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일부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노조결격사유(구 노동조합법 제3조 단서 제5호)를 신설하여 복수노조를 금지한 이래 50여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정작 오랜 숙원을 푼 민주노조 운동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2010년 새해 벽두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안이 ‘복수노조 난립으로 인한 교섭비용 증가’를 이유로 창구단일화 방안을 법률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무늬만 복수노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하는 자본가들의 태도는 한결 여유롭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지난 연말 200개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노조 기업에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별로 없다는 편에 96.4%가 손을 들었다.
정말 민주노조 운동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것일까. 노동자운동연구소(소장 박하순)는 지난 25일 <복수노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월례 워크숍을 개최하여 민주노조 운동의 복수노조 대응 태세를 점검해 봤다. 이날 워크숍에는 민주노총 이승철 정책국장, 금속노조 박정미 교섭국장, 공공운수노조(준) 박준형 정책기획팀장,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윤애림 교육선전팀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출처: 노동자운동연구소] |
개정 노조법의 본질은 노동기본권 무력화
토론자들로부터 먼저 복수노조 시대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민주노총 이승철 정책국장은 이번 복수노조 개정법에 담긴 정부의 의도를 잘 간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타임오프제에 이어 올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방안에서 드러나듯이 정부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에 대해 적극적 통제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최근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복수노조 매뉴얼도 노사간 협의를 통한 유연한 시행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법적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강행규정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비연 윤애림 교선팀장도 “창구단일화 방안의 가장 큰 노림수는 파업권을 봉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7년 노조법 제정 이후 파업권을 제한하려고 했던 정부와 자본의 노사관계 전략의 마침표이자 종합적 완성판이라는 설명이다. 윤 팀장은 “노동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구가 단결권, 교섭권, 파업권 모두를 규율함으로써 비정규노조나 미조직 노동자의 경우 더욱 큰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해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를 대상으로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노사관계 변화 예상’을 설문 조사한 박정미 교섭국장으로부터도 전망을 들어봤다. 박 국장은 “간부들의 경우 아직까지는 노사관계에서 노조가 우위에 있다고 보지만, 완성차지부 등에서 앞으로 2-3년 내에 반 산별노조 기치를 거는 세력이나 어용노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공공운수노조(준) 박준형 정책기획팀장은 “과거 일본과 비슷하게 노조 탄압을 위한 제2노조 설립 움직임이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미 철도와 도시철도에서 어용노조가 존재하고 있을뿐더러 동서발전에서도 사용자들이 공세적으로 어용노조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여 많은 조합원이 탈퇴서를 제출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총노동 전선으로 돌파해야
그렇다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나. 사실 노조법 개악 과정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민주노총으로서는 여간 고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승철 국장은 “작년 타임오프 시행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현행법을 유지한 상황에서 현장 개별 대응으로 상황을 돌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번 상반기에 노조법 재개정 투쟁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조법 재개정 투쟁 동력을 형성하는 것이 녹록치 않은 문제이며 ‘야5당연석회의’를 통한 노조법 재개정 논의 역시 내부 이견이 있어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노총 투쟁의 주력인 금속노조의 준비 상황은 어떨까. 박정미 국장은 “지난해 금속노조에서 단협이 타결된 사업장 중 58%가 노동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도 노동부가 타임오프 때 했던 것처럼 행정지침을 통해서 노조의 대응을 무력화 시도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현재 금속노조는 작년처럼 법의 맹점을 활용하는 방안이 아니라 산별차원의 집중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최종 방침은 다음 달 28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박준형 팀장은 “복수노조가 시행되기 전인 올 상반기 중 반드시 공공운수 통합 산별을 출범시켜 민주노조 내부의 분열을 막고 대단결 흐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 팀장은 “복수노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총노동 투쟁 전선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이런 문제의식을 현장까지 가져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윤애림 팀장은 “복수노조가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에 유리한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화나 쟁의권 쟁취 모두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 팀장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하면 될 것이다’라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조직화가 가능하다. 복수노조 시대 개막 이후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의 성패는 결국 민주노총이 도덕적 권위와 투쟁의 힘을 보여줄 수 있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하여 박정미 국장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창구단일화의 대상이 되는 10% 이상 조직화 자체가 어렵다”며 “원청을 직접 타격하는 투쟁을 바탕에 두고 조직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조법 재개정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논점은 2011년 노조법 재개정 투쟁을 포함한 총노동 전선 구축 방안으로 자연스럽게 모아졌다.
