노조가 갖지만 정규직의 교섭권은 A가 갖게 된다.
이처럼 사용자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특정 노동조합에 대한 배타적 교섭을 염두에 두고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사용자가 특정 노동조합을 우대하거나 불이익대우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노조의 활동을 방해할 경우, 이는 부당노동행위라는 또 다른 쟁점을 낳는다.
복수노조와 부당노동행위
기존 단수노조 상황에서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조합 자체의 단결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주로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차별 대우로 드러났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부당노동행위는 민주노조의 단결력 약화를 목적으로 소속 조합원에 대한 차별 대우로 드러날 공산이 크다. 즉, 민주노조를 소수화하거나 직접적으로 지배 개입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사측은 어용노조에 대한 차별적 지원행위를 통해 민주노조를 약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임금 수당이나 잔업 등 근로제공에 있어서 차별을 둘 수 있다. 복리후생 등 근로조건, 신분상 인사상 대우에 있어서의 차별 대우도 가능하다. 경비지원이나 기타 편의 제공의 차별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 개입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단체교섭의 거부 해태와 관련한 부당노동행위 판단 기준도 변화할 것이다. 개정 노조법 시행 이전에는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복수의 노조 중 특정 노조에 대해 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했다. 반면 법 시행 이후에는 교섭대표노조를 통하지 않은 교섭요구를 거부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인정될 것이다.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는 민주노조를 약화시키는 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는 은밀한 방법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차별 입증 책임 역시 노조에게 있으므로 적발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실적 장애가 많은 사후 구제조치를 강구하기에 앞서, 노조 조직력과 민주성을 제고하여 내부로부터의 분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
창구단일화와 비정규직 단체교섭
▲ 현대차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함께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출처: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
마지막으로 창구단일화와 관련한 비정규직 노조의 대응 방향을 검토해보자. 여러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 중 차지하는 비율은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50%를 하회하고 법정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의 절대다수도 비정규직이다. 근속연수는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비율이 사업체 규모에 반비례하는 특징도 두드러진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3%를 하회하고 있다. 노조가 있더라도 대부분 소수노조라 창구단일화에 참가할 경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또 사업(장) 단위 창구단일화는 대부분 초기업단위 노조의 지부, 지회, 분회 형태로 편제된 비정규직 노조의 통일적 단체협약 적용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한편 어용노조가 다수노조일 경우 비정규직 노조가 교섭단위 분리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노동위원회 결정 절차가 복잡할뿐더러 노동조합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비정규직 노조의 창구단일화 대응은 매우 신중하고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우선 창구단일화는 한 사업(장) 내 조직된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하므로 미조직 노동자나 소수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를 단체교섭에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창구단일화만으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하나의 교섭단위에서 동일한 협약을 적용받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단체교섭 대응은 임금, 근로조건 격차의 축소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사고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산별전환 방침이나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원칙도 조직 형식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기존 정규직 중심의 조직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체적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약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선별적 접근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대자본(원청)을 정점으로 위계 서열화된 산업 업종의 조건을 고려할 때 원청을 상대로 공동교섭과 투쟁을 조직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한 계기로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공동 요구로 제기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 실질화를 위해서는 노동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다음 호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복수노조 사례를 연속으로 검토하면서 시사점을 도출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