먼저 박준형 팀장이 “민주노조가 자율교섭 쟁취를 개별 사업장 대응에서도 핵심 기조로 설정하여 결과적으로 어용노조에게 자율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은 역설”이라며 “개별 사업장에 따라서는 자율교섭 쟁취보다는 민주노조 사수가 투쟁의 핵심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노조법 재개정 투쟁도 법 개정 그 자체보다는 현실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나 노동기본권 박탈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동력을 형성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애림 팀장은 “이미 민주노조의 정체성이 퇴색한 상황에서 기존 민주노조가 다수파 지위를 보장받는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당장 현장에서 겪는 혼란에 대한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윤 팀장은 “법 개정 투쟁에서 핵심은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 쟁취해왔던 파업권을 저들이 한꺼번에 뺏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며, 이런 맥락에서 파업권 쟁취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철 국장도 “현행법에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하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실제로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자율교섭 원칙을 상대화하고 교섭대표노조 지위 유지만을 목표로 삼는 것은 원칙적으로 민주노조가 받아들이기 어려울뿐더러 교섭권 방어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자율교섭을 상대화하는 주장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복수노조 폐지와 현실적으로 구분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도 있다”며 민주노총 상반기 투쟁은 최저임금 투쟁과 복수노조 대응을 양축으로 총노동전선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박정미 국장은 “대공장 지부들은 과반 대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게 현실적 목적일 수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들은 자율교섭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밝힌 뒤, “금속노조가 자율교섭을 원칙으로 채택하는 이유는 민주노조의 과반 대표 지위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 토론자들 사이의 이견은 원칙적 입장의 차이라기보다는 정세적 판단의 차이로 보인다. 이승철 국장도 “박준형 팀장의 주장은 공공부문 파업권 봉쇄라는 현실에 기반을 둔 측면이 크기 때문에, 노동3권 박탈에 대한 문제제기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큰 틀에서 ‘민주노조 혁신과 사수,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기조로 투쟁을 펼치면서도 현장의 구체적 상황에 맞게 이러한 기조를 재해석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적극적 조직화 전략을 동반해야
마지막으로 복수노조 환경에서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조직화 전략에 대해 점검해봤다.
금속노조 박정미 국장은 “무노조 경영 전략을 관철하고 있는 삼성·포스코가 속한 전자·철강 업종이나 노조의 대중적 토대가 허약한 조선 업종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노조 결성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공공운수노조(준) 박준형 팀장은 “복수노조 상황에서 기존 노조 유지가 먼저냐 조직화가 먼저냐라는 논점은 허구적”이라고 전제한 뒤, “어용노조 사업장에서도 민주노조를 새로 건설하거나 노민추 활동을 하느냐 사이의 선택이 필요하고, 그밖에 민주노조의 다수파 유지가 필요한 사업장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민주노총의 강화를 포함해서 민주노조 세력이 현장을 강화해서 다수파를 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 밝혔다.
전비연 윤애림 팀장은 “사내하청 노조의 경우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정규직 노조와 함께 원하청 공동 투쟁을 성사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앞으로도 계속 사업장 노조로 갇힐 것인가 아니면 2-3차 하청과 함께 사업장을 넘어 나아갈 것인가를 결단해야 할 시점에 왔다”며 “앞으로는 미조직된 90%의 노동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사활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승철 국장도 “민주노총의 대기업, 공공기관 조직률은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조직화의 관점에서 볼 때 중소·영세사업장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이 국장은 “조직화 과정에서 민주노조 내부의 관할권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으므로 이에 관한 원칙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권과 자본의 입체적 공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2010년 정권과 자본의 공세는 그야말로 입체적이었다. 새해 벽두 노조법 날치기 통과에 이어 금속노조 경주․경북지부 노조 파괴 공작, 금속노조의 전임자 관련 특단협 요청 거부·분산, 공공기관 단협 해지, 공공기관 선진화에 이르기까지 저들의 분명한 의도는 민주노조 운동 그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었다.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전경련 30대 기업 총수와의 간담회에서 “복수노조 시행을 맞아, 불법노조 활동이 묵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 자체에 성긴 구석이 많아 법리적 해석을 둘러싼 이견과 분쟁이 형성될 여지가 많은데,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의 자주권,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그 자체를 노리고 있다. 그만큼 민주노조 운동의 각오와 자세는 비상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된다면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기도 하다.
[연재 순서]
<1회> 민주노조 운동, 복수노조 시대 맞을 준비됐나 (1월28일)
<2회> 복수노조시대 전망 1: 신규 노조 설립 (1월31일)
<3회> 복수노조시대 전망 2: 단체교섭 변화, 비정규직과 복수노조(2월7일)
<4회> 해외사례 1: 미국, 분권화된 경쟁구조를 중심으로 (2월10일)
<5회> 해외사례 2: 일본, 제2노조 활용한 노사협조주의와 기업별 체제(2월14일)
<6회> 복수노조 시대, 민주노조의 대응 방향에 대한 제언 (2월17일)